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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인물 가상 인터뷰집

한국의 역사인물 가상 인터뷰집

: 소설가의 상상력으로 실감나게 풀어낸 역사속 소문의 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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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57쪽 | 290g | 142*185*13mm
ISBN13 9791190462235
ISBN10 119046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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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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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칼을 다루고 사람의 목을 베는 살벌한 전쟁터의 장수이지만, 내 본모습은 인자하고 다정다감한 선비요. 사대부가 사람이라면 기본적 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충효정신과 글과 시에도 능했으며, 정의롭고 용감함을 두루두루 겸비했는데, 그 모든 게 어머니의 영향에서 비롯 된 것이오. 늘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 순신이고 싶었소. 늙어가 는 모습, 다쳐서 아픈 모습을 보이는 것도 불효라고 생각했소. 그래 서 어머니를 뵈러 갈 때에는 새치를 깔끔히 정리하고 용모단정한 모 습으로 갔소. 아, 요즘처럼 염색약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차라리 먹물을 바르고 갈 것을 그랬나보오. 껄껄. 지금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은, 내가 조정 대신들의 모함을 받아 의금부에 하옥되어 모진 고초 를 겪느라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오. 임진왜란 중에 난 두 명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었소. 내 어머니와 내 아들 면이. 그게 지금도 가슴에 뜨겁고 아픈 화상자국으로 남았소. --- p.17

거북선이 처음 바다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은, 그러니 까 5월 29일 사천 해전이었습니다. 육지전투에서는 왜군 말발굽에 한양 지나 개성까지 함락된 날이었소. 거북선을 처음 본 왜군들은 무 슨 괴물을 본 것처럼 오금을 저리고 아연실색했소. 내가 고안하여 군 관 나대용 등 부하들과 함께 만든 것이지만 정말 멋지게 잘 만들었소. 말하자면, 세계 최초의 돌격용 철갑전선이지요. 거북선이 첫 사천 해전을 비롯해 참전 때마다 돌격전선으로서 제 기능을 발휘했소. 그 어떤 틈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견고해서 적군의 배가 감히 거북선을 쓰러뜨리지를 못했소. … 즉 거북선은 보통 판옥선과 달리 갑판 윗부분까지 완전히 덮개를 씌워서 방호력 측면에서 훨씬 강력하고 우수했소. 덮개를 씌웠을 때 방어뿐만 아니라, 아군의 움직임을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장점이 있소. 다시 말해서 적군이 아군에게 조준 사격을 가하려 해도 눈에 보이지 않으니 어찌 하겠소. 적의 공격을 무력화 시키고 우왕좌왕하게 만들기 딱 좋소. --- p.28~29

내가 주력함대를 이끌고 노량에 나가 물러가는 적의 함대에 맹공을 퍼부어 아주 쑥대밭을 만들어놓았소. 조선 수군의 맹렬한 공격을 감당할 수 없었던 적군들은 많은 사상자가 났소. 거의 전멸상태였소. 짓밟힌 조선인들 을 대신한 내 복수는 그리 다한 셈이오. 그것이 하늘이 내린 나 이순신의 마지막 소임이었던 것 같소. 선두에 나서서 전투를 지휘하다가 퇴각하는 왜군이 쏜 유탄이 심장 가까이를 관통했소. 의식이 차츰 흐려짐을 느꼈으나, 나는 내 죽음을 병사들에게, 특히 적에게 알려져 서는 절대 안된다고 생각했소. 왜군이 두려워하는 건 조선이 아니고, 나 이순신이 있는 조선의 수군이기 때문이오. 그래서 가까이 있는 부 하한테, “싸움이 바야흐로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삼가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조용히 눈을 감았소. 내 죽음을 안 병사들은 모두 슬퍼하며 울음을 터뜨렸으나, 내 뜻을 정확히 파악한 현명한 이문욱 장군이 주위 사람들의 곡을 그치게 하고, 옷으로 내 시신을 가려 눈에 띄지 않게 하였소. 그리고 힘차게 북을 치며 앞으로 나아가 싸울 것 을 독려하였소. 결과는 대승이었소. 나는 이승을 떠나면서도 흐뭇하였소. 내가 맡은 소임은 그걸로 다한 거요. --- p.53~54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있듯이, 서로 같은 목표를 가진 집안끼리 혼인관계로 엮이면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지 요. 우리 두 사람의 목표는 오직 하나, 삼국을 통일해 당나라나 왜가 감히 넘보지 못하는 강력한 신라를 만드는 것이었소. 그러기 위해서는 이 친구 김춘추의 대단한 정치적 배경과 탁월한 외교 능력과 명석한 두뇌, 그리고 나 김유신의 막강한 군사적 힘의 결합이 필요했소.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게 바로 삼국통일이오. 우리 누구도 둘이 아닌, 혼자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대단한 일이었소. --- p.67

무릇 인간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고, 국가 역시 국가와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법, 제아무리 잘난 사람일지라도 저 혼자 살 수 없 듯이 홀로 존재하는 섬 같은 국가도 없소. 그러므로 정치를 하든, 장사를 하든, 무얼 하든 간에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사람을 보는 안목 도 중요하오. 우리가 서로를 모르는 체 지나쳤더라면 삼국통일은 역 사상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사람을 함부로 내치지 않는 것. 어떤 상황에서든 믿고 함께 가는 것. 뜻이 같은 사람끼리 힘을 합한다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후대 분들도 기억했으면 하오. --- p.72~73

나는 필시 한다면 하는 사람이오. 좌절이나 포기 따위는 내 사전에 없었소. 내 나는 필시 한다면 하는 사람이오. 좌절이나 포기 따위는 내 사전에 없었소. 내 오랜 꿈이 이루어진 것은 1377년(우왕 3년) 10월이 었소. 지겹도록 거듭된 내 청에 우왕이 감복하여 화약 제조 및 화통 도감 설치를 허락하였소. 그 때의 기쁨이란, 세상을 다 얻은 듯 했소. 솔직히 그동안 화약 제조에 번번이 실패했소. 이유인 즉 재료배합 비율이 안맞았던 거오. 하지만 나는 꼭 성공하리란 확신이 있었고, 실패에 굴하지 않았소. 먼저 나는 화약제조 비법을 알고자 벽란도에 자주 드나드는, 원나라 출신의 염초장인 이원과 가까이 지냈소. 물론 국가 기밀인지라, 그 자도 비법을 순순히 알려주지는 않았지. 같은 마을에 살면서 요리조리 꼬드겨도 보고 자주 어울렸더니, 그도 내 애국심에 탄복해 어느 날엔가 비로소 보따리를 풀더군. 그리하여 나는 화약의 국산화를 실현하게 된 거오. --- p.78

고국에서 난 역적의 아들이었지만, 일본에서는 더럽고 재수없는 조센징(조선인)이었습니다. 결국 나는 그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에 대한 절망뿐이었어요. 아버지가 비명횡사하고 나서 가정형편이 어려워진 까닭에 일본인 어머니는 나를 잠시 고아 원에 맡겼는데 이지메(왕따)를 혹독하게 당했습니다. 원생들 사이에서 는 물론이거니와, 선생들조차 잘못한 게 없는데도 나를 때리고 나무 랐습니다.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요. 하지만 나는 내 운명에 굴복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힘이 없지만, 내 기어코 훌륭한 사람이 되 어 너희들한테 복수하겠다며 이를 악물었지요. 생전에 내가 이런 말을 자주 입에 담곤 했는데, 길가의 민들레는 무수한 발길질에 짓밟혀도 꽃을 피우지요. --- p.104

‘남이 아는 것은 나도 알아야 한다. 내가 모르는 것은 남 도 몰라야 한다.’입니다. 얼핏 내가 자존심도 세고 마치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질투심 많은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그런 뜻이 아닙니다. 남이 알아낸 것을 뒤쫓아 가는 연구가 아니라, 스스로 물 리학의 새로운 화두를 제시하는 선구자적인 과학자가 되고자 했던 것이오. 남이 차린 밥상에 수저만 올려놓는 건 재미도 없고, 학자로 서 매너도 아니오. --- p.118

. 송도고보에 다닐 때만 해도 나는 지나 치게 성격이 쾌활해 친구들과 나무 그늘에 앉아 기타치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소. 머리는 나쁘지 않았으나 공부는 뒷전이었지. 한 때 기타만큼은 내가 조선 최고라 생각해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 었으나, 어느 날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세고비아의 기타연주를 듣고 그만 무너져버렸어요. 내가 열 번 죽었다 깨어나도 그에 버금가는 연 주를 할 자신이 없더라고. 그런 연주를 못할 바에 기타를 붙들고 있 는들 아무 의미가 없잖소. 그래서 그 길로 기타를 부숴버리고 다시는 기타 근처에도 안갔지요. 송도고보 2학년 말, 성적표를 받았는데 진짜 내가 꼴찌였소. 내 뒤에 아무도 없더라고. 빨간색 표시가 된 낙제과목도 여러 개 있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눈앞이 캄캄합디다. 이런 식이면 나는 아무것 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났어요. 그 날부터 방학에도 집 에 안가고 하숙방에서 밤낮으로 공부에 전념했어요. 한번 손에 잡은 건 반드시 끝을 보는 외골수 성미라서. --- p.134

그렇지. 사람을 볼 줄 몰랐던 내 인사참사였소. 이이첨을 임금인 나도 어쩌지 못하는 괴물로 키운 것이오. 그걸 깨달은 내 가 할 수 있는 게 뭐였겠소. 이이첨에게 더이상 힘을 실어주지 않는 거였소. 그 자의 날개를 꺾고자 모반신고가 들어와도 무시하고, 역모 신고가 들어와도 콧방귀를 꾸다 보니, 정작 내 왕좌에 바람구멍 숭숭 뚫리는 것도 몰랐지. 그래서 인조반정이 터진 거요. --- p.147~148

우리 아버지 영조에 대해 한가지 더 말하고 싶 소. 본래 자식을, 그것도 하나뿐인 외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일 만큼 잔인하고 몰인정한 괴물 같은 사람은 아니었소. 권력이 그렇게 만든 것이지. 노친네가 다혈질인 듯 보이지만, 내면은 상당히 차갑고 철두 철미한 성격이었소. 캐묻기 좋아하고 아주 깐깐하고, 치밀한 성격이었지. 자기 안의 엄청난 콤플렉스를 어쩌지를 못해 사람을 절대로 믿지 못했고, 항상 시험하셨소. 아들인 나조차 온전히 믿지 않고, 효심 과 충심을 시시때때로 시험하셨지.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선위 쇼’ 였소. --- p.159

출세의 길이 눈에 보이던 중 갑작스러운 공민왕의 죽음은 내게 시련의 시작이었소. 개혁파였던 나는 그때부터 권문세족들의 눈엣가시였고, 팔도 각 지를 돌며 유배 및 유랑생활을 해야 했소. 유배 생활 중, 어느 날 들 녘에서 한 늙은 농부를 만났는데 그가 말하기를, 관리들이 국가의 안 위와 민생의 평안과 고통, 풍속의 좋고 나쁨에는 관심조차 없으면서 녹봉만 축낸다며 한탄했소. 시골 늙은이의 질책은 백성을 위하는 길 이 진정 어떤 것인지 마음에 새기는 계기가 되었소. 내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외쳤던 민본사상은 절대 허울만 그럴듯한 명분이 아니었 소. 백성들의 피폐한 삶을 내 이 두 눈으로 목격한 실제경험에서 우 러나온 진정성이 담보된 것이었지. 그 때부터 나는 내가 백성들을 위 해 달라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소. 정치적 시련? 쳇, 그까짓 건 아무 것도 아니었소. 대장부의 큰 야망이 그깟 걸로 꺾이지는 않소. 나는 무쇠처럼 더욱 단단하고 강해졌소. 내 뒤에는 백성들이 있었으니까. --- p.174

비록 신분 피라미드상 맨 아랫부분에 속하는 천한 기녀 신분이었지만 저는 제 삶을 당시 여인들의 인생과는 달리, 아주 주체 적으로 살아나갔습니다. 글을 익혔고, 시와 음악, 풍류 등 예를 즐겼 습니다. 남한테 휘둘리지 않고 저 하고 싶은 건 모두 자유롭게 도전 하며 사랑하며 후회없이 원없이 살았습니다. 왕비의 삶이, 정승 부인의 삶이 저보다 자유로웠겠습니까? 기녀였기에, 기존의 질서 어딘가 에 속하기를 거부했기에 자유를 얻은 것이지요. 생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저는 그것 하나면 충분합니다. 다른 걸 바라지도, 꿈꾸지도 않았습니다. --- p.205~206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우리는 너무 빨리 세상을 살았습니다. 30년 후에, 아니 20년 후에 태어났더라면 그도 나도 어쩜 덜 불행했을지도. 너무 일찍 피운 꽃은 꽃샘바람에 하르르 지듯이 말입니다. 조금 늦게 왔더라면 세상에 ‘사의 찬미’보다 더 멋진 선물을 남겼을 지도.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가 아직도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라 믿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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