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치’는 우리나라 독도에서 서식하던 바다사자의 다른 이름이다.
‘가제’는 울릉도 사람들이 불렀던 바다사자의 이름이었으며 요즘에도 울릉도 어르신들은 독도를 ‘독섬’, 강치를 ‘가제’라고 부른다.
강치에 대한 많은 신문 기사와 티브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큰 울분이 느껴졌고 꼭 이 이야기를 동화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더구나 이 이야기는 나날이 경종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생물종 다양성 보존’과 ‘자연환경 보전’의 문제이므로 더더욱 책으로 펴내야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이 동화에서는 울릉도 마지막 훈장인 할아버지가 어린 손녀 금화와 함께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일본에 끝까지 저항하고, 독점권을 가진 일본인에 의해 무차별 포획되어 그야말로 이제는 그 개체 수가 얼마 남지 않은 강치들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고군분투를 그리고 있다.
이 동화를 통해 현대의 어린이들에게 ‘생물종 다양성 보존’과 ‘자연환경 보전’의 중요성을 알게 하고, 강점기 일본인들이 우리 조선에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를 생생히 체득하게 하고자 한다.
--- 「머리말」 중에서
섬에 가까이 가자 자갈밭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둥글둥글한 왕자갈들이 하얀 포말에 부서지고 있었다.
“아무도 없죠. 없는 게 확실하죠?”
송화 남편이 긴장한 얼굴로 섬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없어.”
할아버지도 경계하는 눈빛으로 사방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독섬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섬이라 해산물의 종이 다양하고, 그 크기는 물론 품질도 매우 우수했다. 그래서 조선 사람도 그렇지만 독점권을 갖지 못한 일본 사람조차 독섬에서 해산물을 채취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독점권이 있는 일본 어부가 드나들지 않는 시기를 노려, 다른 일본인 어부가 슬며시 다녀가는 일은 흔했다. 그렇지만 그는 일본인이었고, 조선 사람과 일본 사람이 마주치는 일이 생기면 언제나 일본인이 유리했다.
조선사람 입장에서는 어떡하든 일본 사람은 피하는 게 좋았다. 송화 남편도 그런 상황을 걱정하는 거였고, 만약에 그들이 먼저 와 있으면 재빨리 배를 돌려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었다.
--- pp. 34~35 「독섬 가제바위」 중에서
“금동아, 빨리 나아. 꼭 나아야 돼.”
금화가 아기 가제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자, 이제 우린 어서 가서 하던 일이나 하자.”
할아버지가 금화가 안고 있는 아기 가제를 받아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기 가제의 어미도 그렇고, 다른 아기 가제들의 어미들도 처량한 울음소리를 내며 사람들이 어서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미야, 봐라. 네 새끼 치료해서 여기 내려놓고 간다. 잘 키워라!”
할아버지가 큰 소리로 말하며 아기 가제를 내려놓고는 송화 남편이 기다리는 배로 걸어갔다. 금화도 서둘러 따라갔다. 송화와 복희도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돌아가면서 보니 어느새 어미 가제들이 바위 위로 올라가 새끼들을 돌보느라 부산을 떠는 중이었다.
“저기 좀 보려무나, 금화야.”
할아버지는 큰가제바위를 가리키고 있었다. 돌아보니 금동이 어미가 할아버지와 금화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고맙다.’ ‘잊지 않겠다.’고 하는 듯 고개를 자꾸 까딱거렸다.
--- pp. 52~54 「아기 가제의 미소」 중에서
“많이 힘드셨죠?”
“내 몸이 이렇다 보니 힘이 들긴 했지. 그래도 그자들이 나한테 직접적으로 못된 짓을 한 건 없어. 그냥 날 거기 잡아 두기만 했던 거야. ‘한 며칠 고생 좀 해 보고 앞으로는 조용히 살라.’는 경고 같았어.”
“어쨌거나 그만하기에 정말 다행이에요. 그렇지만 결국 불령선인의 멍에를 씌워 지금부터는 훈장님을 관리하겠다는 말 아녜요.”
할아버지가 차가운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그렇지. 내 나라를 잃지 않았다면, 내가 일본 사람이라면 죄가 되지 않는 건데. 내가 ‘조선 사람이라는 죄’, 그게 큰 거지.”
“그러네요.”
할아버지의 공식적인 죄는 여럿이었다. 불령선인이라는 큰 죄목 아래 몇 개의 작은 죄목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일본의 내선결혼 권장을 비판한 죄, 폐쇄된 서당을 몰래 운영한 죄, 일어를 가르치라는 말을 거스르고 조선말을 가르친 죄, 일본 정부의 가제잡이 정책을 험담한 죄 그리고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조선의 아이들에게 뿌리 깊게 심어준 죄….
--- pp. 99~100 「조선 사람이라는 죄」 중에서
“우리 금동이는 아직 헤엄도 못 치잖아요. 아까도 그랬는데, 저 사람들이 갔을 때 그때도 혼자 남았다가 잡혀가면 어떡해요. 어흐으윽~!”
송화 남편이 손가락으로 입술을 눌러보였다. 그러면서 다른 손으로 가제바위를 가리키고 배를 가리키는 시늉을 해보였다.
가제바위로 가 금동이를 데리고 와서는 배 안에 숨겨놓으면 될 거 아니냐,는 말이었다.
“시간 없어. 얼른 갔다 와야 해.”
송화 남편이 서두르며 배로 갔다. 금화도 눈물어린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갔다.
(중략)
“어서들 가. 여기서 이러다간 너희들 다 죽어.”
중얼거리듯 말하며 작은 자갈을 몇 개 주워 가제들이 있는 쪽으로 휙휙 던졌다. 송화 남편이 가제들을 상대하는 사이, 송화와 복희가 배를 자갈밭 위로 끌어올렸다. 금화도 낑낑대며 뒤에서 밀었다.
배로 올라간 송화가 금동이를 작은 항아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항아리를 구석으로 끌고 가 그 위를 짚으로 덮었다.
“아윽아윽~!”
금동이는 영문도 모른 채 계속해서 울어대기만 했다.
“형부, 저기.”
금화가 손으로 바다를 가리키며 금동이가 든 항아리를 가리고 섰다.
일본 사람들을 태운 배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가제들이 큰가제바위 쪽으로 바삐 달아났다. 금동이 어미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멈칫거리다가 따라갔다.
--- pp. 124~126 「금동이를 만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