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6년 3월 7일에 태어났다.
--- 첫 문장
문제는 ‘왜 계속하나?’도 아니고, ‘왜 나는 계속 할 수 없나?’도 아니라, ‘어떻게 계속하나?’이다. (세 번째 질문을 통해서 나는 앞의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다.)
--- p.15
몇 주, 몇 달, 혹은 몇 년이 될지 모르는 시간 동안 싫증이 나거나 혐오감이 느껴질 정도로 곱씹은 내 기억들로 이루어진 닫힌 세계 속에 나를 가두는 것.
--- p.19
그는 그 사람에게 말을 할까, 설명해볼까,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할 말이 하나도 없었다. 온종일 이 순간을 기다려왔음을 깨달았다.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어주길, 그를 보길, 그를 찾으러 와주길.
--- p.25
20년이 지나, 그가 떠올려보려 했을 때(20년이 지나, 내가 떠올려보려 했을 때), 처음에는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뚜렷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세세한 것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 p.38
바로 그 순간 선택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정확하게 삶 전체에 대한 질문입니다. 제게는 거의 낯선 것들을 신뢰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바로 그때 알게 됩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내 상황을 완전하게 책임져야만 하는 순간임을 알게 되지요.
--- p.46
우리 앞에는 허공이 있고, 단숨에 뛰어내려야만 합니다. 단번에 두려움과, 포기를 거부해야만 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러고 나서 감행해야 합니다.
--- p.51
이 책은 헛된 추적의 흔적이고, 그런 추적에는 진실을 찾으려는 글쓰기의 과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게임의 규칙은 아주 단순하지만, 실제 시합은 정말 끔찍할 정도로 더 복잡하다.
--- p.56-57
사실 그 계획에서 무엇보다 욕망을 알아봐야만 합니다. 제가 처해 있는 위치를 조금 더 잘 알아보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제 과거 작업들이 그저 일련의 단계 역할을 하며, 마침내 조금 더 야심찬 무언가에 도달하게 해준다는 전체적인 기본 방향에 따라 제 계획들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 p.66-67
그 작업을 통해 장소들의 나이 듦과 내 글쓰기의 나이 듦, 내 추억의 나이 듦을 동시에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되찾은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과 뒤섞이는 셈이죠. 시간은 이 계획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이 프로젝트의 구조와 제약을 이룹니다. 책은 이제 지나간 시간을 재현해내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을 측정합니다.
--- p.69
나는 지나온 길을 따져볼 수 있나? 언젠가 내가 실제로 목표를 세우기라도 했다면, 나는 몇 가지를 완수했는가? 지금 나는 예전에 내가 되고 싶어 했던 나라고 말할 수 있나?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내 열망에 부응하는지 묻지는 않겠다. 아니라고 대답하는 순간, 더 앞으로 나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것이기에. 그런데 내가 이 세상에서 끌어가는 삶은 내가 원했던 것에, 내가 기대했던 것에 부합하는가?
--- p.81-82
나는 (글 쓰는 시간을 만들어보려는 것을 제외하고) 글쓰기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른 것을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다른 것을 배우고 싶지도 않았다. 살기 위해서 글을 쓰고, 쓰기 위해서 산다.
--- p.83
글쓰기는 나를 보호한다. 내 단어들과 문장들, 능숙하게 연결한 문단들, 교묘하게 계획했던 장들로 쌓아 올린 성벽 아래서 나는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재간이 부족하지 않다. 나는 여전히 보호받길 바라나? 그런데 만일 방패가 굴레가 된다면?
--- p.86
꿈꾸는 사람으로서의 경험은 의도와 상관없이 이런저런 일을 거치며 유일한 글쓰기의 경험이 된다. 그러니까 새롭게 드러난 상징도, 의미가 넘쳐나는 것도, 진실의 조명도 아니다. 오히려 단어를 배열하는 일은 현기증이 나며, 알아서 만들어진 듯 보이는 텍스트는 매력적이다.
--- p.90
결국 인쇄되고 고정된 그 단어들은 이제 모호하면서도 동시에 명백한 흔적만을 제시할 수밖에 없으리라.
--- p.92
저는 기억하려고 애씁니다. 억지로라도 기억해냅니다.
--- p.94-95
기억의 작업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고 하겠네요. 첫 번째는 일상성을 철저하고 면밀하게 검토하는 방식이고, 두 번째는 전통적인 방식을 따라 제 자신의 역사를 찾아보는 것이고, 마지막은 허구화된 기억입니다. 그러고 보니 네 번째도 있네요. ‘암호화’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어요, 완벽하게 암호화해서 집어넣는 거죠.
--- p.100
사실 제가 글쓰기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바는 어린 시절이 제게 되돌려 주었던 방식입니다. 모든 글쓰기 작업은 매번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흔적처럼 글쓰기의 순간 속에 고정될 수 있지만, 사라졌던 무엇과 관련해서 이루어집니다. 저는 어떻게 현재에 개입하는지 모르겠어요.
--- p.108
저는 일체주의 작가라 부르고 싶어요. 대단한 것을 주지 않지만, 그 명칭만은 제게 큰 기쁨을 주는 문학 운동이지요. 개인에서 출발해서 다른 이들에게로 이동하는 움직임요. 저는 이것을 공감이라고 부릅니다. 일종의 투영이자, 동시에 호소하는 거죠!
--- p.110
내게 엘리스섬은 바로 유배의 장소, 말하자면 장소가 부재하는 장소, 흩어지는 장소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장소는 나와 관련이 있고, 나를 매혹하고, 나를 끌어들이고, 내게 질문한다.
--- p.115
미미하지만 집요하고, 은밀하며, 부정할 수 없는 나의 감정은 이런 식의 사소한 불일치에 집착한다. 내 안의 무엇인가와 관련해 어딘가 낯설다는 감정, 그것은 ‘다르다’는 감정인데, 나는 ‘다른 이들’과 다르다고 느끼는 것보다 ‘나의 가족’과 훨씬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가령 나는 내 부모가 말했던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 p.117
내가 엘리스섬에서 찾으려 했던 것은, 바로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이라는 이미지, 극단적인 단절의 자각이다. 내가 검토하고, 문제 삼고,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은, 바로 존재하지 않는 공간, 부재, 그리고 흔적과 말, 타자를 추적하는 근간인 균열 속에 나 자신의 뿌리를 내리는 일이다.
--- p.119
분명 또 다른 많은 일이 있겠지만. 나는 37번에서 의도적으로 멈춘다.
--- p.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