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일은 인격을 와해시키는 질환에 대한 치료뿐 아니라 인간의 영혼에 대한 영적인 치료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도 아픈 사람을 치료하실 때 육체적인 치료도 하셨지만 영적인 치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정신 질환은 뇌의 기질적인 문제로 인식되어 약물 치료가 9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병의 진행 과정상급성기를 지나도 지속되어야 하는 긴 치료 과정에 영적인 도움이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흔들림 없이 회복된 삶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정신 질환에 대하여 목회자들과 치료진이 서로의 영역에서 협조하고 도움을 준다면 환자들은 질병의 관해 상태(증상이 호전되어 병전 상태와 같은 수준으로 회복된 경우)를 잘 유지하고 신앙생활을 통해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신뢰와 친밀함을 더 느낄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기독교 신앙을 가진 많은 환자와 가족, 목회자와 정신건강의학을 다루는 치료진에게 첫걸음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들어가면서」중에서
생명의 근원이 되는 마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 또한 경험되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시간에도 생명과 사망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지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는 완벽한 고백을 마음으로 깨달았던 베드로가 곧바로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사탄의 도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생명을 고백했던 베드로의 마음은 동시에 사망의 유혹에도 넘어지기 쉬웠던 것입니다. 같은 날 육을 따를 수도, 영을 따를 수도 있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생명과 사망이라는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없는 창조와 죽음 현상이 동시에 경험되는 곳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 p.28
약물은 잘 쓰기만 한다면 하나님이 만드신 원래의 뇌로 돌아가는 것을 효과적으로 돕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듯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어떤 것도 선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약물 치료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일반 은총을 통해 허락하신 정신과적 여러 치료 기법이나 상담 기법은 큰 의미가 있고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저 역시도 가능한 많은 지식과 치료법으로 내담자를 돕고 있습니다. 그 어떤 접근도 다 그 나름의 의미와 효용이 분명히 있지요.
그러나 결국에는 마음 깊이 경험되는 생명과 사망의 영역까지 다뤄야만 근원적 회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생각을 바꾸고, 감정을 달리 느끼고, 행동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면 깊은 곳에서 생명을 어떻게 경험하게 할 수 있을지, 사망의 시작인 죄를 어떻게 회개하고 다뤄야 하는지가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 p.29
하나님의 사랑은 구체적 정신 병리를 때로 완전히 치유하지만, 치유의 정도는 개인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누구에게나 일정하지만 치유의 결과는 다를 수 있고, 이는 하나님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기대하는 만큼의 치유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그 남은 질병을 통해,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손길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때로 육체와 마음의 치유보다 더 큰 구원의 섭리를 위해서 남겨진 질병도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바울이 경험한 더 크고 족한 은혜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에게 육체의 가시를 남겨 두셨듯 말입니다.
--- p.93
‘내가 성공해서, 공부를 잘해서, 예뻐서 가치 있는 거야’라는 식의 조건적인 태도는 자존심인데, 이런 자존심이 강하다는 것은 사실 자존감이 약하다는 의미다. 자존감이 건강한 사람들은 자신이 완벽한 존재가 아님을 잘 알고 있고, 또한 완벽한 존재가 될 필요가 없음도 잘 안다.
이런 사람들은 타고난 기질적인 강점뿐만 아니라 약점까지도 자신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데, 진짜 자기로 살아갈 용기가 바로 이 자존감에서 나온다. 소중한 사람임을 증명하려고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쉬지 못하게 만드는 내면의 수치심을 치유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은 일을 해야 할 때와 멈춰야 할 때를 잘 구분하셨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몰려든 군중이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고 하자 예수님은 오히려 군중을 피해 산으로 올라가 홀로 기도하셨다(요 6:15; 마 14:22-23). 예수님은 대중의 환호가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리는 신의 음성에 반응하셨다. 성공이 아니라 사명의 길을 걸으신 것이다.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되려고 발버둥 치다 보면 사명을 놓치고 일 중독자가 되기 쉽다. 예수님이 가신 사명자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건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 p.136~137
모든 중독의 뿌리에는 자기 과몰입이 있다. 당신은 타인을 위해서 중독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타인에게 중독된 사람들조차 깊은 내면의 동기는 ‘자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다.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집착은 아직 사랑이 되지 못한 미숙한 자기애일 뿐이다.
이상적으로 들리겠지만 중독 치료의 완성은 자기 너머의 즐거움으로 충만한 상태다. 가끔 “왜 꼭 내면의 치유와 성장이 필요합니까?”라고 내게 묻는 분들이 있는데, 나는 더 큰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쾌락은 귀한 선물이지만 인간의 마음은 훨씬 더 큰 즐거움을 위해 창조되어서 때가 되면 낮은 단계의 즐거움만으로는 채워지지 않고 공허함을 느낀다. 낮은 단계의 즐거움을 아무리 강하게 가져 봐도 높은 단계의 즐거움을 대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높은 단계의 즐거움을 얻으려면 내면의 성장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누군가로부터 성장에 필요한 사랑을 공급받아야 한다. 중독은 낮은 단계의 즐거움으로 높은 단계의 즐거움을 대치하려는 시도다. 성경은 우리를 초청한다.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 p.154
우울증은 다른 모든 정신 질환과 마찬가지로 죄의 결과라거나, 믿음이 없어서 생기거나,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울증에는 생물학적, 심리사회적, 영적 원인이 있으며 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합니다. 내가 하나님처럼 되려는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창조 시의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나인 성경적 자존감을 회복해야 합니다.
한국인 특유의 우울증의 신체 증상을 잘 알아채야 합니다. 여성의 우울증, 특히 산후우울증은 반드시 치료해야 합니다. 육아 중 발생하는 불안과 우울은 너무나 고통스럽지만, 여성을 더욱 성숙하고 유연한 인품으로 성장시켜 줍니다. 우울증의 다양성에 따라 치료적 접근 또한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되, 하나님의 철저한 개입을 인정하며 영적인 방향으로 향해야 합니다.
--- p.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