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컨대 1970년대의 한국 교회적 상황에서, 개인 구원 개념을 바탕으로 교회의 양적 성장에 치중한 시각이 주로 보수적인 교단들의 입장이었다면, 개인 구원을 넘어 사회 참여 문제 역시 교회의 중요한 사역으로 이해하는 하나님의 선교적 시각에서 한국 사회를 분석하고, 시대적 현실에 응답하려는 입장은 주로 진보적인 교단(특히 한국기독교장로회)이 주도하였다. 그렇지만 교회의 선교적 방향은 개인 구원과 사회구원(사회 참여)이라는 양 측면을 동시에 견지하는 통합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통해 인간의 전인격적인 구원과 함께 그들이 속한 사회, 곧 역사에 대한 변혁 역시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1장 II._ “한국 신학의 독특한 지평들”」중에서
윤성범은 신유학의 인성론 개념인 성이 한국인들에게 기독교의 복음을 담아내기에 가장 이상적 바탕이라는 전제 아래, 그것을 핵심 매체(the Core Metaphor)로 삼은 성의 해석학으로서 ‘한국적 신학’을 저술하였다. 그런데 ‘한국적 신학’은 전술한 대로, 그의 독특한 토착화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토착화 개념을 뿌리내림(root-in: 土着)으로 풀이하면서, 씨앗으로서 복음이 한국 문화 아프리오리라는 솜씨에 의해, 토양인 한국인의 심성에 뿌리내리는 과정, 즉 파종모델로서 토착화를 주장했다.
따라서 종자와 밭의 변증법적 관계 모형을 전제하는 그의 토착화론에서는 종자인 복음의 주체성보다, 토양의 질이 문제이다. 곧 그는 씨앗으로서 복음 자체 보다, 토질의 생산성, 곧 한국의 종교 · 문화라는 밭의 성질을 주목했고, 이것은 복음을 수용하는 한국 교회 주체성 문제로서 전이해와 관련된 것인 바, 이른바 한국 문화 아프리오리에 의한 솜씨의 변증법의 문제였다.
그런데 한편 해천은 전술한 바와 같이 감론과 솜씨론에서 한국 신학의 가능 근거를 인간적인 축점인 한국 문화 아프리오리인 솜씨의 변증법에서 찾던 태도를 넘어, 멋론에서는 갑자기 토착화가 성령의 역사(役事)라고 말하면서, 돌연 토착화의 문제를 신적인 축점에서 바라보았다. 토착화가 신적 축점이라는 말은 곧 토착화의 주체가 인간이 아닌, 하나님 자신임을 뜻한다. 그리하여 해천의 토착화론은 인간적인 축점과 신적인 축점이 함께 역설적인 만남(Paradoxical Encounter)을 갖는 독특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는 특히 이러한 역설적인 특성을 조화롭게 수용할 수 있는 개념을 신유학의 인성론 개념인 성에서 발견하였는데, 그것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독특한 원리를 함의한다는 점에서, 자신의 토착화론에 가장 잘 어울리는 용어요, 기독교 신학과 신유학을 가교할 수 있는 핵심 매체로 수용하였고, 마침내 이 성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국적 신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2장 III. _ “성(誠)의 해석학으로서 ‘한국적 신학’”」중에서
그런데 해방 직후의 조국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한국 교회는 1945년 9월 연합교단 형태로의 재건이 무산되자 교파 환원을 서둘렀다. 감리교회는 남부대회(새문안교회, 1945. 9. 8.)에서 퇴장한 이규갑, 변홍규, 김광우 등을 중심으로 동대문감리교회에서 재건을 선언했고, 변홍규 목사가 신학교장에 취임했다. 이 혼란기에 소금은 1946년 『감리교신학교』 2학년에 편입학, 변홍규에게서 구약학, 홍현설에게서 기독교윤리, 윤성범에게서 종교철학을 배웠다. 그 무렵 평생의 반려자, 윤정은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신학 강의에는 크게 만족하지 못했다. 마음속 깊이에 뭔가 모를 허전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전장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위안 삼았던, 즉천거사 비인정(則天去私 非人情)의 세계였다. 텅 빈 가슴을 안고 방황하던 그는 마침내 그는 YMCA 강당에서 함석헌(咸錫憲)과 탄허(呑虛) 스님을 통해 새로운 동양적 영성 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함석헌의 강연 속에는 항상 종교와 시와 동양사상이 융합된 듯한 영성 세계가 번득였고, 탄허 역시 소금의 사상적 세계의 확장에 크게 공헌했는데, 특히 1946년 겨울 한 달간의 열정적인 『장자』 강의는 그에게 드넓은 동양사상 세계와의 만남을 갖게 했다. 그때를 소금은 이렇게 회고한다.
---「3장 I._ “유동식의 생애와 사상적 발전 과정”」중에서
기독교 신학은 현대 사회의 비인간적인 모순구조 속에서 고통하는 인간에게 복음을 통해 참된 인간성을 일깨워주고, 그들로 하여금 참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게 하며, 하나님 안에서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하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경험케 하는 신학, 다시 말하면 사람을 구원하는 신학, 보다 구체적으로는 한민족을 살리는 생명신학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한국적 주체성을 재발견하고 한국인으로 하여금 한국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점에서 토착화신학적 성격을 내포한다. 토착화가 한국 문화적 상황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고, 토착화신학은 그것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라면, 생명신학으로써 토착화신학은 자연적으로 한국 문화적 상황과 역사적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전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착화사건이 성령의 역사라는 점에서, 토착화신학은 성령론적 측면에서의 접근이 요청되고, 이것은 곧 생명의 영 · 성령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전제하며, 여기서 한국 신학이라는 거대 담론이 새롭게 시작될 수 있다.
곧 생명신학은 곧 하나님의 생명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에 의존하며, 그분의 사역에 대한 해명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생명의 영인 성령은 현대 사회의 각종 모순이 양산하는 비인간화 현실에 대한 참된 치유와 회복에의 소망으로 다가오신다. 하지만 생명 신학은 성령에 의한 구원 사역이 단순히 신자 개인의 차원에 머물기를 원치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하나님 백성들의 공동체를 지향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의 종말론적인 완성을 소망하게 된다.
결국 생명신학으로써 한국 신학은 복음 안에 약속된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종말론적인 구원의 은총을 한국적인 영성의 눈으로써 해명함과 동시에 그 성령에 의한 종말론적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 한민족의 온전한 구원의 날을 지향하는 한민족을 위한, 한민족을 섬기는 신학이요,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하는 신학을 의미한다.
---「4장 III._ “한국 신학에는 무엇을 담을 것인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