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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1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372g | 140*210*17mm
ISBN13 9791191278927
ISBN10 119127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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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의술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랬다. 중례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것은 스스로의 의술에 대한 자괴감이었다. 정재술은 아버지를 죽인 원수이기에 앞서 병을 앓고 있는 병자였다. 그런데 무슨 병인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병자를 죽음과 맞닥뜨리게 한 셈이었다. --- p.10

고려왕조에도 역적이고, 조선왕조에 와서도 역적이 되었으니, 정도전에게는 역적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삼봉이 역적이라면 이방원도 역적이고 이방원의 아들 금상도 역적의 아들이 되는 것이었다. 또한 그리되면 그들 역적의 자손들이 세운 활인원에 의탁하고 있는 자신은 또 무엇이라 해야 하나 싶었다. --- p.43

의술을 배운 이후로 소비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사람을 죽이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저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런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그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소비의 손은 더욱 심하게 떨렸다. --- p.47

불구대천의 원수들을 매일같이 대하며 그들의 숨이 끊어지길 기다리는 삶이란 한마디로 지옥 그 자체였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매일같이 확인해야 했다. 매 순간 복수의 불길이 타올랐고, 매 순간 그 불길을 끄기 위해 스스로와 싸워야 했다. (…) 그렇게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누군가가 죽기를 바란다는 것은 죽음의 늪에 함께 빠지는 일이었다. --- p.185~186

산길을 내려오는 내내 중례는 마음이 착잡했다. 자신이 또 무슨 짓을 했나 싶었다.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워 죽게 하고 자신의 집안을 몰락시킨 장본인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 영 찜찜했다. 차라리 죽도록 내버려둘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마다 머리를 내흔들었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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