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참 힘듭니다. 몸이 고된 건 말할 것도 없고 세상 소중한 아이인데도 때로 내 행복을 막는 것처럼 느껴져 울고 싶기도 합니다. 엄마들의 마음속에는 아무도 그 노고와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절대 고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받고 귀한 대접을 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엄마들은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된 순간부터 그런 것들을 바라면 절대로 안 되는 양 세상의 구석으로 밀려납니다.
--- p.6 「프롤로그」 중에서
출산과 육아를 통해 ‘엄마’라는 존재가 되는 것은 대단히 버거운 일입니다. 아래에서 하나씩 살펴보겠지만, 육아는 온통 낯선 일을 해치우며 온갖 감정으로 뒤범벅된 진흙 길을 걷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탄탄대로는 절대로 없습니다.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이 길을 완주해 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때로는 아이가 몸이 아파서, 때로는 아이가 낙담해서, 또 때로는 엄마가 몸이 아프거나 절망해서 진흙 속에 발이 푹푹 빠지곤 합니다. 마음 약국이 필요 없는 엄마는 없다는 말입니다.
--- p.13 「육아라는 과업의 무게」 중에서
인식을 전환해서 몸 노동의 가치를 바로 봐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 보니 나와 가족을 먹이고 입히고 편하게 자게 하는 그 직접적인 행위인 몸 노동만큼 고결하고 필수적인 게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공, 멋져 보이기, 으스대기만이 삶의 모든 것인 양 달려오면서 정작 그 ‘삶’에 한 번도 제대로 녹아들어 보지 못한 채 반쪽으로만 살아온 우리 인생을 육아는 완벽하게 균형 맞춰 줍니다. 책을 통해서만이 아닌, ‘진짜로’ 생명을 자각하고 키워 보는, 심장을 뛰게 하는 바로 그 일입니다. 진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채 ‘고상하게’ 사는 게 아니라, 아이의 배설물까지도 너끈히 치워 내는, ‘구차스럽기 짝이 없는’ 삶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 pp.22-23 「우리 삶을 지탱하는 몸 노동」 중에서
이제라도, 모든 엄마는 산후 일시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우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리고자 합니다. 저처럼 펑펑 울지는 않더라도 말이죠. 하지만 대부분은 그런 우울감을 내버려 두곤 하는데요. 아이가 너무 예뻐서, 출산이 너무 홀가분해서(다 끝났으므로), 너무 약해 보이는 아이를 보호하기에 바빠서 자신의 감정 따위(?)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어서입니다.
--- p.37 「모든 힘든 감정의 시작, 산후우울감」 중에서
엄마들도 자기 위로와 자기 격려의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너무도 외롭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들었던 상황, 아파도 소리 한 번 마음대로 지르지 못하고 무슨 형벌을 받는 듯 꾹꾹 참아 냈던 상황에서 겪었던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감정을 한 번쯤은 표출하고 스스로라도 그 수고를 위로해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한 회복이 됩니다.
--- p.66 「엄마만 아는 생명의 무게」 중에서
그럼에도 아이가 잘못 크는 걸로 여겨진다면 과연 잘못 크는 게 맞는지 우선 생각해 봐야 합니다. 어쩌면 아이는 그저 엄마의 기준과 ‘다르게’ 크는 것일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독자성과 정체성으로 말이죠. 설사 그 독자성이 대학 입시를 통과하지 못하거나 좋은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식으로 나타날지라도 그건 절대로 잘못 크는 게 아닙니다. 많은 엄마들이 남들과 비등비등한 ‘평균적인 모습’으로 커야 자식을 잘 키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조금만 그 기준에서 멀어지면 발을 동동 구르곤 합니다.
--- p.105 「엄마의 육아 불안 “아이가 잘못 클까 봐 불안해요”」 중에서
사실 불안 자체는 ‘미지未知에 대한 걱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걱정은 당연하지만, 미지의 것은 미지의 것으로 남겨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에 지知, 즉 우리가 알고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불안은 어떤 계획이나 설계, 생각으로는 절대로 극복할 수 없습니다. 그저 의미 있는 어떤 행동을 할 때만 극복됩니다. 아이가 안전하게 자라도록 보호하면서 나머지 시간은 엄마 자신의 인생을 찾아보는 것이 의미 있는 행동이 될 것 같습니다.
--- p.121 「완벽한 육아라는 함정 “완벽한 육아에 집착하게 돼요”」 중에서
‘엄마’라는 정형화된 모습은 없습니다. 각자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됩니다. 완벽에 갇히지 말고 허울뿐인 모성애 이미지에 묻히지 말고 오늘 하루 아이가 즐겁게 살도록 최대한 여건을 만들어 줄 것, 또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한다면 아이도 상처받지 않고 엄마 마음도 상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 고쳐 줄 것, 이것만 신경 써도 모성은 차고 넘칩니다. 모성애에서 ‘애’만 가져옵시다. 아이를 사랑하고 자신도 사랑합시다.
--- p.131 「모성애 콤플렉스 “모성애가 없는 것 같아 걱정이에요”」 중에서
부부가 애착을 이해하고 있다면 앞으로 갈등이 생겼을 때 이렇게 말해 보세요. “지금 나한테 화가 난 거야, 당신 인생에 화가 난 거야?” 혹은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지금 이 사람한테 화가 난 건가, 과거의 내 상처가 튀어나오고 있는 건가?’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제1의 대화의 원칙은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대화하기’입니다.
--- p.163 「결혼은 제2의 애착기」 중에서
육아가 힘들다 보니 만약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더 멋지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더 성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저도 그랬고요. 아이가 없었다면 좋은 점이 많았을 겁니다. 밤마다 해방의 기분을 누리면서 나 혼자 쓸 수 있는 시간이 넘쳐나 더 성공하고 자기 관리도 아주 잘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만과 독선, 자기애에 빠져 인간미 하나 없고 재수 없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를 낳은 후 비로소 생명의 소중함을 온전히 알게 되었고 남의 자식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비굴하게 눈치를 보고 부탁도 하는 ‘인간다운 인간’으로 거듭났습니다.
--- pp.228-229 「네 번째 기둥: 영성」 중에서
생명을 키워 내는 일은 흐르는 강물 같아서 오늘 흘려보낸 시간을 나중에 다시 가져 볼 수 없습니다. 아이가 5세 때, 7세 때, 또 10세 때 느끼는 육아의 감동은 다 다릅니다. 때로는 벅찬 환희의, 때로는 가슴이 찡한, 또 때로는 눈물이 차오르는 감동의 매 순간들이죠. 무지개보다 더 다채롭게 펼쳐지는, 부모만이 누릴 수 있는 멋지고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아이 곁에서 함께해 주세요. 그러다 보면 서로 돕고 위로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 p.245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