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아름다움에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통하는 보편적인 요인이 있다. 아름다움에 관한 폭넓은 이해를 위해서는 변하지 않는 보편적 가치와 변하는 주관적 가치를 찾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움의 보편적인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욕망과 매혹이다. 아름다움은 인간 욕망의 표현과 실현이자 타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혹의 수단이다. 뛰어난 미모로 이름난 중국의 양귀비(楊貴妃, 719~756)는 20종 이상의 헤어스타일로 자신의 외모를 한층 돋보이게 했다고 전해진다. 양귀비는 당나라의 번영을 이끈 황제 현종(玄宗, 685~762)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결국 황제의 권력은 양귀비의 화려한 헤어스타일에 취해 일순간 길을 잃고 권위에 오점을 남겼다.
---「프롤로그」중에서
여인들의 머릿결에서 형형색색의 빛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기묘한 일이었다.
유화, 연희, 도화랑. 세 여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벽화 속에 고요히 서 있었다. 여인들의 자태는 긴 세월의 풍화 속에서도, 그 얼굴 표정과 숨결을 잃지 않았다. 천 오백 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여인들. 유화, 연희, 도화랑은 죽은 자들의 옛무덤 속 그림이 아니었다. 고구려여인들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실체였다. 여인들의 머리 모양은 시대의 징표였다.
---「PART 1 신화와 전설 : 신비, 과시, 신성」중에서
항가리드는 딸도 있고 언어도 구사하는 한편 큰 매였다고 묘사하기도 한다. 항가리드의 실체는 반인반수(伴人伴獸)로 보인다. 사람의 몸을 하였으나 커다란 새의 날개를 가진 괴수의 형체. 항가리드Khangarid Bird의 항(Khan, 보통 칸으로 읽는)은 왕을 뜻하며 몽골의 땅을 창조했다는 새들 중의 왕, 조왕(鳥王)이다. 신화를 지배하는 새인 것이다. 항가리드는 가루다Garuda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항가리드는 몽골인들이 성산으로 믿는 복드 항 산(Bogd Khan, 실제 울란바토르 남쪽에 위치함)의 주인으로 전해져 온다. 항가리드가 현재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의 휘장에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 신화의 전통은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PART 1 신화와 전설 : 신비, 과시, 신성」중에서
17세기 화가 안톤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1599~1641)는 삼손의 비참한 최후를 묘사한다. 작품명은 《삼손과 데릴라》(그림33). 머리카락은 잘려나가고, 포승줄에 묶이고, 군사의 철퇴가 당장이라도 내리칠 듯 다가오고, 몸부림치는 삼손. 손을 내민 데릴라를 향한 삼손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하다.
또 다른 17세기 거장 렘브란트(렘브란트 하르먼손 반 레인,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가 본 삼손의 죽음은 더욱 상세해서 허망함이 감돈다. 작품명은 《눈 먼 삼손》(그림34). 잘라낸 삼손의 머리카락을 쥐고 도망치는 데릴라, 두 눈이 칼에 찔린 채 절망과 고통 속에서 나뒹구는 삼손. 뒤에서는 군사들의 칼날이, 정면에서는 창끝이 삼손의 숨통을 끊어놓기 직전이다. 삼손의 피울음과 군사들의 아우성과 데릴라의 조소가 한데 뒤섞여 있다.
---「PART 1 신화와 전설 : 신비, 과시, 신성」중에서
3세기 고구려, 그 시대 미인의 선결조건이 있었다면 길고 탐스런 여인의 머릿결이었을 것이다. 중천왕이 관나부인에게 한껏 매료되었던 것도 구척이나 되는 머리길이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권좌에 앉은 중천왕의 속뜻을 알 길은 없으나 관나부인을 가차 없이 버렸다. 그는 오로지 전지전능한 심판관으로 등장하여 궁중에 갇힌 여인들의 괴로운 심정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판결을 내렸다. 관나부인의 미모와 긴 머리카락은 유혹과 과시를 한껏 뽐냈으나 그로 인해 저주의 도화선이 되었다. 늘 그렇듯이, 치정극의 결말은 차가운 핏빛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두 여인을 비극으로 몰아간 원인이 궁중이라는 거대한 질서에서 왔다는 의심을 거두기 힘들다.
---「PART 1 신화와 전설 : 신비, 과시, 신성」중에서
그러면 시프의 새로운 머리칼로 내 가져오리,
해가 지기 전에 황금머리칼을.
허면 시프는 봄의 들판과도 같으리라.
노란 꽃무늬 옷을 걸친 들판과 같으리라.
로키는 깊은 지하세계로 향한다. 그곳에는 이발디Ivaldi의 아들들인 난쟁이들이 살고 있었는데 모두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그들은 출중한 대장장이였다. 로키는 교활함으로 무장하고 현란한 말솜씨로 난쟁이를 속여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황금을 가는 실처럼 만든 황금실을 가지고 돌아온다. 로키는 간신히 목숨을 구한다. 물론 시프는 황금빛 머리카락을 되찾고, 토르는 기뻐했다.
---「PART 1 신화와 전설 : 신비, 과시, 신성」중에서
그런데 한때 루이 14세는 가발 금지를 지시한 적이 있었다. 국왕으로 즉위한 뒤에 가발금지령을 내려 루이 13세 때부터 궁중에서 유행하던 가발착용을 금지했다. 그는 숱이 많은 자기 머리를 좋아했고 가발을 경멸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어떤 연유로 가발애용자가 됐을까? 그뿐만 아니라 헤어패션의 유행을 이끄는 창조자가 됐을까? 루이 14세의 머리에는 지루성 낭포라는 혹131이 있었다. 머릿속 혹을 가리기 위한 방편으로 항상 가발을 착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때로는 시대를 만들어가는 촉발제가 있다면 우연과 필연의 화학작용이 아닐까.
루이 14세는 침실 옆에 가발 전용 방까지 두었는데, 때와 장소에 맞춰 다양한 색깔의 가발을 애용했다. 그의 가발은 크고 두툼한 흑발이었으며 말년에는 가발에 분을 뿌려 머리가 하얗게 세는 걸 나타내도록 했다.
---「PART 2 혁명과 연애 : 열정, 자유, 영원불멸」중에서
2012년 5월 10일 일간신문들은 앞 다투어 84세 영국인 노인의 사망소식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여성 머리 모양을 혁신적으로 바꿔왔던”199, “전설의 헤어드레서”200, “머리 미용술의 일대 혁신을 일으킨 헤어아티스트” 그의 이름은 비달 사순(Vidal Sasson, 1928~2012)이다. 그에게 주목하는 특별한 이유는 보브 컷의 창시자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단발머리라는 뜻의 보브, 기하학적인 커팅을 합친 ‘보브 컷(Bob Cut, 일명 사순 컷 Sassoon Cut).’ 한때 한국에서는 ‘바가지 머리’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1960년대 선보인 미니멀 스타일의 짧은 단발머리인 보브 컷은 특히 오피스 걸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수많은 오피스 걸들이 그가 창안한 단발머리에” 환호했다. 오피스 걸들이 긴 머리를 손질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번거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1960년대 여성에게는 새로운 해방의 때였다.
---「part 3 전통과 자유 : 스타일, 금지, 아이콘」중에서
팝 음악 사상 ‘가장 위대한’ 이라는 수식어가 결코 어색하지 않은 아티스트. 1980, 90년대 대중문화를 집어삼킨 최고의 슈퍼스타가 있다. 마돈나 루이즈 치코니(Madonna Louise Ciccone, 1958~현재), 바로 그 유명한 팝 가수 마돈나다. 그녀의 이미지는 성적인 매력, 도발적인 자태로 연상된다. 마돈나는 팝 가수로서 앨범과 라이브 무대는 물론 영화배우로서 자신의 매력을 발산했다. 또한 음반제작자와 『영국의 장미들』 외 여러 편의 동화를 쓴 작가로서 독특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렇듯 다채로운 색깔을 지닌 엔터테이너이지만 일정하게 유지하는모습도 있다. 마돈나의 머리 모양, 헝클어진 헤어스타일이다.
---「part 3 전통과 자유 : 스타일, 금지, 아이콘」중에서
인간에게 머리카락은 어떤 의미였을까? 엄밀히 머리카락 그 자체만으로 의미와 가치, 개념이 파생되지는 않는다. 머리카락에 인간의 노력과 열정과 욕망을 가열하면 머리 모양이 만들어지고, 그런 뒤에 하나의 스타일로 완성되어 세상의 무대 위에 나타날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그래서일까. 머리카락에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스토리는 참으로 특이하고 다채롭다. 다차원적이기까지 하다. 그동안 고대그리스신화에서 시작하여 20세기 후반까지 인류의 문화사에 새겨진 머리카락의 향연을 찾아 떠났던 긴 여정을 마치고 다시 돌아왔다.
---「에필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