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심리상담하듯이 인생의 큰 결정을 하거나 깊은 고민이 있을 때 우리는 이러한 신점이나, 사주 등에 힘을 빌려왔다. 그러나, 인생의 고민을 들어주는 그들은 정작 천대받는 직업으로 여겨진다. 무형문화재인 김금화 선생을 영화화한 영화 [만신]의 박찬경 감독은 영화에 대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으로 ‘왜 무속을 다루는가?’를 꼽았으며 이 질문에 이미 무속은 양지의 문화가 아니라는 개념이 들어있다고 했다. 이것의 원인 중 하나로 현대사회의 이전인 조선시대에서 무당의 신분이 천민이었음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들자면 과거에 천대받지 않았던 직업을 찾는 것이 더 어렵다. 요즘 초등학생 장래 희망 1위를 다투는 아이돌은 ‘가수’라는 직업으로 과거에 ‘딴따라’라고 불리며 천대받았다. ‘배우’는 어떠한가? 연예인처럼 대중 앞에서 연기하거나 공연하는 직업은 과거에는 ‘광대’라고 불리었다. 그렇게 천대받던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경제력과 영향력을 가진 직업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무속인의 사회적 지위나 직업적인 위상은 왜 달라지지 않는가?
---「프롤로그」중에서
무당이란, 학문적 의미에서 ‘신과 인간의 중간 사제자로서, 무당굿이나 점집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전문 직업인’ 또는 ‘무병에 의해 신이 내려서 신당을 지어 신을 모시고 굿을 하는 사람’으로 개념을 정의하고 있다(임선진, 2010). 정식 명칭은 무속인으로 보통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여성 샤먼을 가리키는 말이며 남성 샤먼은 박수 혹은 박사라 불리는데, 한국의 샤먼을 모두 총칭해서 무당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무당은 지역마다 호칭이 다른데 서울지역에서는 만신으로 불리며, 충청도에서는 법사나 보살, 경상도에서는 화랭이나 양중, 전라도에서는 단골레, 제주도에서는 심방이나 소미 등으로 불린다. 이러한 무당은 민족적인 단어이자 일반 명사로 취급받으며 현대에 와서는 지역에 상관없이 남자는 법사나 도사, 여자는 보살이나 선녀, 무녀라고 호칭하는 경우가 많다(나무위키).
--- p.17
[만신 김금화]
중요무형문화재 제81-나 호로 서해안 풍어제 배연신굿 및 대동굿 기·예능 보유자로 ‘당일 만신’, ‘홍길동 만신’ 등의 별호로 불릴 정도로 전문 무당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였다. 1967년 10월 13일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연평 노래’와 배연신굿 공연으로 개인상을 받으며 방송과 언론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이후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 문화사절단으로 초청받는 등 가장 많은 해외 초청 공연을 했다. 국내에서의 초청공연, 학술강연 및 강의, 굿 시연 등 활동 경력은 셀 수 없이 많다. 또한, 『김금화의 무가집-거므나따에 만신 희나백성의 노래』 (문음사, 1995) 등 무속 관련 지식과 방대한 내용을 책으로 출판했다. 이러한 김금화에게는 특히 외국인을 포함해서 국내외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신딸이 많다. 이 외에도 전 대통령의 추모제 등과 같은 국가적으로 큰일이 있을 때 추모제를 진행하기도 했다.
--- p.24
앞서 소개한 경기도 도당굿, 진도씻김굿 등 일부 굿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무당의 사회 인식과 무형문화재의 사회 인식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무(巫)의 세계를 모르는 일반인의 고정관념일 수 있다. 앞서 전문 직업인에서 언급한 것처럼 모든 굿은 나름의 무당의 문화로 보존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인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위험한지 한 연구에서 진행된 무당의 인터뷰를 소개하고자 한다(임선진, 2010).
[인터뷰 중략...]
이 인터뷰를 읽고 영화 [만신]의 박찬경 감독 인터뷰 중 ‘우리는 스스로 한국의 전통을 업신여기는 경우가 많다’라는 내용이 떠올랐다. 위의 무속인 이 씨는 어린 시절부터 굿을 잘한다며 일이 끊이지 않아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웠다. 그러나 무당이라는 직업의 사회 인정에 목말랐다. 그는 미디어를 타며, 각종 대회에서 수상함에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하며 무형문화재에 대한 욕망을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다.
--- p.58
[에피소드_ 신체 고통]
우리는 굿하는 것을 일한다고 표현한다. 일하는 날을 잡으면 그날 함께 일할 사람을 정하고 약속을 잡는다. 보통 1~2주일 전에 날을 잡는데 멤버가 정해지면 다들 신기가 있는 무당이라 그 집안의 조상신의 기운을 일하는 날까지 받는다. 이번 에피소드를 선택한 이유는 무당이 이렇게 영험하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함이 아니다. 무당의 직업적인 애로사항을 알리기 위함이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이 무당이 되기를 피하려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신체적인 고통은 신내림을 받기 전에도 그렇지만 무당이 되어서도 피할 수 없다.
무당 1 아니, 오늘 굿하는 신도는 집안이 왜 이렇게 뒤숭숭해? 다들 일주일 동안 괜찮았어? 난 정말 죽을 거 같아.
무당 2 왜? 어디가 아파?
무당 1 오늘 아침에는 피똥이 다 나오네! 사흘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어. 물만 먹어도 토해! 진짜 환장하겠네!
무당 2 그렇게 힘들어서 어떻게 해? 이 사람 아버지가 대장암 말기로 돌아가셨다고 하긴 했는데 말이야. 그것 때문인가?
무당 1 아우, 그런 게 있으면 미리 언질 좀 해주지 그랬어!
--- p.71
학자들은 B.C. 2333년 단군이 나라를 건국한 시기로부터 무속이 유래되는 것으로 여긴다(박미경, 2004). 이것은 한국인에게 무속은 단순한 종교적인 의미가 아닌 오랜 전통문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굿에 관한 옛 기록이 부족해서 정확한 역사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문헌으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종교적 제의로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쓰인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등과 같은 제천의식이 있다. 이후 무당에 관한 직접적인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하는 남해왕조의 것이다. 여기에서 신라 제2대 남해왕인 차차웅이 방언으로 ‘무당’이라는 뜻이었다고 하며 고구려의 무당이 유리왕의 병의 원인을 알아내어 낫게 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현대에 와서 무당이 신이 들려 공수를 내리고 도무(몹시 좋아서 날뜀)하는 등의 굿은 적어도 고려시대에 제의 체제가 갖추어졌다고 본다(최길성, 1978).
--- p.79
Q. 굿값은 어떻게 책정되나요?
굿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현대인은 ‘굿이 뭔가요?’라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점집에 가서 무당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제사상을 차리고 집안의 안녕을 기리는 무당춤을 추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예전부터 양반 사대문 집안과 궁에서 잔칫상을 벌여놓고 무당이 춤을 추며 놀았어요. 성산거리는 임금님과 놀아주는 것을 의미하며, 장군거리에서 사용하는 ‘마누라’라는 용어는 나라님을 높여 부르는 의미입니다. 굿은 원래는 사대문 집안의 먹고 노는 굿인 한양굿에서 유래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굿할 때 차리는 상차림에 재물이 많고, 악사가 들어오고, 풍류가 있었던 것이죠. 굿할 때 저희는 상차림을 정말 크게 차립니다. 보통 사람들은 상차림이 이렇게까지 커야 하냐고 물을 때도 있어요. 이것은 굿의 유래를 모르기 때문에 묻는 것이죠. 그렇게 크게 상을 차려놓고 집안의 조상신을 불러 모아 어르고 달래주어 자손이 평안하게 지낼 수 있게 돕는 것이 작은 의미의 굿인 거죠.
--- p.86
Q. 현재 몇 명의 신을 모시는가?_ 만신 부리, 조상 부리
보통 무당이 한 분의 신만 모시는 줄 아는 사람이 많아요. 예를 들어, 동자보살이라고 간판에 쓰여 있으면 동자보살만 모시는 줄 알거든요. 그러나 무당은 한 명의 신만 모시지 않습니다. 저는 인신 계통, 자연신 계통, 조상신 모두 모시고 있어요. 조상신은 조상이 있으니 당연히 있는 것이고, 나머지 신은 신내림을 어떤 신으로 받았는지에 따라 모시는 신의 종류가 달라집니다. 저에게는 동자신, 장군신, 조상신이 있습니다. 제가 모시는 조상신과 그 조상신을 돕는 동자신이나 선녀신이 함께 있어요. 동자신이나 선녀신은 조상신에게 제 기도를 전하거나, 신들의 메시지를 제게 전달하는 심부름꾼의 역할을 해요. 그리고 간혹 제게 자신의 공수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 p.110
[한국의 7대 종단]
7대 종단이란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에 소속된 한국의 대표적인 종교를 의미한다. 종단이란 종교나 종파의 단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종교는 개신교, 불교, 유교, 원불교, 천도교, 천주교, 기타 민족종교의 종단을 의미한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는 1965년 서울에서 6개 종단(개신교, 불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천주교) 지도자들이 모여 대화모임을 갖으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2019년에 민족종교가 가입하며 현재의 7대 종단이 되었다. 7대 종단의 각 대표는 세계 평화와 기후변화 등 국가적 사태에 관한 지도자 회의에 참석하는 등 다양한 활동으로 종교인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7대 종단의 대표가 함께 진행한 오찬에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장애인에게 필요한 정책과 기후변화와 코로나19의 정책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 p.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