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은 신약의 역사서입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루카 복음사가에 따르면 구원의 역사는 세 시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시대(구약 성경), 예수님의 시대(루카 복음서), 교회의 시대(사도행전)가 그것입니다. 따라서 구약의 역사서가 하느님의 옛 백성의 역사를 다룬 것이라면 사도행전은 하느님의 새 백성인 교회의 역사를 다룬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이 역사적 관점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은 사도행전의 머리말이 당시의 역사서에서 전형적으로 쓰이는 양식과 비슷하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입문」중에서
사도행전의 저자인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땅끝’이라는 말의 의미를 지리적인 차원이 아니라, 신앙적인 차원으로 그려 나갑니다. 당시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지리적인 차원에서 ‘땅끝’이라고 하면 스페인 서쪽 끝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신앙적인 차원에서는 다릅니다. 땅끝이 있으면 땅의 중심이 있을 텐데, 루카 복음사가는 예루살렘을 신앙적인 차원에서 땅의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예루살렘이야말로 하느님의 현존이 가득한 곳이고,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평화의 길을 마련하셨기 때문입니다.
곧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도시입니다. 반면 로마는 세상의 나라인 로마 제국이 시작된 도시입니다. 그곳에는 하느님이 있어야 할 자리에 로마 황제가 있고, 거리마다 온갖 이교 신전이 가득하였습니다. 또 당시에 로마에서 선전하는 평화를 두고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라고 불렀는데 이는 전쟁으로 상대를 굴복시켜 쟁취하는 폭력적인 평화였습니다. 그러니 신앙적인 차원에서 볼 때 로마는 ‘땅끝’이었습니다.
---「사도행전 둘러보기」중에서
2장은 교회의 시대를 여는 예루살렘 성령 강림 사건(사도 2,1-13)과 베드로의 첫 설교(사도 2,14-36), 삼천 명의 세례(사도 2,37-41), 첫 신자 공동체의 생활(사도 2,42-47)을 다룹니다. 2장의 이러한 구성은 교회의 시대에서 필요한 핵심 요소가 무엇인지를 보여 줍니다. 첫째는 오순절에 내리신 성령이고, 둘째는 베드로의 설교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세 번째 요소는 세례입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아 신자 공동체를 이룬 이들이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데, 이는 네 번째 요소, 곧 성찬을 드러냅니다.
---「제2과 교회의 탄생」중에서
이제 복음 선포의 지역이 예루살렘만이 아니라 온 유다와 사마리아, 더 나아가 이스라엘 전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계기가 상당히 역설적입니다. 복음 선포가 효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잘 전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선포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스테파노의 순교에 대해 성경 본문은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사도 8,1ㄴ-4). 상식적으로 볼 때 교회가 박해를 받으면 복음 선포에 어려움을 겪게 되어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박해를 통해 교회가 위기를 겪게 되었지만 ‘전화위복’이라는 말처럼 그것이 오히려 성장의 기회가 된 것입니다.
---「제4과 스테파노와 필리포스」중에서
1.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를 내뿜으며”(사도 9,1)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그것도 그 누구보다도 충실하게 율법을 지키던 사람이 ‘살기’를 지녔다는 것은 모순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우리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잘못된 열성熱誠이 다른 이에게 폭력이 되고 심지어 ‘살기’를 내뿜게 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령 부부간에 갈등이 있을 때 한쪽만 옳고 다른 한 쪽이 틀린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저마다 열심히 가정을 위해 애를 쓰지만 지나친 열성, 잘못된 열성으로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가정만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벌어지는 일입니다. 우리 각자의 삶 속에 서 잘못된 열성으로 다른 이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었는지 반성합시다.
---「제5과 다른 민족을 향한 복음 선포의 태동」중에서
사울이 회심하였지만 그 누구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는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그리스도 신자들로부터는 여전히 불신과 오해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교회 공동체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찾아가 교회의 지도자들을 만났지만 정식으로 선교사가 되지 못한 채 고향 타르수스로 돌아가야만 하였습니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10년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울이 선교사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이가 바로 바르나바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모든 신자가 사울을 두려워할 때 바르나바만이 그를 받아들여 사도들에게 인도하였습니다. 또 자신이 안티오키아에 파견되었을 때에 그곳과 가까운 타르수스에 있는 사울을 찾아갑니다. 그리하여 철저한 외로움 속에 있던 사울을 이끌고 안티오키아뿐 아니라 소아시아 일대를 함께 다니며 선교 활동을 합니다. 루카 복음사가가 전하는 바와 같이 바르나바는 진정으로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였던 것입니다.
---「제6과 박해 속에서의 성장」중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1차 선교 여행을 전하는 가운데 사울을 ‘바오로’라고 달리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바오로는 ‘사울’이라는 히브리식 표현을 로마 방식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사울이 ‘바오로’로 바꾸어 소개되는 시점을 그의 회심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첫 번째 선교 여행을 떠나 맨 처음 도착한 키프로스 섬에서 바르예수라고도 불리는 마술사 엘리마스와의 대결 이야기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사울을 ‘바오로’라고 부릅니다. 왜 하필 이 시점이었을까요?
---「제7과 바오로의 1차 선교 여행」중에서
지금까지는 복음 선포 활동의 장애물은 박해였습니다. 그런데 교회 밖에서 오는 이러한 어려움에 더하여 이제는 교회 안에서도 걸림돌이 찾아옵니다. 다른 민족들을 향한 복음 선포에 대해 교회 안의 구성원마다 생각이 첨예하게 달랐던 것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내부적인 갈등을 의연하게 대처합니다. 사도들과 원로들이 다 함께 모여 이 문제를 다루고 성령의 힘을 받아 해결 방안을 결의한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예루살렘 사도 회의’(49년)라고 부르는데, 15장은 바로 이것을 다룹니다.
---「제8과 예루살렘 사도 회의」중에서
본디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두 번째 선교 여행도 함께 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둘 사이에 다툼이 벌어져 갈라섰습니다. 바르나바가 여행에 사촌 마르코를 같이 데려가려고 하였지만, 바오로는 팜필리아에서 자기들을 버리고 떠난 그를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사도 15,38 참조).
이 일화는 우리에게 소소한 위로를 주는 듯합니다. 일상 안에서의 크 고 작은 다툼이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인聖人으로 공경받는 바오로나 바르나바 같은 사람들에게도 벌어지니 말입니다. 아무리 거룩한 사람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거룩함이란 결점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결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하느님께 그것을 온전히 내어 보이는 데에서 옵니다.
---「제9과 바오로의 2차 선교 여행」중에서
바오로는 에페소에서 머물고 있을 때부터 예루살렘을 거친 뒤에 로마에도 방문하여 선교할 계획을 지닙니다. 그런데 그가 예루살렘을 찾아간다는 것은 상당한 위협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바오로에게 큰 배신감을 느낀 유다인들이 그를 해칠 가능성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바오로는 예루살렘을 찾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바오로의 결의는 그가 3차 여행을 마칠 무렵 에페소의 원로들을 만났을 때 한 말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서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다만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성령께서 내가 가는 고을에서마다 일러 주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사도 20,22-24). 바오로의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목숨을 내놓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을 걸으셨던 모습과 비슷하다 할 수 있습니다.
---「제10과 바오로의 3차 선교 여행」중에서
1. 바오로는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지만 여러 차례 감옥에 갇혀 지내야만 하였습니다. 필리피에서는 무속 신앙으로 돈벌이하던 여자의 선동으로 말미암아(사도 16,19 참조), 에페소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감옥에 갇혔습니다(참조: 필리 1,17; 필레 1,9). 또 예루살렘과 카이사리아에서는 유다인들의 증오심을 사서 감옥에 갇혀야만 하였습니다. 이는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사도 5,18 참조).
생각해 보면 신앙의 증인 가운데 많은 이들이 감옥살이를 겪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선조들 역시 신앙을 지키다가 감옥에 갇히는 일이 허다하였고, 독재 정권에서 정의를 외치다가 투옥되는 이들도 많습니다. 사실 이들의 경험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분께서도 공생활 끝에 체포되시어 감옥에 갇히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을 지키다 보면 때로는 사회나 국가로부터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 이러한 사례는 없는지, 혹은 ‘내’가 생각하는 ‘감옥의 영성’은 무엇인지 떠올려 봅시다.
---「제12과 카이사리아에서의 감옥살이」중에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사도행전의 이상한 결말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은 애당초 바오로의 일대기를 다루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열두 사도, 일곱 봉사자, 다섯 선교사,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질 수많은 증인들이 예수님에 대해 땅끝까지 증언하는 과정을 말하고 싶어 하였습니다. 앞서 둘러보기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예루살렘이 구원 사건의 중심지라면 로마는 예수 그리스도와는 가장 거리가 먼 ‘땅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사도행전은 바오로가 예수님의 명령(사도 1,8 참조)에 따라 땅끝에 이르러 자유롭고 담대하게 증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입니다.
---「제13과 로마로 호송된 바오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