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말할 수 없이 큰 축복으로 새겨진 두 번의 만남이 있다. 바로 박윤선 목사와 옥한흠 목사와의 만남이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박윤선 목사는 나를 볼 때마다 고난은 정말 유익이라고, 고난은 기도하는 사람을 만든다고 말하곤 했다. 아직도 박윤선 목사의 음성이 내 귀에 쟁쟁하다. “기도한 것은 당대에 응답이 없더라도 후대에라도 꼭 응답이 있소.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아가시오. 그분이 해결해주십니다.” 그렇게 기도를 강조했다. 나중에는 박 목사에게도 첫째 아들로 인한 큰 아픔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분은 나를 깊은 관심으로 대하고 긍휼히 여긴 것이었다.
---「프롤로그」중에서
모든 현실은 점점 미치도록 나를 괴롭혔고, 어머니라는 방패마저 사라진 상황에서 나를 괴롭히는 언니는 하루가 다르게 내 숨통을 조여왔다. 난 결국 언니를 청량리뇌병원(후에, 청량리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것만은 하지 않으려 했던 어머니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었지만, 일단은 나부터 살아야 했다. …
이런 삶이 너무나 무거워 벗어나고 싶던 어느 날, 난 회사를 가는 대신 무작정 기차를 탔다. 아무 생각 없이 천안에서 내려 아무 여관에나 들어갔다. 수면제 스무 알을 삼키며 나는 모든 걸 포기하고 놓아버렸다. 하지만 난 그때 죽지 않았다. 아니, 죽지 못했다. 저승일 거라고 여기고 눈을 뜬 곳이 여전히 이생이라는 것을 안 순간,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난 느낌이었다.
---「1. 넌 사랑으로 태어난 년이지」중에서
강 목사의 설교와 점점 더 커지는 회개 소리에, 예배당 안은 어느새 북새통, 난리 난 형국이 되었다. 그럴수록 더 집중해야 한다는 직감에 나는 눈을 더 질끈 감았다. 바로 그때였다. “사랑하는 딸아!”
은은한 음성과 함께 흰옷 입은 빛나는 존재가 내 앞에 나타났다. 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인자한 음성이 내 기억을 어린 시절로 소환했다. 무성 영화 하나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았다. 다섯 살 적 엄마의 주머니에서 동전을 훔친 일부터 파편처럼 떠오르더니, 대감상자에 손을 넣어 지폐를 훔쳐 헌금하던 일, ‘언니 밥에 독을 탈까?’ 생각할 정도로 언니를 미워했던 일, 광대 짓이라며 무용하고픈 내 꿈을 좌절시킨 어머니를 미워했던 일, ‘교회 갈래? 집 나갈래?’ 그렇게 강압에 쉽게 굴복하고 신앙을 버린 일, … 열여섯 살 때 초로의 목사가 세례를 주며 했던 말도 문득 생각났다. 까맣게 잊고 있던 일이었다. 내 눈앞에서 그때 그 순간이 마치 지금 벌어지는 일인 양 펼쳐지고 있었다.
---「3. 사랑하는 딸아」중에서
“김 목사님! 목사님! 목사님!” 큰 소리로 다급하게 부르는 내 목소리에 김 목사가 놀라서 나오자 나는 다짜고짜 소리쳤다. “이 여자에게 있는 귀신을 물리쳐야 해요. 목사님, 함께 기도해주세요.”
우리는 여자를 데리고 예배당으로 갔다. 맨 앞자리에 여자를 앉히고 한쪽 손은 김 목사가, 다른 한 손은 내가 잡고 예수 이름을 부르며 기도를 시작했다. 사도행전 3장 1절 말씀, 베드로와 요한이 제9시에 기도하러 성전에 갈 때, 태어나면서 걸을 수 없던 자를 예수 이름으로 걷게 한 사건을 기억하면서 쉬지 않고 예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다. 마귀를 물리쳐달라고 외쳤다. 그렇게 기도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성령님이 내 입술을 주장하신 듯, 나도 모르게 여자를 향해 질문이 터져 나왔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내 눈을 똑바로 보던 여자가 눈을 부라리며 입에서 거품을 물고 대답했다. “군대 귀신이다.” 성경에서만 나오는 군대 귀신이라는 대답에 김 목사와 나는 더욱 합심하여 예수 이름으로 나갈 것을 명하며 기도했다. 갑자기 여자가 장의자에 쓰러지더니 입에서 거품을 분수처럼 뿜어내며 발작했다. 그러고는 이내 송장처럼 꼼짝도 안 하고 누워 있었다. 성경에서 읽고 들은 대로 행하긴 했지만, 사실 그런 광경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4. 박윤선 목사와의 만남」중에서
내가 사랑의교회에서 확인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제자 훈련이 사람을, 인생을 바꾼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지식인이 제자 훈련을 통해 깨지고 변화되는 모습을 숱하게 목도했다. 교회마다 특징이 있지만, 지역상 사랑의교회 성도는 부와 지식을 갖춘 자들이 많이 왔다. 제자 훈련으로 180도 달라진 큰 회사 사장이 주일 주차 교통정리를 하고, 그 앞에서 얼떨떨해하면서 차를 주차하는 회사 직원 모습을 보는 것은 흔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사랑의교회에서 만난 가장 큰 놀라움은 옥한흠 목사였다. 특히 그에게 감동을 받은 건 부교역자들을 사랑하며 진심으로 섬기는 모습이었다. 그는 당회장으로서 권위를 부리지 않고 평소에는 상하 구분 없이 친구처럼 대했다. 그의 권위는 말씀과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굳이 어깨에 힘을 줄 필요가 없었다. 화요일마다 부교역자들과 성경 공부하는 시간에는 무척 냉철하고 예민했다. 그건 성경 말씀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노력이었고, 부교역자들도 알아서 그 권위에 순복했다.
---「8. 사랑의교회 사역」중에서
한편, 선교사 몇 명이 모여 북한에 구호품을 보내기로 했다. 한 사람은 내복을, 한 사람은 겨울 잠바를, 또 한 사람은 털 신발을 담당했다. 그들은 모두 후원금을 받아 보냈지만 나는 떡을 팔아 자비량으로 감당했다. 떡을 얼려서 5톤짜리 차에 꽉꽉 실었다. 주로 평안북도 지역 고아원과 생활고가 심한 노인들이 있는 지역으로 보냈다. 그 후 참으로 많은 떡을 북한에 보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새벽 6시면 평양에서 오는 기차가 도착했다. 그 시간엔 영업하는 식당이 없었고, 배고픈 북한 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아 불빛이 환한 떡방 문을 두드렸다. “무얼 좀 먹을 수 있습니까?” 나는 그들에게 떡국 한 사발을 끓여주곤 했다. 나는 그들이 내미는 돈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럴 때면 돌아오는 감사의 말은 한결같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내가 주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왜, 나는 북한 사람에게 유독 연민을 느낄까를 생각해보았다. 다른 게 아니었다. 그건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마음이었다.
---「12. 위로와 회복이 있는 선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