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꼬마 공주님, 왜 울고 있나요?'
나는 깜짝 놀라 목을 긁던 손을 멈추었다. 내가 꿈을 꾼 걸까? 그러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도와드릴까요, 꼬마 공주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른 꽃들 위로 모기들이 날아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호숫가의 얕은 물 속에서 무엇인가 푸득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해는 이제 소나무들 사이에 떠서 빛나고 있었다. 물 속에서 푸득거리던 물체는 금속 빛을 내는 물결 위로 둥근 테를 그리며 물가로 나왔다. 두 눈이 동그랬다.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셨나 보지요?'
저게 뭐지? 개구리였다……. 아니, 개구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컸다. 동그란 두 눈은 흐린 햇빛과도 같은 빛을 띠고 있었다.
'그래……잃어버렸어……내 황금 공을.'
'물 속으로 들어가는 걸 봤어요. 난 어디 있는지 알죠.'
나는 멍한 기분으로 내가 아마 정신이 이상해졌나 보다고 생각했다. 너무 놀라서 그렇게 된 거다. 작년에 결혼식장으로 야생마 한 마리가 뛰어드는 것을 보고 돌아버린 여자 애처럼. 그 여자 애는 그때 완전히 미쳐버렸다. 그리고 끌려가서 골방에 갇혔다. 이제 사람들이 나도 가두어버릴 텐데. 나는 휙 돌아서서 아버지의 허름한 탑들을 향해 오르막길을 내닫기 시작했다.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여기 있어요. 봐요. 보라니까요, 난 공주님의 소중한 황금 공도 너끈히 따라잡을 수 있어요.'
나는 걸음을 멈추고 목소리가 말한 대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그 괴상한 물체가 길가의 물 속에서 펄쩍 튀어나왔다. 나는 빽 하고 비명을 질렀다. 개구리처럼 생긴 그 물체가 말했다.
'겁내지 말아요. 난 순해요.'
그건 개구리처럼 보였다. 몸집이 작아서 그렇지 거의 사람 같았지만 그래도 개구리였다. 어두우면서도 엷은 초록색의 비늘이 덮여 있고 동그랗고 갈색으로 빛나는 개구리 눈을 하고 있었다. 손처럼 보이는 앞발에는 물갈퀴도 달려 있었다. 개구리는 그 앞발을 치켜들었다. 발톱은 없었다. 그리고 벌린 입안에는 짙은 빛깔의 길다란 혀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나는 겁이 났다. 물귀신인가 봐, 호수에 산다는 물귀신. 마을의 늙은 여인네들이 짓궂은 장난을 하지 말아달라는 뜻으로 집 밖에 케이크를 내놓곤 하는 바로 그 물귀신. 개구리가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그럼 공주님은 황금 공을 찾고 싶지 않은가 보지요?'
난생 처음 나는 어른스러운 결정을 내려야 하게 된 것 같았다. 성난 아버지와 호수에서 튀어나온 기분 나쁜 생물― 둘 다 끔찍했지만 그래도 그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하게된 것이다.
'난 공을 찾고 싶어.'
'내가 공을 찾아오면.' 하고 개구리 귀신이 말했다.
'그 대신 내 부탁을 하나 들어줘야 해요.'
'네가 원하는 게 뭔데?'
'공주님의 것이 되는 거예요.'
너무나도 간단명료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잠시 다시 생각해보니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하기도 했다.
'내 것이 된다고? 어떻게?'
'공주님의 소유가 되는 거죠.'
그게 자존심이나 탐욕 때문이었을까? 혹시라도 내가 무력한 존재 안에 어떤 힘을 원했던 걸까? 귀신을 내 노예로 가진다는 것. 아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그때 내겐 오직 황금 공을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밖엔 없었다. 더구나 개구리 귀신이 옛날 이야기 책을 보면 흔히 그렇듯 내게 순결을 바치라든가 내가 낳을 첫아이를 내놓으라든가 하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그래서 난 말했다.
'좋아 널 내 걸로 해줄게. 가서 공을 찾아다 줘!'
개구리 귀신이 귀엽게 퐁당하는 소리를 내며 물 속으로 들어가고 난 뒤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아마도 내가 꿈을 꾸고 있나 보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나는 공을 놓쳐서 물 속으로 빠뜨린 것조차 꿈이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혹시 공이 그대로 잇지 않을까 하고 주변을 둘러보기까지 했다.
해는 이제 숲의 삼분의 일쯤 되는 높이의 좀더 어둡고 낮은 부분으로 내려와 있었고 하늘은 구릿빛을 띠고 있었다. 귀뚜라미들이 들판을 가로질러 뛰기 시작했다. 올빼미 한 마리가 이른 저녁 울음을 울었다. 잠시 후 호수의 수면이 다시 갈라지며 그토록 기다려 마지않던 황금공이 나타났다. 꿈이 아니었다. 정말로 진짜 황금공이 나타난 것이다. 황금 공은 개구리의 두 손에 쥐어져있었다. 나는 헐레벌떡 호숫가로 달려 내려가 공을 휙 잡아챘다.
나는 열 손가락으로 단단히 공을 쥐고 품에 안았다.
그러자 개구린지 귀신인지가 수면을 가르고 물 속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나는 개구리가 몇몇 동물의 얼굴이 그러하듯 무척이나 슬픈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개구리의 두 눈은 황갈색의 눈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약속 잊지 말아요.'
'알았어.'
나는 집을 향해 급히 걸음을 옮겼다. 개구리가 내 뒤를 따라 팔짝팔짝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쳐다보지도 안으면서 말했다.
'저리 가!'
'내가 공주님 거라면 난 언제나 공주님과 함께 있어야지요. 일분 일초도 떨어지지 않고 밤이건 낮이건.'
그제서야 나는 옛날 이야기 속의 처녀들이 그러하듯 뒤늦게 내가 무엇을 약속했는지를 깨달았다.
'안 돼! 그건 말도 안 돼!'
'나하고 약속했잖아요.'
그날 밤, 천 짜는 남자는 어서 이름을 생각해내라는 표정으로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드루셀발트, 리펜바이스트, 하멜스웨이드?' 그녀가 여왕에게서 건네받은 명단의 맨 아랫줄을 읽어내렸다. '아니오' 그가 지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만약 당신의 이름을 알아맞히면 당신이 마법의 대가를 치러야겠죠. 그리고 난 내 아기를 데리고 있을 수 있구요.'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가 처음 선물로 주었던 식탁보로 잠든 아기를 감쌌다. 그리고는 여왕이 화들짝 놀라 어쩔 셈이냐고 묻는 것도 못 들은 척 하고 아기를 천 짜는 남자의 팔에 안겨주었다. '나는 당신의 이름을 몰라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몸을 굽혀 그의 부드러운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이름 같은 건 모릅니다. 사랑밖에는요.'
--- p.266-267 럼펠스틸트스킨 중에서... ---p.271-272 옮긴이의 말 중에서
그가 왜 그토록 변해버린 건지 모르겠다. 나는 임신과 출산 때문에 육체적으로 변했지만 그는 영혼이 달라져버렸다. 인간이었을 때 그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을까? 당연히 그랬겠지. 잘생기고 고상하고 남자다운 남자-왕자님 말이다. 그는 마술을 부려 웃겨주는 일도 없고 양초에 직접 불을 붙이지도 않는다. 그는 모든 마법을 어딘가에 팽개쳐두고 잊어버린 게 틀림없다.
--- p.8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