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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Inside 1

요한계시록 Insid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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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2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쪽수확인중 | 153*224*20mm
ISBN13 9791196247928
ISBN10 1196247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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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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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첫째 인: 흰 말과 그 탄 자(6:1-2)

가장 난해하고 중심이 되는 흰 말과 탄 자에 이르렀다. 2절은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고 말한다. 이미 서두에서 흰 말과 탄 자에 대한 여러 견해와 그 오류들을 논증했다. 세대주의를 비롯한 극단적 ‘미래주의’는 첫째 인을 대환난으로 보기 때문에 흰 말과 탄 자를 ‘적그리스도’라 단정했다. 그와 반대로 무천년설자들은 미래와 상관없는 ‘과거 사건’으로 간주하는 우를 범했다. 적게나마 근거가 있지만 “일부를 전부로 간주”하는 실수를 범했다. 계시록은 예수 승천 후로부터 시작하여 재림과 영원까지를 포함한다. 논제의 초점이 되는 흰 말과 탄 자를 QST하자.

1) 흰 말
‘네 마리의 말’의 특징은 ‘그 말의 색깔’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붉은 색’은 큰 칼과 관련되어 전쟁을 상징하는 ‘피의 색깔’이다. ‘검은 색’은 기근과 관계있다. ‘청황색 말’(a pale horse)은 말 탄자의 이름이 ‘사망’이듯이 죽음의 색깔과 관계있다. 첫째 인의 ‘흰 말’의 특징은 ‘흰색’에도 나타난다. 흰색은 성경에서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적극적’인 의미로 쓰였다.

사데 교회의 이기는 자들에게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계 3:4∼5)라고 약속했다. ‘흰 옷’은 이기는 자들에게 약속한 것으로서 더럽히지 않은 ‘순결’을 의미하고, 그들의 ‘승리’와 주님의 ‘인정’을 의미한다.

계시록 6장에는 다섯째 인을 뗄 때 순교자들에게 ‘흰 두루마기’가 주어지는 것은 ‘그들의 순결’과 ‘승리’와 ‘하나님의 인정’을 의미한다. 계시록 19장에는 어린 양의 혼인예식에 참석한 자들에게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19:8)라고 말한다. ‘세마포 옷’은 ‘흰색’으로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의미한다.

신약성경에서 주님의 부활 때에 천사들이 나타난 상황을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마 28:2∼3)이라고 말한다. “눈 같이 희다”는 것은 옷이 ‘흰색’으로 ‘눈 같이 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권세에 순종하는 천사들이 ‘흰 옷’을 입었다는 것도 동일한 의미가 내포된다.

첫째 인을 뗄 때의 ‘흰 말’도 성경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희다’는 것은 흰 말과 탄 자가 ‘부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적극적인 존재’라는 것을 가리킨다. 흰 말과 탄 자를 ‘적그리스도’로 간주한 오류에는 첫째 인이 대환난의 때라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그 위에 ‘희다’가 의미하는 성경의 원칙(doctrine)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흰색’은 ‘순결’과 ‘승리’와 ‘하나님의 인정’을 의미하기 때문에, 흰 말과 그 탄 자는 매우 ‘적극적’인 의미이다.

2) 빈 활
“빈 활”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는 ‘거짓된 평화’라는 해석이다. 즉 빈 활을 부정적인 의미로 본다. 객관적으로 무엇이든지 부정적인 의미로 볼 수 있고, 반대로 적극적인 의미로 볼 수도 있다. 이 방향을 잡는 것이 해석의 첫걸음이다. ‘빈 활’을 부정적으로 본 것은 ‘흰 말과 탄 자’를 부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빈 활은 ‘거짓된 평화’가 아니라, “활이 이미 쏘아졌기 때문에 빈 활을 들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계시록은 성경의 결론이다. 따라서 성경의 모판이 되는 모세오경을 비롯한 줄기가 되는 구약과 신약의 예언과의 관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시편 45편은 “왕의 능력과 아름다움과 승리”를 노래한 “왕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인데 5절은 다음과 같이 예언한다.

왕의 화살(Thine arrows)은 날카로워 왕의 원수(the king's enemies)의 염통을 뚫으니 만민이 왕의 앞에 엎드러지는도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시 45:5)

왕은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원수는 하나님의 대적자 ‘사탄’을 가리킨다. 왕이 원수를 패배시킬 때, ‘칼’이 아닌 ‘활’을 사용했다. 왕의 날카로운 화살은 왕의 원수인 사탄의 염통을 뚫었다. 화살을 쏘신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십자가에 대한 복음서의 관점과 서신서의 관점은 차이가 있다. 복음서에는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visible’한 광경”을 사람들이 목격했다. 골로새서에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십자가로 승리하신 ‘invisible’한 광경”을 보여 준다.

골로새서 2:13∼15은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고 말씀한다.

골로새서에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십자가의 배후의 일들을 보여준다. 즉 죄를 사하심, 법조문을 쓴 증서를 지우고 제하심,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심, 십자가로 승리하심을 보여준다. 이것은 시편 45편의 예언된 ‘왕의 날카로운 화살’이 원수의 염통을 뚫은 것으로 예언됐다. 더 근원적으로 창 3:15에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으로 예언됐다. 흰 말과 탄 자가 들고 있는 활이 ‘빈 활’인 까닭은 그 활의 화살을 그리스도께서 이미 원수에게 쏘셨기 때문이다.

흰 말과 탄 자의 손에 ‘빈 활’이 들려 있다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승리를 붙잡고 증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활의 화살’은 주님이 쏘신 것으로 어느 누구도 또다시 활을 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도 구속을 성취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빈 활을 든 것은 승천하신 주님이 맡기신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사명을 받은 교회가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는 십자가로 ‘승리하신’(성취)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빈 활’을 들고 있다.

3) 면류관을 받음
일곱 인 가운데 유일하게 면류관을 받은 자는 ‘흰 말과 탄 자’이다. 적그리스도라는 관점으로 보면, 면류관을 받는 것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해석하지 않고 간과해 버린다. 그런 이유는 스스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외면했기 때문이다. 모든 성경에 나타난 면류관을 찾아보면, 흰 말과 그 탄 자가 면류관을 받은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다.

박해 받는 교회인 서머나 교회에게 주님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라고 말씀했다. ‘생명의 관’은 ‘τ?ν στ?φανον τ?? ζω??’(톤 스텝하논 테스 조에스)로서 ‘ζω?’(조에)는 ‘영원한 생명’, ‘στ?φανοs’(스테파노스)는 ‘면류관’을 의미한다. 개역 개정의 ‘관’보다는 ‘면류관’이 적절한 번역이다. 면류관은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보상이다. 죽도록 신실하면 서머나 교회는 순교하게 될 것이고,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다. 성경의 모든 사례를 보자. 면류관(στ?φανοs, 스테파노스)은 구원받았기 때문에 주는 것이 아니다. 신자들 가운데 이기는 자들에게 약속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στ?φανοs)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1)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στ?φανοs, 스테파노스)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στ?φανοs)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5)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στ?φανοs)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전 4:8)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στ?φανοs)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약 1:12)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στ?φανοs)을 얻으리라(벧전 5:3∼4)

성경에 나타난 면류관(στ?φανοs)은 모두 신자들 중에서 ‘이기는 자들’에게 약속한 것이다.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은 주님께 신실하게 되는 것이다. 동일한 원칙으로 첫 번째 인을 뗄 때의 ‘흰 말과 탄 자’에게 면류관이 주어졌다는 것은 그들이 승리했고, 따라서 주님이 상으로 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면류관은 교회 가운데 이기는 자들에게 약속된 것이다. 적그리스도든지 악한 세력은 결코 받을 수도 없고 관계도 없다. 흰 말과 탄 자가 어린 양에게 면류관을 받는다는 것은 그들이 적그리스도나 악한 세력이 아니라 매우 적극적인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4)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함
흰 말과 탄 자가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고 말한다. ‘흰 말’의 ‘흰색’은 ‘적극적인 의미’였고, ‘빈 활’을 든 것도 ‘적극적인 의미’였다. 이들이 받은 면류관도 ‘적극적인 의미’였다. 따라서 흰 말과 탄 자가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는 것도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라 ‘적극적인 의미’이다. 빈 활은 그리스도께서 원수인 마귀를 향해 이미 쏘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빈 활을 들고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승리를 붙잡고 전파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나가서’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가리키고, ‘이기고’는 그들이 복음을 전파함으로 승리했음을 의미한다.

논란이 되는 난해한 구절은 “또 이기려고 하더라”이다. 이전에 복음을 전하여 이겼고, 모든 민족에게, 땅끝까지 증거하기 위해서 또 나아가고 이기려고 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들은 복음을 전하고 있고 “이기려고 한다”는 것과 일치한다. ‘전하려고’와 ‘이기려고 한다’는 차이가 있다. “전한다”(사도행전의 관점)라는 단어는 단지 “복음을 전파하는 현재의 상황”만을 보여준다. 반면에 “이기려고 한다”(계시록의 관점)는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주님의 승리를 붙잡고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 시대에 걸쳐 복음을 증거하다가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은 ‘실패한 것’이 아니다. ‘이긴 것’이다. 이것이 복음에 대한 ‘계시록의 관점’이다. 전 시대의 성도들이 나가서 이겼다. 또한 이 시대에 모든 성도가 나가서 ‘이기려고’한다. 이것은 신실한 교회의 모습과 승리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함의되어 있다. 이와 같은 성경의 근거들은 ‘흰 말과 탄 자’가 적그리스도도 아니고 그리스도도 아니라는 것을 가리킨다. 바로 복음을 위임받은 우리들이다.

6. 성경의 원칙을 통해서 분별하기

1) 성경 QST 해석 법칙: 적극적 의미 vs 소극적 의미
흰 말과 그 탄 자는 가장 난해한 부분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다. 각 요소들을 통해서 그 의미를 분별할 수도 있고, 성경의 원칙을 통해서도 분별할 수 있다. 필자는 성경의 비유를 연구하면서 성경이 기록된 원칙을 발견하고 “성경 QST 해석 법칙”을 정리하여 유튜브 ‘워킹 바이블 TV’에 소개했다.(주: QST는 Quiet Searching Time 약자)

‘워킹 바이블 TV 채널의 42번, 43번, 46번 영상에 “성경 QST 해석 8가지 법칙”이 있다. 그중에서도 No. 8 QST 해석 법칙은 “종류의 법칙(Kind의 법칙)” 혹은 “조화의 법칙(Harmony의 법칙”이 있는데, 한 문맥이나 구절에서 언급된 요소들은 ‘같은 종류’로 묶여져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마태복음 3:12에 “알곡은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말한다. ‘알곡’은 거듭난 신자를 의미하고, ‘쭉정이’는 ‘불신자’를 의미한다. 따라서 ‘곳간’과 ‘꺼지지 않는 불’도 비유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같이 언급된 구절이 비유라면, 같은 그룹에 있는 단어도 비유이다. 하나는 비유인데 다른 것은 ‘문자적 의미’가 섞이지 않는다. 동일한 원칙으로 같은 그룹의 구절이 문자라면, 다른 구절도 문자이다. 만일 문자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가 뒤섞인다면 문제가 일어난다.

전도서 11:1은 “네 떡을 물 위에 던지라”고 말한다. 대부분 ‘떡’을 ‘물질적인 떡’으로 해석하고, ‘많은 물 위’도 ‘문자적인 의미’로 해석한다. 그 결과 “떡을 사람이 아닌 물 위에 던지라”는 말씀으로 오해했다. 성경의 관점은 물질적인 떡이 아니기 때문에 ‘떡’은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한다. 따라서 ‘많은 물 위’도 비유로서 ‘많은 사람’을 가리킨다. 즉 ‘떡’과 ‘많은 물 위’는 모두 ‘상징’으로서 같은 종류로 묶여 있다.

흰 말과 탄 자를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가 있다. 흰 말과 탄 자가 적그리스도라면 네 가지 요소 모두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의미이다. 반대로 흰 말과 탄 자가 ‘적극적인 의미’라면 네 가지 요소 모두 ‘적극적인 의미’이다. 이것은 마치 네 개의 미지수를 가진 방정식에 비유할 수 있다. 만일 네 개의 요소가 다른 종류(의미)라면 분별할 수 없다. 그러나 네 개의 요소가 같은 종류(의미)라면 난해한 요소가 있을지라도 그것이 어떤 것에 속하는지 분별할 수 있다.

흰 말과 탄 자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첫째는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의미든지, 둘째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희다’라는 것은 성경의 모든 곳에서 ‘적극적인 의미’로 쓰였다. 어디에서도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 예가 없다. 따라서 첫째 인의 흰 말도 ‘적극적인 의미’라는 것을 의심할 바 없다. 면류관도 ‘흰색’과 같이 ‘적극적인 의미’(Good)이다.

만일 ‘빈 활’이나 ‘나가서 이기고 이기려고 하더라’의 의미가 불확실하게 보일지라도 같은 그룹에 있는 두 가지 요소가 ‘적극적인 의미’라는 것을 안다면, 바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방향타 역할을 한다. 첫째 인의 흰 말과 탄 자는 네 가지 요소들을 통해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같은 종류의 의미’가 계시록에서도 일치하고, 성경 전체의 원칙을 통해서도 확증된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서로 ‘크로스 체크’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혹시라도 있을 오류의 가능성을 제거한다.

위의 표는 첫째 인에 관련된 네 요소가 적극적 의미(Good)인지 아니면 ‘소극적 의미’(Bad)인지를 표시했다. 흰 말과 면류관의 항목을 ‘Good’으로 표시한 것은 ‘적극적인 의미’가 확실하기 때문이고, 따라서 ‘Bad’가 확실히 아니기 때문에 대각선으로 표시했다. “적극적인 의미”의 항목 ‘빈 활’과 ‘이기고 이기려고 하더라’의 항목에 “?”한 것은 어떤 의미인지 미지수로 남겨둔 것을 의미한다. 네 요소는 모두 흰 말과 탄 자라는 첫째 인에 속해 있기 때문에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즉 ‘흰 말’과 ‘면류관’이 ‘부정적 의미’(Bad)라면 나머지도 ‘부정적 의미’(Bad)이고, 이와 반면에 ‘적극적인 의미’라면 나머지 두 항목(? 표시한 것)도 적극적인 의미이다. 성경에서 ‘희다’는 것과 ‘면류관’은 확실히 적극적 의미(Good)이기 때문에, 미지수로 남겨둔 두 요소, 즉 ‘빈 활’과 ‘이기고 이기려고 하더라’는 적극적 의미(Good)이다. 이것은 성경 전체의 문맥(흐름)과 일치한다.

2) 성경 QST 해석 법칙; 상징과 문자
‘흰 말과 탄 자’는 일곱 인 중에 네 인에 속해 있고, 나머지 ‘세 인’은 한 그룹을 이룬다. 다음 비교표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네 인’은 모든 네 생물과 관계된다. 반면에 ‘세 인’에는 네 생물과 어떤 관계도 없다. 네 인은 모두 네 생물이 ‘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와 반면에, 세 인에는 네 생물의 어떤 명령도 없다. 네 인은 모두 ‘각 말과 탄 자’가 나오는 반면에, 세 인에는 어떤 말(馬)도 나오지 않는다. 전반부의 네 인은 모두 각 말(馬)과 탄 자들이 받는 도구가 있고, 후반부의 세 인은 말(馬)과 탄 자도 나오지 않고 따라서 무엇을 받은 것도 없다. 단지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네 인 중 세 인은 모두 그 의미가 명확하다. 붉은 말과 탄 자는 전쟁을, 검은 말과 탄 자는 기근을, 청황색(pale) 말과 탄 자는 사망을 상징한다. 세 인의 공통점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은 ‘문자적인 의미’가 아니라 ‘상징적 의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두 ‘의인화’ 되었다. 이것은 흰 말과 탄 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별하는 시금석을 제공한다. 네 인이 모두 공통 요소가 일치한 것처럼, 흰 말과 탄 자도 다른 세 인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공유한다.

따라서 흰 말과 탄 자는 ‘복음 증거’를 의미한다. 만일 흰 말과 탄 자를 적그리스도나 그리스도로 해석한다면, 상징이라는 것은 일치하지만, 구체적인 인물을 가리키고 다른 세 인과 같이 ‘의인화’가 아니므로 빗나간 해석이다. 전쟁과 기근과 사망이 모두 말 탄 자로 상징될 뿐만 아니라 ‘의인화 ’되었다. 따라서 같은 그룹에 있는 ‘흰 말과 탄 자’도 ‘의인화’ 되어야 성경의 원칙에 맞는다. 흰 말과 탄 자는 그리스도나 교회가 아니라 ‘복음 증거’를 의미한다.
7. 흰 말과 그 탄 자가 적그리스도가 아닌 증거들

1) 활동 시기의 불일치
만일 첫째 인의 흰 말과 탄 자가 적그리스도이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 활동 시기’가 일치해야 한다. 흰 말과 탄 자는 ‘첫째 인을 뗄 때’에 활동을 시작한다. 적그리스도는 계시록 13장에 나타난다. 1절은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모독하는 이름들이 있더라”고 말한다. ‘한 짐승’은 적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따라서 계시록 13장의 시기는 몇 번째 인과 관련되었는지를 보고, 계시록 6장의 첫 번째 인과 비교하면 분별할 수 있다. 만일 양자의 시기가 일치하면, 양자가 일치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만일 양자의 시기가 일치하지 않는다면, 양자가 일치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 전자의 경우는 ‘약간의 가능성’을, 후자는 ‘확실한 불가능’을 알게 된다.

6장에서는 첫째 인을 뗄 때에 ‘흰 말과 탄 자’가 등장한다. 13장의 시점은 계시록 9:1에 기록된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고 ‘첫 번째 화’라 불리는 재앙이 있을 때이다. 그런 후 13절에서 여섯째 천사가 여섯째 나팔을 분다. 따라서 13장은 여섯째 나팔을 분 이후의 일이다. 10장과 11장은 삽입부이다. 13장의 짐승이 등장하는 시기는 일곱 나팔 가운데 여섯째 나팔이 분 후이다. 아래 표에서 나타나듯이 흰 말과 탄 자의 시기와 적그리스도의 시기는 서로 큰 시간적인 차이가 있다. 이것은 흰 말과 탄 자가 적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증거이다.

2) 가장한 적그리스도라는 견해
2절은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이기려고 하더라”고 말한다. 이 구절을 근거로 계시록 19장의 ‘백마를 타신 주님’을 이미테이션했다고 그레고리 K. 비일은 주장한다. 그는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할 수 있다는(고후 11:14) 경고의 말씀을 들어, 흰 말과 탄 자도 적그리스도가 가장한 것이라고 단정했는데 매우 성급한 결정이다. 가능성과 심증이 아니라 구체적인 증거로 분별해야 한다.

만일 흰 말과 탄 자를 위장한 적그리스도라고 간주하는 것이 성경의 흐름과 일치한다면,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이와 반면에 그런 주장이 잘못된 해석이라고 하면, 충돌과 불일치가 일어난다. 흰 말과 그 탄 자는 면류관의 ‘수상자’이고, 어린 양은 면류관의 ‘수여자’이다. 만일 흰 말과 탄 자가 ‘가장한 적그리스도’라고 하면, 어린 양이 악한 자인 적그리스도에게 면류관을 주었다는 것이 된다.

이것은 주님의 성품과도 맞지 않고, 성경의 문맥과 일치하지 않는다. 어린 양이 흰 말과 탄 자에게 면류관을 주신다는 것은 그가 한 일을 ‘인정하고 칭찬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어린 양이 악한 자에게 면류관을 준다고 간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들은 흰 말과 탄 자가 적그리스도와 같이 ‘부정적인 자’가 아닌, ‘긍정적인 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3) 면류관을 받음
성경에서 면류관이 의미하는 원칙이 있다. 계시록 2:10은 “네게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관(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한다. 교회 가운데 이기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이다. 면류관은 이기는 자 외에는 적그리스도를 비롯한 어떤 자도 받을 수 없다.

4)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한다는 의미
흰 말과 탄 자는 “이기고 이기려고 하더라”고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그 반대로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매우 단편적이다. 한 가지 주장이 사실이었다고 해서, 그의 견해가 사실이라는 것을 확증하지는 않는다. 흔히 범하기 쉬한 오류이다. 그에 합당한 근거가 없이 제시하는 견해는 또 다른 위험성을 함의한다.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한다”는 것은 적그리스도도 아니고, 그리스도도 아니다. 흰 말과 탄 자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는 ‘교회의 복음 증거’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한다”고 말한다.

8. 그리스도라는 견해와 오류들

1) 네 생물이 그리스도께 명령함
“네 생물이 누구에게 명령한 것인가?”에 대한 여러 견해가 있다. 첫째, Moffat과 Plummer는 “요한에게 명령한 것이다”(필자 주: 오류이다) 둘째, Alford와 Swete는 “예수님에게 명령한 것이다”(필자 주: 오류이다) 셋째, Weiss, Robertson, Morris, Ladd, Johnson, Hounce, Charles 등은 “(어린 양과 구별되는)말 탄 자에게 명령한 것이다.”

필자는 세 번째 견해에 동의한다. 어린 양에 의해서 첫째 인이 떼어진 후, 네 생물 중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오라”(come)고 외친다. 그런 후에 흰 말이 나온다. 그 말을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한다. 만일 흰 말과 탄 자가 그리스도라고 하면 어떤 상황인가? 네 생물이 어린 양께 ‘오라’고 명령하며, 그리스도는 네 생물의 명령을 따라 ‘나아온다’는 것을 가리킨다. 어린 양에게 모든 권세와 능력이 있다. 그런데 이런 주객이 전도된 상황은 하늘에서 발생할 수 없다. 따라서 흰 말과 탄 자가 그리스도라는 주장이 오류임을 드러낸다.

2) 면류관의 ‘수여자’와 ‘수상자’가 동일하다
2절은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라고 말한다. 일곱 인을 떼고 수행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어린 양에 의해서 첫째 인이 떼어진다. 그 때 네 생물 중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오라”고 외친다. 그런 후에 흰 말이 나온다. 그 말을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한다. 무천년설 중 일부는 “흰 말과 탄 자가 적그리스도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스도다”라고 주장한다. 만일 그렇다면 면류관을 주시는 분이 어린 양이 되고, 또한 면류관을 받는 분이 어린 양이라는 의미가 된다. 첫째 인의 문맥조차도 생각하지 않은 결과이다. 이런 모순적인 관계는 흰 말과 탄 자가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3) 명령한 자와 수행하는 자의 관계
흰 말과 탄 자가 그리스도라고 가정해 보자. 어린 양이 하늘에서 인을 떼시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신데, 땅에서 ‘자신의 명령’을 받아 수행한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어린 양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있고, 네 생물은 보좌 주위에 있다. 흰 말과 탄 자는 땅 위에서 명령을 수행한다. 각 위치와 지위가 다르다. 어린 양이 인을 떼실 때에 흰 말과 탄 자에게 ‘오라’고 명령하고, 그 명령을 흰 말과 탄 자인 그리스도가 받아서 땅에서 수행한다는 결론이 된다. 이것은 모순이다. 심지어 어린 양이 네 생물의 명령을 받는다는 것은 기본적인 관계(지위)를 깨뜨리는 것이므로 흰 말과 탄 자는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

4) ‘διαδ?μα(디아데마)’와 ‘στ?φανο?(스테파노스)’의 불일치
흰 말과 탄 자가 그리스도라면, 그리스도가 쓰신 것과 흰 말과 탄 자가 받은 면류관이 적어도 일치해야 한다. 첫째 인에서 흰 말과 탄 자가 얻은 ‘면류관’은 ‘승리자’에게 수여되는 ‘στ?φανο?’(스테파노스)이다. 주님의 재림을 기록한 계시록 19:12은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다”고 말한다.

KJV은 ‘many crowns’라고 번역했다. 개역개정이 ‘많은 관들’이라고 번역한 원문은 ‘διαδ?ματα’(디아데마타)로서, ‘왕관’을 의미하는 ‘διαδ?μα’(디아데마)의 ‘복수형’이다. 흰 말과 탄 자는 어린 양이 수여하는 ‘στ?φανο?’(스테파노스)를 받은 반면, 주님은 ‘많은’ ‘διαδ?μα’(디아데마)를 쓰고 계신다. 양자는 쓰고 있는 것도 다르고, ‘질적으로’ 그 영광이 다르다. 더구나 주님은 ‘하나’가 아닌 ‘많은’ 디아데마(왕관)를 쓰고 계신다. 이것은 흰 말과 그 탄 자가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증거이다.

9. 네 인이 갖는 독특성

1) 네 인은 ‘모두’ 재앙이 아니다
일곱 인 가운데 ‘네 인’은 다른 ‘세 인’과 구별된다. 이제는 ‘네 인’이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볼 필요가 있다. 대개 일곱 인을 ‘일곱 인의 재앙’이라 부른다. 둘째 인이 전쟁을 상징하기 때문에 재앙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인도 기근을 상징하기 때문에 재앙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인인 청황색(pale) 말과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고 ‘음부’가 따르기 때문에 재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첫째 인인 흰 말과 탄 자는 ‘복음 증거’를 상징(의인화)하기 때문에 재앙이라 불릴 수 없다. 첫째 인은 오히려 세상에 축복을 가져온다. 일곱 인을 ‘일곱 인의 재앙’이라고 부른 관념의 기저에는 흰 말과 탄 자를 ‘재앙’으로 봤기 때문이다.

2) 일곱 인은 ‘모두’ 재앙이 아니다
다섯째 인은 순교자들의 신원으로 ‘심판 혹은 재앙’으로 부를 수 없다. 따라서 다섯째 인이 포함된 일곱 인을 ‘일곱 인의 심판(재앙)’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일곱 인을 ‘일곱 인의 재앙’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일곱 모두 ‘재앙의 성격’을 갖고 있어야 한다. 다섯째 인의 성격은 재앙이 아니다. 이와 반면에, 여섯째 인은 천재지변의 재앙이 분명하다. 일곱 인을 재앙이라 간주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일곱 인을 대환난에 일어난 일들이라고 단정했기 때문이다. 무천년설은 ‘과거’ 로마 시대 있었던 일이라고 간주한 것은 잘못된 적용이다.

3) 네 인 중 세 인의 ‘연결성과 계속성’의 특성
네 인 가운데 ‘세 인’은 일련의 동질성이 있다. 둘째 인은 전쟁을 상징하고, 셋째 인은 기근을 상징하고, 넷째 인은 사망을 상징했다. 이들은 따로따로 존재하는 개념들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들을 하나의 ‘씨리즈’로 보여준다.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전쟁은 땅을 황폐케 하고 반드시 기근을 동반한다. 전쟁은 직접적으로 사람들의 죽음을 가져오고, 간접적으로 ‘기근’을 가져온다. 넷째 말은 ‘청황색(pale) 말과 탄 자’로서 ‘사망’이다. 땅의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인다.

즉 사망은 둘째 인인 검과 셋째 인인 흉년을 도구로 하고, 넷째 인에는 사망도 있다. 더구나 앞에서 언급하지 않은 ‘땅의 짐승들’을 도구로써 죽인다. 이것은 넷째 인의 사망이 둘째 인과 셋째 인의 결과와 서로 밀접한 관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둘째 인과 셋째 인과 넷째 인은 그 순서가 있지만,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연속적으로 연결되고, 이런 관계는 계속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 인 중 세 인은 재앙을 가져온다. 즉 “기-승-전-결”의 연결 고리를 갖는다. 세 인은 ‘단회적’이지 않고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성격을 띤다. 실제로 이 땅에서 전쟁과 기근과 사망은 한 번 있었던 일이 아니라, 인류가 계속되는 동안 끊이지 않고 반복되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라는 말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일곱 인 가운데 다섯째 인의 순교자들의 신원이나, 여섯째 인의 천재지변의 재앙은 어떤 시점에 일정한 기간 동안 발생하는 일들이다. 네 인 가운데 세 인은 그것들과 성격이 다르다. 이것이 첫 번째 그룹과 두 번째 그룹들의 특별한 성격이다.

4) 첫 번째 인의 계속적인 성격
일곱 인 가운데 첫 그룹인 네 인의 세 인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단회적이지 않고 계속성의 특성을 갖는다. 첫 번째 그룹에 속한 첫 번째 인인 ‘흰 말과 탄 자’도 동일한 특성을 갖는다. 그래서 네 인이라는 ‘한 그룹’에 속한다. 흰 말과 탄 자는 ‘복음 증거’를 의미했다. 복음 증거는 어떤 때 한 번 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계속적으로 증거되어야만 한다. 그런 이유로 흰 말과 탄 자는 “나가서 이기고 이기려고 하더라”고 말한다.

이전에도 이겼고, 지금도 또 나가서 이기려고 한다. 이것은 계속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복음 증거’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땅끝까지’ 그리고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어야 하고 계속적으로 증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래 도표에서 네 인은 재림 때까지 연속성의 특성을 갖는데 반하여, 후반 세 인은 일정한 시기에 벌어지는 제한성을 나타낸다.

5) 계시록에 나타난 인류 역사에 대한 조망
네 인은 첫째 인과 다른 세 인으로 구별된다. 첫 번째 인은 주님이 교회에 위임한 ‘복음 증거’로 계속적으로 증거되어야 한다. 복음은 생명(구원)을 가져온다. 이것이 복음의 영광이다. 따라서 어린 양은 ‘흰 말과 탄 자’에게 ‘면류관’을 수여한다. 이에 반하여, 둘째 인인 붉은 말과 탄 자는 전쟁을 의미하고 전적으로 사람의 역사이다. 사람의 죄는 역사 가운데 전쟁으로 나타났다. 전쟁은 기근을 유발하며, 결국 사망을 가져온다.
---「Chapter 27 첫째 인부터 넷째 인까지(6:1-8)」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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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바이블에서 출간하는 송명덕 목사님의『요한계시록 INSIDE』는 신약성경의 맨 뒤에 위치한 ‘요한계시록’(전22장) 중에서 1-11장에 걸친 송 목사님의 주해 및 강해의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송 목사님의 저서 속에서 오랜 만에 역사적 천년기 전 재림론의 입장에 선 요한계시록 강해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송 목사님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제자비전교회를 담임하고 계신 목사님이시며, 워킹바이블연구소 소장으로 세미나와 저술에 활동적인 분이십니다.

아무쪼록 우리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 가운데 이 저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내세의 소망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동시에,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는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을까하는 두 가지 큰 책임을 함께 고민하는 성숙한 청지기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라고 이 저서를 기쁘게 추천합니다.
- 김길성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명예교수, 조직신학)
이미 여러 권의 저서를 통하여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는데, 이번 『요한계시록 Inside』는 지금까지 목사님이 펴내신 어떤 책보다도 방대하고도 내용이 심오합니다.

송 목사님은 개혁주의 신학자로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가 강조하듯이 구약과 신약 66권이 모두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 계시록 주석에 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연구자들이 계시록을 ‘묵시문학’의 범주에 넣어 해석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묵시‘문학’이라는 용어의 배후에는 성경이 한 사람 혹은 한 공동체가 만들어 낸 창작물이라는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송명덕 목사님은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계시’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이 사실에서 출발할 때 제대로 된 해석이 가능하다고 믿는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입장에 굳게 서 있습니다.

송 목사님은 요한계시록이 성경 전체의 일부이며 구약과 신약성경의 결론이라고 말합니다. 계시록을 바로 해석하기 위하여서는 이전에 쓰여진 모든 성경을 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고, 반대로 이전의 성경 계시를 매듭짓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요한계시록이 필요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서 송명덕 목사님보다 더 잘 준비된 분을 찾아보기 힘든데, 이는 그가 성경 각 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이 주석을 읽는 독자들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이 한 줄로 꿰어지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송 목사님은 무천년설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전천년설을 주장합니다. 그 비판이 합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고 논리적이어서 그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전천년설을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천년설주의자들이 매도되는 것은 아니고, 형제 그리스도인으로서 논증과 대화의 대상입니다.

송명덕 목사님의 성경을 사랑하고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요한계시록 Inside”를 통하여 꿀송이처럼 단 성경의 깊은 세계로 빠져드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세속화와 우상숭배의 문제를 극복하고 역사의식을 가지고 주님 오실 날을 고대하기 바랍니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 장동민 (백석대학교 교목부총장, 역사신학)
송명덕 목사님의 “요한계시록 Inside”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관점에서 집필되었습니다. 무천년주의에 대한 체계적인 비판을 제시한 책으로서 본서는 한국교회 내에서 종말론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상세한 부분으로 들어가면 추천자인 저의 견해와 저자의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본서는 건전한 계시록 해석을 제시했다고 믿습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일독을 적극적으로 권면드립니다.
- 정성욱 (미국 덴버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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