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토트가 하버드에 있는 동안 빌리 그래함은 예일에서 그들이 매년 개최하는 나흘 간의 '대학 그리스도인 선교 대회'(University Christian Mission)를 인도하고 있었다. 이 선교 대회는 공식적인 후원을 받는 행사로서, 매일 저녁 이천 오백 명의 학생이 참석했다. 그래함은 자서전에서 그 학교를 방문한 것을 분명하게 기억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미국의 오래된 많은 단과 대학과 대학교들이 그러하듯이, 예일은 기독교 학교로 설립되었다. 초기 총장 가운데 한 사람인 티모시 드와이트(Timothy Dwight)는 특출한 그리스도인 지도자였다. 그리고 설립 후 첫 세기 동안 예일은 졸업생의 40퍼센트를 사역하도록 내보냈다고 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런 든든한 영적 유산은 거의 다 잊혀졌다...
어느 날 심리학과 학과장이 스무 명 가량 되는 그 학과 교수진과의 점심식사에 나를 초청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도시락을 가지고 한쪽에 앉았고, 나는 혼자 반대편에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마치 내가 검사를 받는 환자 같았다. 그들은 특히 내가 말하는 회심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공통점이 많아서 서로 놀랐는데, 최소한 진정한 회심이 미치는 심리적 유익과 관련해서 그러했다.
그래함은 한 학생 기자의 글을 인용하면서 '예일이 보여 주는 종교에 대한 세련된 무관심'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연합은 그래함이 떠나자 존 스토트를 초빙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했거나 재헌신한 삼백여 명의 학생을 위한 후속 모임을 개최하였다. 빌리 그래함의 방문과는 달리, 존 스토트의 방문은 대학으로부터 공식적인 후원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학생들 사이에 떠돌던 소문에 의하면, 존 스토트가 예일에서도 본격적인 선교 대회를 인도해야 하지 않느냐는 제안이 있었으나 교목실에서 반대했다고 한다. 교목실에서는 브라이언 그린에게 존 스토트에 관한 자문을 구했으며, 답장으로 단 한마디 "근본주의자"라고 적힌 전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함의 방문은 대학 내 복음주의자들에게는 일종의 환심을 사기 위한 방편으로, 교목실에게는 불안의 원인으로 인식되었다. 그 정도였으므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듬해 선교 대회 때는 폴 틸리히(Paul Tillich)를 초빙하였다. 존 스토트의 방문 목적은 여전히 결단을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고, 새롭게 회심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었다. 그는 예일 법대 대강당에서 '그리스도인의 확신', '그리스도인의 성장', 그리스도인의 책임'에 대한 강의와 많은 개인 면담을 하면서, 그리스도인 학생들의 지도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 pp 482~483
나는 전형적인 사춘기 소년으로서 나 자신에 대해 두 가지를 알고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그것을 그런 말로 명확히 표현하지는 못했다. 첫째로, 만일 하나님이 계시다면 나는 그분과 멀어져 있다. 나는 하나님을 찾으려고 애써 왔지만, 그분은 내가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안개에 싸여 있는 것 같았다. 둘째로 나는 패배했다. 나는 내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또한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고자 열망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커다른 간격이 있었다. 나는 고귀한 이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의지가 약했다.
(...) 종교에는 내가 지금까지 발견한 것 이상의 무엇이 있으리라 확신하고서 나는 토요일 오후마다 혼자 기념 예배당에 살짝 들어갔다. 종교 서적을 읽고 신비로운 분위기에 젖어, 하나님을 추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계속해서 나를 교묘히 피해 버리셨다... 나를 그리스도께로 이끈 것은 패배감과 소외감 그리고 역사적인 그리스도께서 내가 의식하고 있던 바로 그러한 필요들을 채워주겠다고 제안하셨다는 놀라운 소식이었다.
(...) 나는 어렸을 때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려 애쓰면서 느꼈던 당혹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왜 하나님이 안개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고 나는 그분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멀리 떨어져 계신 것처럼 보였다. 이제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우리는 예레미야애가에서처럼 하나님께 "주께서 구름으로 스스로 가리우사 기도로 상달치 못하게 하시고"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사실 그 구름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 마치 구름이 태양을 가리듯이 우리의 죄가 우리를 하나님의 얼굴에서 가려 버린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도 똑같이 쓸쓸한 경험을 했다고 내게 고백한다 .긴급한 상황에서, 위험에 처했을 때, 기쁨 가운데 있을 때, 아니면 아름다움을 관조할 때, 하나님은 그들 가까이에 계시는 듯하다. 하지만 대개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을 알며, 자신들이 버림받았다고 느낀다. 이것은 단지 느낌이 아니다. 그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을 때까지 우리는 참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추방자들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아무런 친교도 누리지 못한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잃어버린 바 되었다.' 혹은 우리가 지은 '죄와 허물로 죽어' 있다.
--- pp 106~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