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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긴 꽃잎

바다의 긴 꽃잎

[ 양장 ]
리뷰 총점9.8 리뷰 5건 | 판매지수 366
베스트
스페인/중남미소설 top20 7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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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2월 1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476쪽 | 578g | 138*195*28mm
ISBN13 9788937442407
ISBN10 893744240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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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 기억해요?” 엘리자베트가 독일어의 후두음이 강하게 느껴지는 스페인어로 인사를 건넸다. 어떻게 그녀가 기억나지 않는단 말인가. 하지만 빅토르는 그녀를 본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전보다 훨씬 성숙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들은 부서진 콘크리트 더미 위에 걸터앉았다. 그는 담배를 피우고, 그녀는 군용 수통에 담은 차를 마셨다.
“당신 친구 아이토르는 어떻게 됐어요?” 그녀가 물었다.
“그대로예요. 늘 총탄 속에서 흠집 하나 없이.”
“그는 무서운 게 전혀 없나 봐요. 그에게 안부 전해 주세요.”
“전쟁이 끝나면 무슨 계획이 있어요?” 빅토르가 그녀에게 물었다.
“다른 전쟁을 찾아가는 것. 늘 어딘가에는 전쟁이 있거든요. 당신은요?”
“당신이 괜찮다면 우리가 결혼할 수도 있는데.” 그가 수줍음으로 목이 잠긴 채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그녀가 한바탕 웃더니 예전의 르네상스 처녀로 잠시 돌아갔다.
“정신이 나간다고 해도, 당신이나 그 누구와도 결혼할 생각 없어요. 나는 사랑할 시간이 없어요.” --- pp.23~24

로세르가 아이토르의 손을 잡아 자기 배 위로 가져가서 태동을 느껴 보게 한 걸 보면, 그녀가 아이토르의 걱정을 눈치챈 게 분명했다. “아이토르, 걱정하지 말아요. 이 아이는 안전해요. 더는 만족할 수 없을 정도예요.” 그녀가 연달아 하품하며 말했다. 그제야 비로소, 너무나도 많은 죽음과 희생, 너무나도 많은 폭력과 악행을 지켜본 그 유쾌하고 다혈질인 바스크 남자는 로세르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가만히 흐느꼈다. 그 순간 그는 그녀의 체취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그는 그녀 때문에 울었다. 그녀가 아직 혼자가 되었다는 걸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는 기옘 때문에 울었다. 기옘은 절대 아들을 만날 수 없을 테고, 다시는 사랑하는 여인을 품에 안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간 카르메 때문에 울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 때문에도 울었다. 그는 너무 지쳤고, 살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행운을 의심했다.
--- p.96

“듣기로는 공산주의자들만 선별하신다고 하던데요…….”
빅토르는 시인이 자신의 정치 성향을 묻지 않은 걸 의아해하며 말을 꺼냈다.
“잘못 들으신 겁니다.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자유주의자 모두에게 할당되었습니다. 그건 ‘스페인 난민 대책위원회’와 내가 결정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성격과 칠레에 유용할 것인가 여부입니다. 나는 수백 장의 신청서를 살펴보는 중이고,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통보해 드리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네루다 선생님, 선생님의 대답이 긍정적이라면, 저 혼자 가지 않을 거라는 걸 제발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몇 달 되지 않은 갓난아이가 있는 친구도 함께 데려갈 생각입니다.”
“친구라고 하셨나요?”
“로세르 브루게라, 제 남동생의 연인입니다.”
“그 경우라면 동생분이 직접 와서 신청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선생님, 제 동생은 에브로 전투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말 안타깝군요. 그런데 직계 가족에게만 우선권이 있다는 걸 아셨으면 합니다.”
“이해합니다. 허락하신다면 사흘 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이보십시오, 사흘 안에는 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드릴 수 있습니다. 매우 감사합니다.” --- pp.168~169

1939년 8월 4일, 보르도. 한여름이었던 그날은 빅토르 달마우와 로세르 브루게라를 비롯해, 그 길쭉한 남미 국가로 떠나는 이천 명 넘는 스페인 사람들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 것이었다. 그들은 바다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산을 꽉 움켜쥐고 있는 그 나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네루다는 그 나라를 “하얗고 새까만 거품의 허리띠를 두르고, 바다와 포도주와 눈으로 이뤄진 기다란 꽃잎”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그 시는 망명자들에게 자기네 목적지가 어떤 곳인지 확실하게 밝혀 주지 못했다. 지도 위의 칠레는 길쭉하고 먼 나라였다. 사람이 몇 분마다 어마어마하게 늘어나 보르도 광장은 바글바글 들끓었고, 새파란 하늘 아래 더위로 거의 숨이 막혀 죽을 듯했다. 기차와 트럭, 그리고 사람으로 꽉 찬 차량이 속속 도착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난민 수용소에서 바로 나와서 제대로 씻지도 못한 몰골에 굶주리고 쇠약했다. 남자들이 아내와 자식과 몇 달 동안 떨어져 지
냈기 때문에, 부부와 가족의 재회는 감동과 열광의 드라마였다. 사람들은 차창에 매달린 채 목청껏 이름을 부르고 서로 알아보고는 울음을 터뜨리며 끌어안았다. 에브로 전투에서 아들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던 아버지, 마드리드 전선에서부터 서로 소식을 전혀 모르고 지냈던 형제, 다시는 만나지 못할 줄 알았던 아내와 자식들을 발견한 시커멓게 그을린 군인.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완벽한 질서 속에서, 프랑스 경비병들을 할 일 없게 만든 타고난 규율 본능 속에서 이뤄졌다.
--- pp.172~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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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간 이사벨 아옌데의 팬이었던 애독자들뿐 아니라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이들을 위한 소설. 난생처음 아옌데의 소설을 읽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일까. 아옌데는 모든 이야기가 사랑 이야기라는 것을, 그리고 가장 위대한 사랑 이야기는 시간이 쓰는 것임을 알고 있다.
- 칼럼 매캔 (『거대한 지구를 돌려라』 저자)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관계를 내밀하게 그린 이야기이자 사랑과 전쟁, 가족, 그리고 고향을 찾아가는 이들의 서사시. 이 근사한 소설은 다른 모든 최고의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독자를 다른 시공간으로 데려가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여정에 빛을 비춰준다.
- J. 커트니 설리번 (『모든 경우를 위한 성인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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