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거울 속 내 나체를 대면하는 일은 매일 되풀이되는 중요한 경험이었지만, 그 모습이 나를 침대에서 일으켜 세우는 데 도움이 됐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인물에게 동정심을 느꼈다고도 말할 수 없다, 날마다 다르다, 어떤 날은 그가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아우슈비츠에서도 사람들이 살아 돌아왔으니까, 또 어떤 날은 그가 사형을 선고받았음을 명백히 느낀다, 피할 수 없는 무덤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 p.16
나는 잠에서 깨어나 디다노신이 가득 담긴 봉투가 아직 침대 밑에 있는 것을 보며, 그것이 꿈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부인했다, 쥘은 다급히 내게 속삭였다. “네가 이걸 어떻게 얻었는지 절대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해. 나도 맹세했어. 약을 소량 또는 다량으로 실험하는 이중맹검법 실험 기록용으로 나온 거야. 3주 분이고, 봉지에 적혀 있던 조회 번호는 취합할 수 없도록 찢어버렸어.” --- p.17
쥘은 디다노신이 가득 담긴 봉투를 침대 밑에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일 아침부터 투약을 시작해야 해. 너를 믿을게. 지금 네 상태를 고려했을 때 해볼 만하다는 것을 너도 잘 알 거야.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어.” 다음 날, 나는 샹디 박사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그의 진료가 끝나기를 기다렸고, 그는 내게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구하신 겁니까?” 내가 “그가 말해줄 수 없다고 했어요”라고 대답하자, 그가 덧붙였다. “정말 디다노신이 맞아요?” 그는 내게 복용량이 확실하지 않으니 쥘이 주장하는 첫 번째 투약을 보류하라고 요구하면서, 행정적 요청이 거의 통과된 상태라고 말했다. --- p.19
오늘 아침에는 클로데트에게 진찰을 받으면서 당황했다. 나는 점점 더 내게 친절을 베푸는 그 젊은 여자의 손에 나를 맡겼다. 그녀가 먼저 진찰한 환자를 배웅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봤다. 오늘 그녀는 검은색과 흰색 조합으로 그림이 그려진 아주 우아한 여름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지난번 저녁에 응급실에서 봤던, 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녀의 신발이 사실 샌들이 아니라 에스파듀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그녀의 발목이 창백한 얼굴과는 다르게 분홍빛이라는 것을 눈여겨봤다. 그녀는 9월에 휴가를 떠날 것이다. 마 소재로 보이는 바지가 의사 가운 밑으로 내려왔고, 그 밑으로 발목이 보였다. --- p.48
나는 기침을 했고, 열이 났으며, 혈중 티록신 수치가 200 이하로 떨어졌지만, 박트림을 복용하고 있진 않았다. 도움을 주기 위해 진찰을 해준 귈큰 박사는 폐렴이 번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내게 말했다. “이 상태라면 당신은 절대 금요일 방송까지 버티실 수 없을 겁니다. 가능한 한 빨리 기관지 폐포 세척을 해야 해요. 폐렴은 빨리 발견할수록 더 잘 치료할 수 있거든요. 폐렴이라면 검사 당일 오후에 알 수 있을 겁니다. 만약 폐렴이라면, 병균을 제대로 공격하기 위해 진한 농도의 박트림을 링거로 투여할 겁니다. 그렇게 한다면 〈어포스트로프〉에 나가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샹디 박사도 귈큰 박사도 깜빡 잊고 공복 상태로 오지 않으면 질식할 수 있다는 말을 내게 해주지 않았다. --- pp.80~81
“좀 나아졌어요?”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나는 바람을 쐬려고 밖에 나와 난간 구석에 몸을 구겨 넣었다, 그늘에는 바보처럼 보여도 좋을 만큼 기분 좋은 바람이 살랑 불었다. 다리 운동을 했다, 발끝을 펴고, 구부리고, 발끝으로 구부리며 유리창으로 하얀색 환자복을 입은 실루엣이 뒤로 지나가는 것을 봤다, 이제는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하얀 환자복을 걸친 십여 명의 실루엣. --- p.112
오래 잠 못 이루는 밤이다, 밖에는 바람이 불고, 쥐가 조심스럽게 주방의 비스킷을 갉아먹고, 모기장에 부딪혀 허탕을 친 모기가 내 귓속에 버릇없이 들어오진 않는 대신에 멀리 떨어져 윙윙 소리를 내고, 모기장을 엄청난 식량 창고로, 나를 숨겨진 진수성찬으로 만드는 탄소 가스 냄새에 흥분한, 집요하고 배고픈 암컷 모기가 포기를 모르고 모기장의 작은 틈을 찾아 지칠 때까지 주변을 나는 동안, 아다모의 밤처럼 나는 미쳐간다. 체조를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쓴다. --- p.161
언덕에서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눈을 감는 조종사처럼 죽음에 바짝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나는 내 상태가 어떤지 더는 알고 싶지 않고, 의사에게 더는 묻지 않으며, 평소에 하던 에이즈와 관련된 검사 결과도 보지 않는다. 나는 환자에게 검사 결과를 말해주는 것이 정말 더 나은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나는 지금 생존할 것이라고, 삶은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싶은 위험한 구간에 있다. 그렇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가련하고 우습지만, 그것이 모든 중병환자가 가진 공통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그토록 죽음을 꿈꿨는데, 이제는 지독히 살고 싶다. --- pp.176~177
1990년 8월 13일, 오늘 나는 탈고했다. 숫자 13은 행운을 가져다준다. 검사 결과에 뚜렷한 호전이 있다, 클로데트가 미소 짓는다(그녀가 내게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나는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내 첫 번째 영화다. --- p.245
에르베 기베르가 절필을 선언하고 1년 반 후, 《연민의 기록》이 세상에 나왔다. 쓰지 않는 시간 동안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었고, 마지막으로 새로운 약물 치료를 시도했다. 약물을 얻은 경로는 불법이었다. 또다시 외설적이고 위험할 수 있는 이야기가 기베르에게 찾아왔다. 그는 새로운 치료를 시작하면서 삶과 죽음의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시 기록했다. 여전히 솔직하고 섬세하게, 더 정확하게. 이제 전작의 의심과 배신 같은 최소한의 소설적 요소조차 배제됐다. 작가 역시 자신의 글을 ‘의학 에세이’라 불렀다. 물론 기베르 특유의 블랙 유머였을 것이다. 아니다, 유머를 가장한 진실이었을 것이다. 에르베 기베르는 자신의 글을 두고 오직 진실뿐이라고 말했으니까.
--- p.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