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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광성과 그의 문학세계

손광성과 그의 문학세계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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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3월 1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200*210*30mm
ISBN13 9791155551769
ISBN10 115555176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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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너무 나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홀쭉한 것도 아니다. 잉태한 지 네댓 달은 좋이 되어서, 눈에 거슬리지 않고 보기 좋게만 알맞추 부른 그런 여인의 배 같다.
운두의 가장자리에서 시작된 선이 조용히 내려가는가 하면 어느새 다리께쯤에서는 저고리 깃 선처럼 동그스름하게 휘어진다. 이 휘어진 선이 다시 한 번 빠른 속도로 꺾이면서 직선으로 되돌아간 채 서서히 바닥까지 내려가서 멈춘다. 직선이 주는 날카로움을 곡선이 부드럽게 감싼다. 두 다리의 직선과 복부의 부드러운 곡선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오묘한 아름다움, 마치 토르소를 보는 것 같다. (중략)
선은 부드럽지만 고려자기처럼 애조를 띤 것은 아니다. 이조자기처럼 튼실하다. 절제하면서도 사람의 체취가 그대로 묻어나는 그런 선이다. 가락으로 치자면 진양조는 아니고 중모리거나 중중모리쯤이나 될까? 웃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저 삼화령三花嶺 협시보살 두 분 가운데서 왼쪽에 서 있는 애기보살의 웃음만큼이나 무구하다. 소박한 듯 단아하고 단아하면서도 속이 따뜻한 여인,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슬며시 다가가서 지그시 안아 보고 싶어진다.
--- 「돌절구」 중에서

완벽하지 않는가.
〈돌절구〉에서 미학적으로 단단한 시선을 감상했다면 그의 해석적 시선을 수조水曹 속에 들어 있는 ‘도다리’를 그려 논 글에서 감상해 보자.

도다리를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한쪽으로 몰려 있는 두 눈 때문에 그렇고, 냉소하고 있는 듯한 삐딱한 입 때문에 또 그렇다. 게다가 납작 엎드린 몸매는 무엇을 위한 겸손인지 모르겠다. 도다리를 보고 있으면 좀 답답하다. 수조水曹 바닥에 배를 깔고 있으면서 통 움직이려 들지 않는다. 사람의 시선 같은 것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그런 표정이다. (중략)
눈을 맞추려고 해도 시선을 주는 법이 없다. 녀석의 눈은 언제나 나의 어깨 너머로 허공을 보고 있다.
--- 「도다리의 친절」 중에서

우리는 도다리를 읽어 내는 그의 시선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본다.
웃음, 냉소, 겸손, 체념, 무관심, 권태, 금욕, 이데올로기, 반란, 방관, 반항, 야성, 친절.
단어 하나하나만을 떼어서 본다면 이 단어들이 도무지 어떻게 연관될 수 있는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웃음으로 시작하여 친절로 끝났지만 그 가운데에 일어났던 변화는 격랑이다. 그 격랑을 승객들이 멀미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파도타기를 즐기듯 즐길 수 있도록 끌고 가는 선장의 노련함이라니, 어찌 이것을 재주라 할 것인가.

이제 손광성 문장의 감상은 그만하고 그의 문장의 특징을 찾아보자.

첫째는 관찰력이다. 그가 화가라는 것이 관찰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의 수필집 《나의 꽃 문화 산책》에서 갖가지 꽃들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막연한 시선으로 어떻게 목련을 목련으로, 그리고 모란을 모란으로 그릴 수 있겠는가. 그의 수필 모두는 관찰력에 바탕을 두고 쓰여져 있다. 그가 탁월한 관찰력을 겸비하기까지에는 부단한 훈련이 있었을 것이다.

둘째는 빼어난 감수성이다. 《나의 꽃 문화 산책》은 그가 어린 시절 제비꽃을 보고 느꼈던 감상感傷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때는 햇빛이 어찌 그리 밝던지, 보잘것없는 제비꽃 한 송이가 또 어찌 그리 반갑던지…. 비밀이라도 간직한 듯한 그 신비스러운 보랏빛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그 모습이 안쓰럽고 안타까워서였을까?
--- 「제비꽃과 나폴레옹」 중에서

영화 「닥터 지바고」는 시작을,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하늘 가득 불어오는 바람의 숨결을 느끼는 주인공의 예민한 감수성을 화면 가득히 담고 있다. 「제비꽃…」에서 우리도 함경도 들판을 뛰노는 영민한 한 어린이를 눈에 선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의 예민함은 어머니의 죽음마저 예감해 버린다. 어머니가 냇가로 빨래를 가실 때면 막내인 어린아이는 따라가서 혼자서 놀곤 하였다. 물놀이를 하거나, 세치내며 모래무지를 잡거나, 꽃창포 잎을 뜯어 배를 접어 띄워 보내거나, 개미들을 하염없이 들여다보거나. 아니면 두 다리 사이로 해서 주위 풍경을 거꾸로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수면 위에 떠 있는 미루나무들, 푸른 산 그림자, 아득히 떠가는 하얀 구름, 그리고 풀잎 하나 흔들리지 않는 칠월 정오의 정적…. 그 정적의 저편 언덕에서 어머니가 앉아 빨래를 하고 계셨다. (중략)
한 폭의 고즈넉한 산수화라고나 할까? 멀리 풍경 속에 앉아 계신 어머니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와는 인연이 먼 저세상의 사람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어머니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저러다가는 아주 텅 빈 허공 속으로 그만 빨려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중략)
나는 겁이 났다. (중략) 나는 “엄마”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는 짙게 드리워진 정적을 찢고 멀리까지 메아리쳤다. 그림 속의 어머니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듯이 천천히, 그러고는 나를 향해서 달려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어머니가 나를 안아 일으켰다. 두려움과 슬픔으로 해서 차디차게 굳어 버린 나의 피부에 어머니의 손길이 닿았다. 거친 손길, 하지만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어머니의 가슴을 마구 때렸다. 그리고 오래오래 품에 안긴 채 울었다. 영영 어머니가 나를 버리고 가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이미 그때 나는 어머니의 죽음을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 「나의 어머니」 중에서

바로 정적 때문이었다. 엄습해 온 정적의 공포. 「나의 어머니」에서 어린아이가 느꼈던 이 별스런 체험은 오늘의 손광성의 감수성은 이미 그때 어린아이의 내면 속에서 완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어린이는 커서 세상의 꽃마다 절절한 사연을 붙여 글을 쓰고, 세상의 소리와 냄새까지도 구별해서는 거기에 갖가지 색을 입혀 지면에 그려 놓는다. 그의 감수성은 설핏 든 잠을 ‘야윈 잠결’이라 말할 수 있고, 밤에 수면 위로 물고기가 솟았다 떨어지는 소리는 ‘투명한 소리’로 듣고, 종달새의 날갯짓을 ‘가슴 떨리는 소리’로 듣는다. 이만한 감수성을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셋째, 비약이다. 「아름다운 소리들」을 예로 설명해 보자.
“소리에도 계절이 있다. 어떤 소리는 제철이 아니면 제맛이 나지 않는다”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의외의 발상이다.
한여름의 소리로 폭죽과 폭포와 천둥소리를 꼽는다. 한여름에 폭포는 시원할 것이고, 천둥은 대부분 여름에 치니 그렇다 하자. 그러나 폭죽은 계절에 관계없이 축제 때마다 터뜨리니 꼭 여름에 어울린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는 밤하늘의 불꽃을 말하고 있지 않다. ‘확’ 하고 끼얹는 화악 냄새만이 무기력에 빠진 우리들의 심신에 자극을 더하기 때문에 여름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갑자기 “뻐꾸기며 꾀꼬리는 다 어디로 갔을까?” 하고 묻는다. 순간 나는 뻐꾸기, 꾀꼬리가 떠나 버린 한여름의 폭염이 지겨워졌다. 그 소리도 잊고 살아온 도시인의 삶이 너무 가엾어졌다.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물고기 소리를 들으며, “살아 있다는 것은 언제나 이처럼 절실한 것을”이라는 문장의 맨 뒤에 붙여 논 느낌표 같은 한마디에, 나는 억! 하는 외마디소리를 지르고 만다.
“성가는 나의 마음을 승화시키고 독경 소리는 나의 마음을 비운다.”
이것으로 소小단락이 끝나도 된다. 하지만 한마디를 덧붙여 눈에 환하게 보이도록 만들어 버렸다. “가을 하늘처럼 비운다.” 이제 마음은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이 되었다.
작가는 비가 내릴 때면 나나 무스쿠리나 케니 지의 소프라노 색소폰을 즐겨 듣는 것 같다. 보통의 작가라면 ‘~좋아한다’로 끝났을 것이다. 과연 그의 문장은 어떨까? 여기에서 멈출까? 그럴 그가 아니다.
소리를 소리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는 바로 이어서 써 놓는다. “애수 어린 그런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는 내 나이를 잊고, 내 차가 낡았다는 사실을 잊고, 젊은이처럼 빗속을 질주할 때가 있다.” 작가는 운전 중이었던 같다. 방 안에서 듣고 있다가 질주의 충동을 느껴 차를 몰고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일 뿐이다.

유년의 소리들. “울긋불긋한 천막과 원숭이들과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외발자전거를 타던 난쟁이가 있던 곡마단의 나팔 소리.” 그 곡마단에 단발머리 소녀가 있었다. 어찌 그가 그 소녀를 잊을 수 있을까. “나의 단발머리 소녀는 아직도 아득히 높은 장대 위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데 내 머리칼은 벌써 반이나 세었다.” 생생히 떠오르는 유년의 기억과 덧없이 지나가 버린 세월의 간극을 이보다 더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하지만 손광성이 찾은 아름다운 소리의 압권은 침묵의 소리다. 소리를 이야기하면서 침묵을 가장 높게 치는 사람이 바로 손광성이다.

빈방, 창밖엔 밤비 내리고
어디선가 산과山果 떨어지는 소리

빈산에 떨어지는 산과 한 알이 문득 온 우주를 흔든다. 존재의 뿌리까지 울리는 이 실존적 물음을, 천 년 전에는 왕유王維가 들었고 지금은 내가 듣고 있다. 이런 소리는 빈방에서 혼자 들어야 한다. 아니면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 「아름다운 소리들」 중에서


그의 비약은 상황에 따라서 청각적인 것을 시각적으로, 점층법으로, 역전으로, 비상으로 나타난다.

넷째, 뛰어난 해석이다. 이것은 비유라 할 수 없다. 비유란 추상적인 것을 구체화시킬 때 사용되는데, 손광성은 구체적인 것을 추상적·일반적으로 만들 때 사용하기 때문이다.
「도다리의 친절」에서 이미 경험했듯이, 도다리의 생김새를 보면서 겸손, 금욕, 반란 등으로
해석해 내는 것이다. 장작을 패면서, 장작을 패는 것이 기실은 인생살이와 똑같음을 알게 되고(「장작 패기」), 지붕의 깨진 기와를 갈아끼우면서, 그것 또한 ‘삶의 지혜 찾기’와 똑같음을 알게 된다. 생활이 곧 도道란 말인가. 「겨울 갈대밭에서」 갈대를 얘기하고 있으나, 다 읽고 나면 갈대는 사람으로 변해 있다. 「달팽이」에서 달팽이에 대한 뛰어난 관찰에 감탄하다 보면 그 달팽이는 작가 자신이 되어 있다.

손광성 문학의 고향은 어디일까? 그의 성정의 뿌리는 잃어버린 유년의 꿈의 세계와 어려서 여읜 어머니다.
그는 어려서 누나의 손을 잡고 월남한 실향민이다. 그런데 월남 후의 생활상이 그의 작품 어디에도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왜일까? 유미주의자인 그에게 고단했던 삶의 모습은 차마 언급하기 싫었을까? 그가 살았던 삶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 「달팽이」다. 「달팽이」에서 작가는 글의 마지막에 달팽이가 바로 작가 스스로임을 고백하고 있다. 새처럼 비상하려는 달팽이, 가늘고 긴 목에서 벌레 소리 같은 어떤 슬픈 소리가 나올 것 같지만, 끝내 아무 소리도 내지르지 못하는 달팽이. 「달팽이」에서 그 달팽이는 바로 작가였던 것이다.

여름도 다 끝나려는 어느 늦은 저녁 무렵이었다. 그때 나는 달팽이의 이상한 몸짓을 보았다. 억새풀의 제일 높은 끝에 한 방울의 이슬처럼 위태롭게 맺혀 있었다. 목은 길게 솟아올랐고, 조그만 입은 약간 벌어졌으며, 꽃의 수술 같은 두 개의 눈은 긴장되어 있었다. 마치 노래를 부르려는 순간의 어떤 가수처럼, 나뭇가지를 떠나려는 순간의 새의 자세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내지르지 못했다. 투명한 달빛이 조그만 몸을 비추고 있었다.
밀폐된 유리벽의 저편에서 키가 작은 한 남자가 울고 있는 것을 나는 보고 있었다.
--- 「달팽이」 중에서

작가는 달팽이를 보면서 “집이라도 한 칸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집도 찬찬히 뜯어보면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시늉만 해도 바스라질 것 같은 투명한 껍데기일 뿐이다. 그 집은 그의 고향이 바다였다는 증거다. “먼 조상들 중 호기심 많은 한 마리가 어느 날 처음 뭍으로 올라왔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달팽이는 실향민의 후예다.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육지에 사는 달팽이의 목과 눈은 물달팽이의 그것보다 훨씬 가늘고 길다. 슬픔도 내림이라, 수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조상들의 슬픔으로부터 그들은 자유로울 수가 없는 모양이다. 실향민의 후예, 달팽이는 늘 외로움을 탄다.
어디 좋은 친구 하나 없을까?
--- 「달팽이」 중에서

달팽이는 뼈도 없다. 발달한 것은 감수성뿐이다.

민감하기로는 미모사보다 더하다. 사소한 자극에도 몸을 움츠리고 이마를 스치는 바람에도 고개를 숙인다. 비겁해서가 아니다. 예민해서요, 수줍어서다. 동물이라기보다 식물에 가깝다. (중략)
달팽이는 언제나 긴 목을 치켜들고 길을 떠난다. 현실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어떤 비밀의 문이라도 찾고 있는 것일까. 방황하는 영혼, 고독한 산책자. (중략)
다만 가시며 그루터기며 사금파리 같은 현실. 맨살로 밀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현실이 그 앞에 놓여 있을 뿐이다. 육체의 고통이 때로는 영혼의 해방을 가져온다고 믿는 어느 고행승과도 같은 그런 표정으로 그저 묵묵히 몸을 움직일 뿐이다.
--- 「달팽이」 중에서


그는 이 세상을 바스라질 것 같은 집 한 채를 등에 지고 맨살로 밀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를 지탱했던 것은 유년기의 아름다운 추억이다. 추억은 긴 세월 동안 탈색되어 현실감을 상실한 채 아름다운 세계로만 존재하게 된다.
우리가 살던 마을 앞에는 큰 제재소가 하나 있었다. 그곳에는 소나무와 전나무와 이깔나무와 그리고 자작나무 같은 아름드리 원목들이 넓은 공터에 늘 산더미처럼 쌓여 있곤 했는데, 그 거목들만큼이나 우람한 어깨와 완강한 팔뚝을 가진 인부들이 이마에 땀을 번득이면서 사철 목재를 운반하고 있었다.
“헹야.”
“헹야.”
“헹아라.”
“헹야.”
졸음을 몰고 오던 단조로운 반복음들. 인부들의 살갗에서 풍겨 오던 저 건강한 땀 냄새. 그리고 술 취한 사람의 얼굴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태양의 열띤 숨결. 무엇이고 다 잘라 버릴 듯한 기세로 흰 강철 이빨을 번쩍이던 회전톱의 위협적인 웅얼거림.
원목을 들이대면 깊은 잠에서 기분 좋게 깨어나듯, 거인의 하품 소리와도 같이 ‘쏴아아아’ 하고 후텁지근한 여름 공기를 잘게 가르며 울려 퍼지던 상쾌한 마찰음. 그리고 나무의 마지막 남은 부분이 둘로 갈라질 때, ‘팡’ 하고 터지던 저 경쾌한 파열음.
--- 「냄새의 향수」 중에

눈이 많이 오는 나의 고향에서는 아름드리 원목을 실은 기차가 가파른 함경선 철로 위를 오르지 못해서 밤새 올라갔다가는 미끄러지고, 다시 올라갔다가는 또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런 날 밤은 언제나 그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도 기차는 올라갔다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고…. 그러나 아침에 깨어서 나가 보면 기차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 「아름다운 소리들」 중에서

그리고 그 소리는 조금 철이 들었을 때 미지의 세상을 향해 떠나라는 재촉의 소리로 들렸다. “떠나라! 떠나라! 외쳐대던 저 증기기관차의 기적 소리. 목이 잠긴 그 소리가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가.”
--- 「아름다운 소리들」 중에서

그가 여덟 살에 처음 보았던 바다는 그의 문학의 영원한 고향이다.
여덟 살의 사내아이였던 내 앞에 전개되어 있던 나의 최초의 바다는 몹시 성이 나 있었고, 발정기에 든 암말처럼 번들거리며 나를 향해 돌진해 오고, 또 오고…. 그러다가는 호소라도 하듯 내 발 아래 허연 거품을 쏟고는 다시 물러가고…. 그리고 헛되이 거품만 남기고 아득히 수평선이 되어 돌아서 갔다.
지금도 바다는 나의 유일한 자연이고 결코 정복될 줄 모르는 나의 영원한 여성이지만, 여덟 살에 받은 감동과 경이는 이제 기억 속에서나 가능할 뿐이다. 그 후의 모든 바다는 유년기 바다의 복사판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찝찔한 해초의 냄새와 함께 바다는 언제나 내가 돌아가야 할 고향으로 거기 그렇게 지금도 누워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 「냄새의 향수」 중에서

일곱 살 때 내가 본 최초의 바다는 하나의 경이驚異였다. 스물이 되었을 때 바다는 어느새 늘 함께하고 싶은 갈망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이제 노년의 고갯마루에서 지금 나는 다시 나의 바다를 본다. 바다는 그의 젊음으로 내 나이를 지우고 그의 커다란 눈물 속에 나의 작은 눈물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마침내 바다는 그의 품 안에 나의 존재마저 말없이 보듬는다.
--- 「바다」 중에서

손광성 문학의 또 다른 고향은 어머니다. 그의 형수와 누나는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그런데 그의 여인들은 모두 그를 떠난다. 어머니는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이승의 사람이 아니고(「나의 어머니」), 누나는 시집을 가고(「누나의 붓꽃」), 「돌절구」에서는 6·25 때 헤어진 셋째 형수의 이야기가 나온다. 형수와는 조국의 분단으로 영영 이별을 한다. 딸들은 시집을 가고, 평생 네 번의 사랑을 했던 그 여인들도 사랑 고백 한번 해 볼 기회도 주지 않고 떠난다.

갑산으로 가신다고 떠난 형님은 석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폭격은 날로 심해지고, 우리는 피란길을 떠나야 했다. 형수님은 친정으로, 나는 아버님이 계신 둘째 형님 댁으로 가고 있었다. 빨갛게 익어 가는 사과밭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온다. 우리는 거기서 헤어져야 하는 것이다. 나는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정자나무가 나오고 그 정자나무만 지나면 내 모습이 보이지 않으리라. 뒤통수에 자꾸만 마음이 씌었다. 내가 막 정자나무 뒤로 사라지려는 순간 멀리서 형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되련님, 몸 조심하셔요…. 아버님 말씀도 잘 듣구요….”
나는 돌아다보지 않았다. 저녁 해를 등지고 계시리라.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았다. 울고 계실까.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 「돌절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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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독자가 가장 아름다운 글을 쓰겠노라는 야망을 지닌 수필가라면 손광성의 글은 읽지 않는 것이 좋다. 읽고 난 다음, 누군가 그 정상에 이미 깃발을 꽂았다는 사실이 줄 열패감에 싸이지 않기 위해서다.
- 김종완 (문학평론가, 에세이스트 발행인)
손광성이 물레를 돌리고 가마에 구워 낸 수필이라는 그릇에 담긴 것은 그 그릇만큼이나 예술적 아름다움을 지닌 것이다. 그 아름다움은 도자기의 조형적인 아름다움만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고독이나 삭막한 사회적, 문명적 조건 속에서 인간이 짊어지고 있는 아픔과 고달픔을 치유하고 위안을 주는 그 어떤 것들이다.
- 김우종 (문학평론가, 전 경희대 교수)
그는 꿈꾸듯 노동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장작패기라는 행위는 그가 최초에 인식했던 노동에 대한 무의식이 되살아나면서 쾌활하고 건강한, 남성적 매력이 넘치는 역학적 서정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 이희자 (수필가, 전 에세이문학 주간)
손광성은 언어의 장인이다. 그의 수필은 언어의 축제장이라고 부를 정도로 모든 사물과 대상이 살아 숨 쉰다. 돌절구가 투명한 피돌기를 하고 어물전의 생선은 금방이라도 바다로 돌아갈 듯 꼬릴 퍼덕인다.
- 박양근 (문학평론가, 부경대 명예교수)
손광성의 수필 「물소 문진」은 매우 흥미롭고 이채로운 작품이다. 문진을 놓고 펼치는 기발한 상상체험의 이야기를 감수성 넘치는 문장에 실어 들려주는 상상수필의 명편이다.
- 안성수 (문학평론가, 제주대 명예교수)
그의 문장은 섬세하고 정확하다. 그의 통찰력은 예리하고 깊다. 그리고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눈길이 따뜻하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비슷한 연배로서 그리고 같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손광성이라는 이름은 나를 긴장하게 하였다. 아니, 정직하게 표현하자면 그는 나를 주눅들게 하였다.
- 이향아 (시인, 호남대 명예교수)
그를 작고 영롱한 것에 혼을 빼앗긴 사람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는 혈육을 북쪽에 두고 누님을 따라 월남한 실향민이기 전에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박행한 사람이다. 그의 수필에 어두운 그림자가 어룽거리는 것은 그런 상실감을 채우지 못한 갈증 때문이다.
- 권오만 (문학평론가, 서울시립대 교수)
「수련」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것은 한 마디로 “유레카!”였다. 직감으로 이 작품이 내가 안고 있는 난제를 해결해 줄 단서가 될 것임을 알았다. 산문으로도 시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그러니까 고백하건대 나는 선생님을 사숙한 셈이다.
- 정희승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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