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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약탈박물관

대약탈박물관

: 제국주의는 어떻게 식민지 문화를 말살시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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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3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440쪽 | 648g | 152*225*30mm
ISBN13 9791191432398
ISBN10 1191432394

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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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이 책은 베닌 원정에 대한 서사를 비롯하여 “영국이 자국의 입맛에 맞게 기록한 역사”를 지적하고 바로잡기 위한, 의식적으로 “영국 중심적”인 이야기다. 나는 반환의 과정에서 유럽이 목소리를 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영국은 베를린 회의가 열린 1884년부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 30년의 기간 동안 아프리카에서 식민지적 폭력을 휘두르며 대량학살과 문화적 침탈을 자행했다. 우리에게는 그 30년의 ‘0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벌어진 일들을 조사하고 그 내용을 밝힐 의무가 있다. 나는 이 책이 영국의 기업적·군국적 식민주의가 저지른 만행의 규모를 돌아보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 p.10~11

1장 두 번 발사되는 총
전리품을 챙기는 행위가 당시 기준으로는 보편적인 관행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전쟁에서의 약탈은 예로부터 이어져 온 관행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베닌 약탈은 단순히 전장의 물건을 가져오는 것 이상의 행위였다. 그것은 시간에 개입하여 현재 안에 영원한 과거를 창조함으로써 타자성을 만들어내는 무기였으며, 물건 자체의 경제적 청산에 대한 권리뿐 아니라 명시되지 않은 모든 권리, 모방과 풍자의 권리까지 단번에 빼앗아오는 행위였다. 이 약탈은 폭력이 커지며 나타난 부수적인 현상도 아니었고 스크랩북이나 진열장을 채울 기념품을 모으는 행위도 아니었다. 영국이 베닌에서 약탈한 물건들은 ‘유물’이 되어 과거의 폭력을 몇 번이고 현재로 소환했다. 과거의 물건과 이미지, 시간과 지식은 박물관을 통해, 그리고 카메라를 통해 미래로 연장된다. 베닌의 물건들은 공공 박물관에서, 그리고 개인 컬렉션에서 일종의 무기가 됐다.
--- p.31

2장 약탈의 이론
인류학은 더 이상 생각에만 잠겨 있어서는 안 된다. 나이지리아, 이집트,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서 가져온 문화재에 관한 논의를 더는 미룰 수 없다. 인류학계와 고고학계는 이제 아프리카 약탈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시작해야 한다. 아프리카 약탈은 제국주의가 진행되며 우연히 발생한 부작용이 아니라 수탈적·군국적 식민주의와 간접적 통치를 달성하기 위해 동원된 핵심적인 기술이었다. ‘세계문화’ 박물관은 분명 그 무자비한 약탈의 일부였으며, 그 상태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 p.45

3장 죽음과 상실의 기록, 네크로그라피
현재의 유럽 인류학 박물관은 공공의 공간인 동시에 현재도 진행 중인 식민역사의 지표다. 박물관은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두 가지 시급한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그 두 가지는 바로 대영제국에 대한 잘못된 서사를 바로잡는 것, 그리고 남반구의 다양한 공동체를 지원하여 완전히 새로운 모델의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죽음과 상실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야말로 기존의 ‘얽힘’ 이론과 ‘사물의 생애사’ 이론에 저항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 p.58~59

4장 백인적 투사
이들이 사용한 핵심 전략은 강자와 약자를 지속적으로 뒤바꿔 백인을 피해자로 그리는 백인적 투사였다. 베닌 원정을 ‘응징 작전’으로 그린 것은 이러한 투사의 작용이었다. 빅토리아 시대 후기와 에드워드 시대에 아프리카를 상대로 상업적 이익을 거두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엄청난 폭력을 자행한 것도, 오늘날 영국의 박물관이 그 시기의 약탈 문화재로 채워진 것도 바로 이런 투사가 가능하게 한 것이다. 투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단순했다. 상대방이 먼저 피해를 주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이를 핑계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문제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사실은 가해자였다는 점이다.
--- p.68

5장 0차 세계대전
유럽 열강들은 1884년 베를린 회의에서 아프리카 분할을 논의했다. 베를린 회의 이후 약 30년간 영국과 독일,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와 남반구에서 벌인 군사 활동은 20세기에 벌어진 끔찍한 사건들의 전조가 된 ‘0차 세계대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는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영국은 이 시기 ‘무한 전쟁’을 통해 아프리카 지역의 왕과 군대, 마을을 차근차근 제거해나가며 새로운 ‘간접’ 통치 모델을 수립했다. 노예무역을 철폐하겠다며 시작된 ‘인도주의적’ 군사 행동은 아프리카 내륙으로 향할수록 변질됐고, 그 과정을 맥심기관총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수월케 했다.
--- p.82

6장 기업적·군국적 식민주의
이 시기 작성된 공식 보고서들은 하나같이 빽빽한 밀림에서 로켓포와 기관총으로 진행한 작전의 특성상 “사망한 원주민의 수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자행된 폭력의 역사를 살펴보다 보면 이 모든 작은 전쟁과 원정들이 사실은 하나의 연속적인 정복 작전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국은 이후로도 1890년대 내내 그 지리적 범위를 넓혀가며 아프리카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폭정과의 전쟁’을 수행해나갔다.
--- p.113

7장 폭정과의 전쟁
영국이 주장한 이 폭정과의 전쟁에서는 상호성의 형태로 일종의 시간에 대한 폭력이 작동했다. ‘군국적 식민주의’ 이론이 절도를 두고 일종의 상환으로 정당화한 것과 유사한 과정을 통해 전쟁을 정당화했다는 의미다. 절도의 정당화에서도 전쟁의 정당화에서도 시간적 순서의 뒤바뀜이 일어났다. 영국은 자국의 공격에 대한 아프리카의 저항을 수년간 치밀하게 계획한 공격으로 포장했다. 그러나 정작 오랜 시간 계획하여 조직적으로 실행에 옮긴 자국의 아프리카 공격은 순전히 대응 차원의 공격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은 북 에 위치한 나이저회사 영토에서 노예사냥이 벌어지고 있다는, 남 의 보호령 영토에서 인신공양이 벌어지고 있다는 핑계를 빼놓지 않았다. 시간의 왜곡을 활용한 이 투사는 아프리카의 정권 교체를 위해 군국적 식민주의의 이념과 ‘인권적인’ 합리화를 이용하는 군국적 인도주의의 시작을 알렸다.
--- p.121

8장 베닌-나이저-수단 원정
베닌 원정은 결코 부수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이 원정에서 나타난 나이저회사와 보호령의 협력은 나이지리아가 영국의 직접적인 식민지로 태어나는 데 있어 중요한 기반이 됐다. 역사학자들은 당시 나이저회사와 영국 정부 사이에 인적·정치적 차이가 존재했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나이저회사와 보호령의 의사결정 과정 또한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던 것도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영국 정부는 외교부와 식민부의 이해관계를 점차 통합해나간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우리가 물려받은 베닌 원정에 대한 서사에서는 당시 식민부의 의도에 따라 나이저회사의 역할이 적극적으로 축소되어 있다. 그러나 베닌 원정은 양측의 합동작전이었고, 회사는 원정을 통해 장기적으로 큰 이익을 얻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 p.140

9장 베닌시티 약탈
베닌시티 약탈은 인간의 생명과 문화, 신념과 예술, 그리고 주권에 대한 공격이었다. 이 공격은 나이저회사와 보호령의 결탁 속에 점점 극심해지고 있던 나이저 삼각주 지역의 무차별적인 폭력과 대량학살의 강행군 속에서 실행됐다. 영국은 이 지역의 족장들을 제거하고 수많은 민간인들을 겁박하고 쫓아내고 학살했다. 이 모든 것은 현지에서 오랜 세월 통치해온 왕들을 제거하고 정권을 교체하기 위한 새로운 시대의 대규모 군사 작전의 일부였다. 영국 여왕의 재위 60주년 기념일이 다가오고 있었고, 프랑스와 독일의 식민 정책이 변경되며 영토 확보에 대한 압박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통치권의 새로운 지정학이 등장했다. 통제의 도구로서 단순히 영토가 아닌 시간을 활용하는 ‘시간의 정치학’이었다.
--- p.156

10장 대량학살
베닌 원정으로 인한 사상자 규모를 한번 파악해보자. 작전 중 사망한 영국 측 인원은 총 여덟 명이었다. 장교 한 명, 사병 세 명, 해병대 병사 한 명, 의사 한 명, 보호령 병사 한 명, 그리고 안내인 한 명이었다. 그 외 마흔 명 정도가 중경상을 입었다. 베닌 측 병사나 시민의 사상자 규모를 파악하려는 시도는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영국 측에는 3백만~4백만에 달하는 탄환과 맥심기관총 38정, 산악총 12정, 로켓포 6대가 있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만 상대편에서 어느 정도의 사상자가 나왔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작전 중 사망한 영국인의 경우 이름까지 기록되어 있고, 일부 지역 교회에는 그들을 기리는 명판도 걸려 있다. 하지만 영국의 공격으로 사망한 비니족과 이츠키리족에 대한 기록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 p.159~160

11장 문화적 삭제
에저튼의 기록을 보면 영국군이 베닌시티 점령 후 자행한 파괴가 조직적인 성격을 띠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파괴는 하루아침에 베닌시티를 살아 있는 도시에서 고고학적 유적으로 바꿔놓았다. 다음날인 2월 21일 일요일에는 왕궁이 잿더미가 됐다. 추후 영국은 이것이 사고였다고 주장했지만, 단순한 사고였다기보다는 약탈의 광기 속에 벌어진 실수였을 것이다. 이 화재 탓에 영국은 왕궁에 저장해두었던 물건들 중 일부를 잃기도 했다. 건물에 대한 방화는 파괴뿐 아니라 시신을 태우기 위한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랄프 무어는 이를 엿볼 수 있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불이 나서 왕궁과 그 주변 구역이 모두 파괴되어버렸다. 그 탓에 숙소도 보급품도 부족해져서 야외 막사에서 생활하게 됐지만 불은 그 모든 불편을 충분히 보상해줄 만큼 모든 것을 깨끗하게 정화해주었다.”
--- p.178

12장 약탈
베닌시티 약탈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오해는 전리품에 대한 수집과 보호가 질서 있고 공식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오해는 문화재 반환 관련 논의에 잘못된 영향을 주기도 한다. 다시 한 번 말 하지만 베닌시티 약탈은 반달리즘이자 문화적 파괴행위였으며, 거기에는 문화재를 구하거나 보호하려는 어떤 노력도 없었다. 보호령 측이 약탈물의 일부를 판매해 생긴 돈이 정부에 전달됐는지 보호령의 군인과 관리들의 주머니 속으로 사라졌는지조차도 알 수 없다.
--- p.192

13장 죽음과 상실의 역사, 네크로로지
우리에게 필요한 도구는 붓과 찻숟가락보다는 곡괭이와 삽에 가깝다. 그 도구들을 활용하여 약탈의 삼위일체, 즉 군인과 상인, 식민지 관리들의 행동을 파헤치고 그것이 인류학 박물관과 민속예술품 시장의 등장에 준 영향을 발굴해내야 한다. 네크로그라피 작성자의 초점은 약탈을 통해 상실을 발생시킨 이 백인 남성들에게 정확히 맞춰져야 한다. 약탈자 한명 한명에게 초점을 맞춤으로서 우리는 무엇이 약탈됐는지 이해하고 그 소재를 파악하는 한편 문화재 반환의 과업을 촉진할 수 있다. 현재 이러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것은 유럽과 북미의 박물관 큐레이터들이며, 그 지식은 공유되어야 한다.
--- p.208

14장 무기의 박물관
약탈품으로서 영국에 도착한 베닌의 물건들은 패배한 적의 ‘원시’적인 ‘부족’ 예술로 전시됐다.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가져왔다는 변명이 무색하게 이 약탈품들은 박물관 내에서 전혀 안전하지 않았다. 파넘 피트 리버스 박물관이나 크랜모어 박물관처럼 박물관 자체가 문을 닫게 되면서 컬렉션 전체가 어딘가로 팔려간 경우도 있었다. 군사 박물관들의 경우 전시 중인 물건에 대한 이해가 떨어져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도 했다. 잘못 전시되거나 파손되는 경우도 많았다. 1899년 시카고 필드 박물관에서 가져온 리버풀 박물관의 베닌 모후 청동 두상 조각은 1941년 5월 3일 독일군의 집중 공습으로 수천 점의 다른 문화재와 함께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그다음 달인 6월 24일에는 폭격으로 헐 시립 박물관이 파괴됐다. 베닌 약탈품 중 하나였던 청동 장식판은 다행히도 몇몇 문화재와 함께 폐허 속에서 발견됐다.
--- p.235~236

15장 시간의 정치학
영국과 독일의 민족학 박물관들이 어떻게 약탈물을 전시하고 그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동원됐는지 그 상세한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1897년 베닌 약탈이 그 과정에서 일종의 분기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베닌 약탈품을 전시하는 민족학 박물관, 또는 ‘세계문화’ 박물관은 모두 어김없이 필립스 사건과 ‘응징 작전’이라는 서사를 반복하고 있다. 영국은 베닌의 주민을 학살하고, 문화적 장소를 파괴하고, 왕실 보물을 시장에 내다 판 것으로도 모자라 전시를 통해 시간 그 자체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 p.251

16장 선전포고
영국박물관의 진 랭킨 부관장은 “영국박물관에는 불법적으로 취득한 물건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베닌 브론즈의 경우 취득 당시 영국이 해당 지역에 대해 정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므로 영국의 행동은 적법성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답했다. 이 시기를 전후로 백인적 투사는 세 가지 새로운 주장으로 나타났다. 첫째는 약탈물의 취득이 적법하게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그 반환이 오히려 불법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은 국립박물관 소장품의 처분을 금지하는 규정을 들며 반환 가능성 자체를 부정했다. 둘째는 베닌 브론즈가 나이지리아를 떠남으로써 영국에서 안전하게 보관될 수 있었고, 반환이 문화재를 다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셋째는 아프리카의 주권을 부정하고 반출해간 약탈물의 반환을 요구하는 행위가 ‘정치적’이라는 주장이었다.
--- p.262~263

17장 부정적 순간
빅토리아 시대의 군국적·기업적 식민주의는 대량학살과 문화 파괴를 정당화하는 서사를 만들어냈다. 인류학 박물관과 민족학 박물관들은 그 폭력이 끝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도록 식민주의의 서사와 함께 베닌의 약탈품들을 전시해왔다. 매일 아침 박물관이 잠겨 있던 문을 열고, 도난방지 알람을 끄고, 조명을 켜고, 방문객을 맞이할 때마다 그 폭력은 반복된다. 오늘 아침 박물관을 찾은 관광객과 현장학습을 온 학생들 앞에서도 그 폭력은 반복됐다. 폭력이 반복될수록 각각의 약탈물에 내재된 사건의 밀도는 올라간다. 이제 임계점이 멀지 않았다. 박물관이 아무리 성찰을 강조하고 설명판의 내용을 수정해도 소용없다. 전시물 설명에 식민지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리 덧붙여도, 반환 노력 없이 계속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폭력의 반복이자 연장이기 때문이다.
--- p.289

18장 1만 개의 단절된 역사
1884년 베를린 회의에서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까지 이르는 30년 동안 박물관은 약탈이라는 행위의 성격을 바꿔놓았다. 약탈의 박물관은 새로운 형태의 백인우월주의를 위한 기간시설이 되어 폭력을 연장했다. 서양은 폭력적인 군사 작전으로 빼앗은 물건들을 박물관으로 가져와 ‘원시’나 ‘퇴락’이라는 설명을 붙여 전시했다. 이러한 폭력의 연장은 백인우월주의의 핵심이었으며, 20세기에 인류를 덮친 공포의 전조였다. 지금껏 이런 일을 해온 서양의 국립박물관들이 이 자신들의 공모행위에 대해 ‘논쟁’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미 많은 관람객과 큐레이터들이 폭력적이고 인종적인 전시 방식에서 이 약탈물들이 겪은 과거의 무자비한 수탈의 역사를 읽어내고 있다.
--- p.309

맺음말: 반환의 10년
이 세상에는 훔쳐온 물건으로 채워지지 않은 인류학 박물관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반환에 관련된 박물관의 ‘대화’는 ‘얽힘’이나 복잡성을 핑계로 너무나도 자주 장광설이나 배제, 방해, 침묵과 삭제로 채워졌다. 그러나 이 역사의 많은 부분은 사실 그렇게 복잡하거나, 어렵거나, 얽혀 있지 않다. 반환을 위해 고려해야 할 역사는 오히려 단순하다. 약탈된 물건이 존재하고 그 물건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공동체가 존재한다면 서구 박물관들은 그 물건은 물론 그와 관련된 지식, 자원, 연결, 기반을 돌려주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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