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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3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60쪽 | 382g | 128*188*18mm
ISBN13 9788954685801
ISBN10 8954685803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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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도끼로 얼굴을 얻어맞은 듯한 표정의 통근자들이 내디디는 걸음을 이리저리 피하며(집에 가고 싶다는 그들의 확신이 내게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보도와 빌딩들을 드디어 벗어나 하이드공원을 가로지릅니다. 여기는 덜 붐빕니다. 조급한 인파가 약간이나마 더 느긋한 분위기의 행인들로 대체되죠. 목적을 갖고 걷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이들은 도시가 승리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기로 마음먹고 이따금 고개를 들어 장미의 향기를 맡습니다.
--- p.64

각 잡힌 셔츠와 말쑥한 구두 차림의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가서 직장을 구할 겁니다. 유용하고 평범한 일을 하는 그곳?전면창이 달리고 고무나무가 있는 사무실쯤 될까요?에서 마침내 자신의 삶을 끌어안게 될 거예요. 부여받은 것 자체가 크나큰 행운인 그 삶을요. 그의 몫으로 할당된 듯한 이 세상 속 빈칸에 드디어 자신을 끼워넣을 겁니다. 그의 치수에 딱 맞춰 비워놓은 듯한 공간이군요. 그래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 p.80

제이미는 밑그림을 그리는 동안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각별히 노력하며 ‘미지’의 온갖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요소들을 동시에 떠올리고 기억했다. 가령 ‘미지’에 관해서는 잘못된 계획이라는 게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미지’가 얼마나 자유로운 개념일 수 있는지. 그리고 모두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일조차 아우를 수 있다는 점에서 ‘미지’가 얼마나 크나큰 희망을 가져올 수 있는지.
--- p.115

녀석이라는 존재의 어디가 내게 이토록 극심한 장애를 유발하는 걸까? 단순히 녀석의 근본적인 무용함이 못마땅해서일 리 없다. (…) 혹 내가 저 곰을 질투하나? 그렇지만 녀석의 미소 띤 실밥 입술과 어깨의 해진 이음매를 잔뜩 노려보고 있자니 저리도 무가치한 피조물이 그처럼 격정적인 감정을 부추긴다는 생각 자체가 어이없었다.
--- p.136

대체로는 커피의 씁쓸함이나 강렬함, 혹은 한 모금 넘길 때마다 심장이 콩닥콩닥콩닥 박동을 높이며 온 사물의 색깔이 더 밝아지고 가장자리는 더 예리해지는 듯한 기분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건 뭐랄까, 웬 요정이 내 머릿속 포토샵 프로그램의 레벨을 갖고 놀면서 명암 조절용 바를 위로, 위로, 위로 밀어올리는 것만 같았다.
--- p.191

내가 업무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고 목적을 가늠할 능력이 안 된다는 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일이라는 건 그냥 수행하고, 의문을 품지 않을 때 쉬워졌다. (…) 커피는 처리되기를 끈질기게 거부하며 내 소화기의 깊숙한 곳에서 요동쳤지만, 나는 이렇게 직장에 있고 런던에 살아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늘 소망했던 바로 그 기분을 마침내 느끼는 셈이었다.
--- p.194

부모님 앞으로 부치지도 못할 편지나 쓰고 또 쓰는 대신 드디어 입 밖으로 죄다 내뱉을 때의 그 안도감이란. 게다가 얼마나 멋진 일인가. 다정한데다 그녀를 아끼기까지 하고, 톰을 모르는 이들에게 그 얘기를 한다는 건. 그에 대해 그녀가 말하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도 전과 다름없이 다정하고 이해해주고 따뜻한 이들에게.
--- p.238

그건 방파제였다. 당연히 그거였다! 항만용 방파제. 지리학 시간에 배우는 것 같은. 『태풍의 까마귀』에 나오는 루카스가 ‘스캐로 포인트’에서 본 것 같은. 그리고 이 얼마나 마법 같은 일인가. 글로 읽은 세상이 실제임을 확인하는 이 느낌. 그저 믿음의 영역일 뿐이던 세상이 몹시도 엄연한 사실로 등장해 저 자신을 증명하고 우리 눈앞에서 진실로 확인되는 이 경험은.
--- p.279

앨피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올렸다. 종아리에 와닿는 차가움, 그리고 맨발에도! 앨피는 맨발로 다닌 적이 없었다. 엄마는 진드기와 붉은 개미와 풀밭의 날카로운 물건들 혹은 버스 좌석 주변에 도사린 것들을 심히 걱정스러워했다…… 아무리 그렇대도 아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몸 밑으로 들이치는 저 바다는.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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