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길고 어려운 이름만큼이나 우리에겐 생소한 곳이다. 각각 아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끄트머리에 위치해 안 그래도 먼데, 국가 간 교류조차 많지 않은 탓에 이름만 듣고는 정확히 어디에 있는 어떤 나라인지 감조차 잡기 쉽지 않다.
인천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주요 공항까지 이동하는 데 걸리는 비행시간만 24시간에 가깝고, 실제 이동 시간은 40시간 가까이 걸리니 멀기도 참 먼 곳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한국과 비슷한 면모가 많다. 한국이 아시아의 동쪽 땅끝 마을 격인 것처럼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아프리카의 남쪽 땅끝 마을로, 한국과 같이 삼면이 바다와 맞닿아있고 똑같이 동고서저의 지형을 가지고 있으며 뚜렷한 사계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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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민주주의 투표가 처음 이루어졌을 때 이곳 사람들의 영원한 정신적 지주,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이곳을 ‘무지개 나라’라고 칭했다. 피부색으로 편을 갈라 일어난 과거의 아픔을 딛고 개개인이 가진 다양성을 포용하고 그와 더불어 모든 이를 하나 되게 만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의 인구 중 80퍼센트는 흑인이다. 백인과 컬러드인은 각각 10퍼센트 이하이며, 2.5퍼센트 정도는 아시아인이 차지한다. 하지만 이는 피부색으로만 인구를 나눈 수치일 뿐이다.
--- p.37~38
학교 활동이 끝난 후 아이들의 일과는 사는 곳에 따라 많이 다르다. 교육열이 높은 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간식을 먹고 숙제를 한다. 친구들끼리 모여 학교 프로젝트를 하는 경우도 많다. (…) 이곳에 사는 아이들은 주말이면 가족이나 친구와 시간을 보낸다. 친구들과 새로 나온 영화를 보거나 해변에 모여 수영을 하고 간식을 먹는다. 고등학생들은 여럿이 모여 등산을 가기도 한다. 주말에 열리는 시장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가족끼리 여행을 떠나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오기도 한다.
그러나 타운십과 같은 지역에 사는 아이들의 일과는 다르다. 그들은 아침부터 들리는 총성을 뒤로하고 차를 타거나 걸어서 학교에 간다. 갱들끼리 대립이 있는 날이면 정말로 바람을 가르는 총알을 피해 등하굣길에 오르는 아이도 많다. 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교육열이 높은 학교만큼 방과 후 활동이 다양하지 않다.
--- p.66
특히 날씨가 좋은 케이프타운에서의 와이너리 투어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들의 일상적인 여가 생활이다. 와인 수요가 큰 만큼 사람의 왕래가 잦아 와인 농장도 와인 생산에만 치중하지는 않는다. 피크닉 공간을 마련해 다양한 고객층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는 고급 다이닝 레스토랑과 겸하는 곳, 넓고 푸른 야외 공간에 웨딩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 호텔을 운영하며 스파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곳 등 각종 서비스가 준비되어 있다. 이 중 다양한 포도 품종으로 만든 와인 아이스크림을 와인과 곁들어 시음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
--- p.96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400년대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항해 중 우연히 지금의 웨스턴케이프주에 발을 디디면서부터다. 이곳 바다의 거센 파도와 바람을 보고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폭풍의 곶’이라고 이름 지었지만 이후 포르투갈 국왕 주앙 2세가 인도로 가는 항로를 열어줄 이곳을 ‘희망봉’이라 명명했다. (…) 케이프타운은 이민 사회의 상업적, 사회적 및 행정적 중심이 되었다. 시장에서는 농부들이 소 수레에 농작물을 가져와 팔거나 가축을 데려와 도축하고 옷이나 생필품, 커피, 차, 설탕 또는 노예 등을 사고팔았다. 교회와 빵 가게, 상점, 감옥이 한데 모인 희망성에서도 장터가 열렸다. (…) 급증하는 이민 사회를 먹여 살리면서 무역선에 물자를 실어 보내기에는 자원과 노동력이 너무 부족했다. 회사에서 보내온 동부 아프리카, 서부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계 노예들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충분치 않았다. 이에 이들은 토착민과 그들의 땅으로 눈을 돌렸다.
--- p.115~117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세대가 세상을 이어받고 있다. 잘못은 이미 오래전 죽은 사람이 했으니 아무리 그 자손이 실권을 이어받았더라도 과거에 착취당한 사람의 자손에게 무조건 전 재산을 내어줄 수도 없고, 과거에 조상이 착취당했다고 해서 가해자 후손의 전 재산을 무조건 빼앗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미 많은 것이 뒤얽혀버려 정확히 어떤 것을 얼마만큼 돌려줘야 하는지도 불분명하다. (…) 평등한 자리에서 서로를 바라볼 생각이라도 할 수 있는 지금이 나은 것은 확실하다. 경제적인 격차는 수십 배에서 수천 배까지 나지만 절대적인 태생이 아니라 노력과 운으로 어떻게든 바꿔볼 틈이라도 있는 지금이 낫다.
수백 년간 답습된 잘못된 문화를 엎어버리고 불과 30년 만에 이 정도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희망찬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렇게 변화하는 역사를 살아내며 앞으로의 30년이 가져올 새로운 세상은 얼마나 달라질지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들은 각자의 무지갯빛 세상을 그려본다.
--- p.158~159
생김새도 생활 방식도 각기 다른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들. 하지만 이 모든 사람의 공통분모가 되어주는 음식이 있다. 바로 직화 구이이다. 준비도 번거롭고 뒤처리도 귀찮지만 요리에 남은 불맛은 모든 문화를 매료시키고도 남는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문화에서 브라이는 큰 부분을 차지한다. 브라이는 남아프리카공화국식 직화 바비큐로, 요리뿐 아니라 직화로 음식을 구워 먹는 행위 자체를 뜻한다. 매 주말이면 어딜 가나 브라이 불을 준비하는 나무 타는 냄새가 난다. (…)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에게 브라이는 중요한 문화이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적 뿌리를 기념하는 헤리티지 데이(9월 24일)를 국립 브라이 데이라고도 부른다. 브라이를 하며 함께 뿌리를 기념하자는 취지이지만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브라이를 좋아하는지 전 국민의 사심을 채우기 위해 공휴일까지도 만들어버렸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 p.168~170
이곳은 인도양과 대서양이 서로 만나는 지점이다.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록된 이 지역의 다양한 식물과 토종 식물인 파인보스를 구경하며 희망봉 등대에 도착하면 인도양과 대서양 두 빛의 바다가 서로 다른 색으로 바다를 가르는 절경을 200미터 높이의 절벽 아래로 볼 수 있다.
절벽 아래 인적이 드문 해변에 내려가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마음대로 널부러져 있는 바분원숭이와 인사하거나 드라이브하며 타조와 얼룩말, 일랜드, 본테복 등 여러 야생 동물을 구경할 수도 있다.
희망봉은 입구에서 등대까지 가려면 한참을 운전해야 할 만큼 넓다. 오랜 역사에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어 케이프타운에 방문하면 꼭 한 번 가봐야 하는 필수 관광지이다.
--- p.208~210
인류의 요람지역은 2억 년 전 일어난 인류의 시작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4만 7,000헥타르(47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지역에는 석회암 동굴이 옛 동식물과 인류의 흔적을 화석으로 품고 있어 초기 인류의 유적이 많이 발견된다. 이 지역은 국립 유적 발굴지가 열세 군데 있는데 이곳에서 전 세계 인류 화석의 40퍼센트, 즉 850여 개가 발견되었다. 1924년에 발견된 첫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타웅 아이가 대표적이다.
요하네스버그에서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스테르크폰테인 동굴에서는 미세스 플레스와 리틀풋 등 유명한 화석이 발굴되었다. 이 화석은 약 400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 p.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