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최근 몇 년간 다양한 형태의 회의를 지켜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회의 문화를 모니터링하고 진단하고 컨설팅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회의가 회의답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어쩌면 ‘회의답지 않다’는 말 자체가 잘못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으레 ‘회의’라고 부르는 그것이 애당초 회의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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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회의 모습을 통해 그 조직의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조직의 사람들이 누군가를 이끄는 방식,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 의사 결정하는 방식, 피드백하는 방식, 협업하는 방식 등을 알 수 있죠. 즉, 회의는 조직의 축소판과도 같습니다. 결국 회의 문화를 바꾼다는 것은 소통을 원활하게 만드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문화를 바꾸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가짜회의를 진짜회의로 바꾸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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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개인 플레이어로서 주로 1 대 1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합니다. 1 대 1 커뮤니케이션과 보고 혹은 발표는 내가 얼마나 말을 잘하는가의 문제입니다. 내가 잘 전달하기만 하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다수를 대상으로 무언가를 설득하거나 보고해야 할 때입니다. 그룹의 대화는 내가 말을 잘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대화가 아닙니다. 말을 잘하는 것과 그룹의 대화를 이끄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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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 인텔만 보더라도 ‘미팅의 목적을 모른다면, 미팅을 시작할 수 없다(If you don’t know the purpose of your meeting, you are prohibited from starting).’라고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회의의 목적과 목표는 명확하게 도출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논의해야 하는지 모르는 참석자들이 모여 토론할 ‘거리’가 없는 무의미한 회의를 하게 됩니다. 혹은 너무나 많은 토론이 난무하는 중구난방식의 회의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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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계획서가 아예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모호하다면, 우리의 회의는 덜 준비된 듯한 회의, 주제를 벗어난 회의, 아무런 결론을 얻지 못하고 의미 없이 끝나는 회의가 되고 맙니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배는 순풍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회의를 잘 진행하기 위해서는 회의를 잘 준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회의 전에 참여자들이 무엇을 논의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준비하면 되는지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그들의 참여를 촉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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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의 CEO인 엘론 머스크(Elon Musk)는 본인이 참여하는 회의에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해고까지 언급할 만큼 회의 준비 과정을 중요시합니다. 그는 항상 직원들에게 ‘회의에 참석하는 다른 참석자에게 어떤 정보나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회의에 참석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것이 무례한 것이 아니라 다른 참석자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무례한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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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오고 가는 진정한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회의 참여자들이 용기를 내지 않고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어떤 의견이든 편안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며, 모두가 그 의견을 수용하고 귀 기울여 들어주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정과 격려, 칭찬과 지지의 언어들이 난무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기업 구글(Google)에서는 임직원이 이러한 분위기를 느끼는 것을 ‘심리적 안전감’을 가진 상태로 정의하고, 수년간의 연구를 통해 이것이 최고의 성과를 내는 팀들이 가진 공통점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우리의 회의에서도 더 나은 논의를 위해서는 이러한 심리적 안전감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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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 ‘의견이 많은 회의’는 좋은 회의인가요?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당연히 좋은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회의에서 중요한 것은 의견의 ‘양’이 아닙니다. ‘의견 간의 교환’이 많이 이뤄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의견은 많지만 그 의견이 한 명의 의견이라면 어떨까요? 그건 회의가 아니라 설명회나 잔소리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의견은 많은데 정리되지 않은 의견이라면 어떨까요? 의견은 많지만 결국 회의는 길을 잃고 더 복잡해지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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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에서 제시되는 의견에는 언제나 꼬리표가 따라붙습니다. 의견을 낸 사람의 이름표가 따라붙는 겁니다. 그리고, 이 꼬리표는 다른 사람이 의견을 내는 것을 방해합니다. 회의를 하다 보면 ‘다른 관점의 의견’을 내야 할 때가 있는데,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다른 관점의 의견’이 ‘반대 의견’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이 마치 그 사람을 적대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사람들은 염려하게 되죠. 결국 비슷한 결의 의견들만 더 나오게 되고 회의는 마치 모두가 동의한 것처럼 마무리되고 맙니다. 이것이 모두 ‘꼬리표’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회의를 진행하는 사람은 이 꼬리표를 자르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발언자’가 아닌 ‘발언’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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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록은 사료가 아닙니다. ‘누가 무슨 말을 했고, 누가 그 의견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를 하나하나 기록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애플의 경우에는 회의장에서는 노트북을 열지 않고, 다이어리에 기록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화이트보드를 집단의 기억 및 합의의 도구로 활용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회의가 끝나고 화이트보드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서 공유하는 것으로 회의록을 대신한다고 합니다. 문서로 남겨야 하는 것은 회의 실행 계획서입니다. 여기에는 화이트보드 사진 첨부와 함께 ‘향후 무엇을, 누가, 언제까지 할 것이다’라는 내용 위주로 기록합니다. “회의록은 간단하게, 회의 실행 계획서는 명확하게”를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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