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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여행자 The Excursionist
2 피아노 앞의 두 소녀 Jeunes filles au piano (Two Young Girls at the Piano)
3 두 자매 (테라스에서) Two Sisters (On the Terrace)
4 글라디올러스가 있는 꽃병 Gladiolas in a Vase
5 잔 사마리의 초상 Portrait of Jeanne Samary
6 물랭 드 라 갈레트 무도회 Bal du moulin de la Galette
7 초원 Meadow (La Prairie)
8 벨뷰의 비둘기집 Dovecote at Bellevue (Pigeonnier de Bellevue)

저자 소개 2

金榮淑

수만 년을 거슬러 현재에 다다른 예술 작품들 속에서 아름다움과 재미, 감동을 짚어내며, 지식의 저변을 넓혀주는 미술 에세이스트이다. 세종문화회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법제처, 용인문화재단 등을 비롯한 공공단체나, 여러 기업과 갤러리, 도서관 등에서 미술사를 강의했고, 미술과 관련된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했다. 고려대학교에서 서어서문학을 전공했고, 주한 칠레 대사관과 주한 볼리비아 대사관에서 일했다. 마흔 살 즈음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가 미술사를 공부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미술 365》, 《365일 명화 일력》,
수만 년을 거슬러 현재에 다다른 예술 작품들 속에서 아름다움과 재미, 감동을 짚어내며, 지식의 저변을 넓혀주는 미술 에세이스트이다. 세종문화회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법제처, 용인문화재단 등을 비롯한 공공단체나, 여러 기업과 갤러리, 도서관 등에서 미술사를 강의했고, 미술과 관련된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했다.

고려대학교에서 서어서문학을 전공했고, 주한 칠레 대사관과 주한 볼리비아 대사관에서 일했다. 마흔 살 즈음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가 미술사를 공부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미술 365》, 《365일 명화 일력》, 《루브르와 오르세 명화 산책》, 《미술관에서 읽는 세계사》, 《현대 미술가들의 발칙한 저항》, 《미술관에 가고 싶어지는 미술책》 등 40권 이상의 미술 관련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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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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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Auguste Renoir

프랑스 리모주 출생. 4세 때 파리로 이사하였다. 집안이 가난한 양복점이어서 13세부터 도자기공장에 들어가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일을 하였다. 이곳에서 색채를 익힌 것이 뒤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 무렵부터 점심시간에는 루브르미술관에서 J.A.와토나 B. 부셰 등의 작품에 이끌려 화가가 될 것을 꿈꾸었다. 그러나 4년 후 기계화의 물결에 밀려 실직, 겨우 부채그림이나 점포장식 등을 하였다. 1862년 글레이르의 아틀리에에 들어가 C.모네, A.시슬레, 바지위 등을 알게 되고 또 C.피사로, P.세잔, J.B.A.기요맹과도 사귀어, 훗날 인상파운동을 지향한 젊은 혁신화가들과 어울리
프랑스 리모주 출생. 4세 때 파리로 이사하였다. 집안이 가난한 양복점이어서 13세부터 도자기공장에 들어가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일을 하였다. 이곳에서 색채를 익힌 것이 뒤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 무렵부터 점심시간에는 루브르미술관에서 J.A.와토나 B. 부셰 등의 작품에 이끌려 화가가 될 것을 꿈꾸었다. 그러나 4년 후 기계화의 물결에 밀려 실직, 겨우 부채그림이나 점포장식 등을 하였다. 1862년 글레이르의 아틀리에에 들어가 C.모네, A.시슬레, 바지위 등을 알게 되고 또 C.피사로, P.세잔, J.B.A.기요맹과도 사귀어, 훗날 인상파운동을 지향한 젊은 혁신화가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이리하여 초기에는 코모, 들라크루아, 크루베 등의 영향을 받았고,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종군한 후에는 작풍도 점차 밝아졌다. 그리하여 인상파의 기치를 든 1874년 제1회 전람회에는 [판자 관람석](1874)을 출품하였고, 계속하여 제2회와 제3회에도 참가하여, 한동안 인상파 그룹의 한 사람으로서 더욱더 눈부시게 빛나는 색채표현을 전개하였다. 대작(大作) [물랭 드 라 갈레트 Le Moulin de la Galette](1876)와 [샤토에서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1879)은 인상파시대의 대표작이다.

1881년 이탈리아를 여행, 라파엘로나 폼페이의 벽화에서 감동을 받고부터는 그의 화풍도 마침내 한 전기(轉機)를 맞이하였다. 귀국 후 얼마 동안의 작품은 색감과 묘법(描法)이 크게 바뀌었다. 즉 담백한 색조로써 선과 포름을 명확하게 그려서 화면구성에 깊은 의미를 쏟은 고전적인 경향을 띤 작품들로 [목욕하는 여인들](1884~1887) 등을 그렸다. 그 후는 완전히 인상파에서 이탈하여 재차 독자적인 풍부한 색채표현을 되찾아 원색대비에 의한 원숙한 작풍을 확립하였다. 더욱이 1890년대부터는 꽃 ·어린이 ·여성상, 특히 [나부(裸婦)](1888) 등은 강한 의욕으로 빨강이나 주황색과 황색을 초록이나 청색 따위의 엷은 색채로 떠올리면서 부드럽고 미묘한 대상의 뉘앙스를 관능적으로 묘사하였다.

프랑스 미술의 우아한 전통을 근대에 계승한 뛰어난 색채가로서, 1900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만년에는 지병인 류머티즘성 관절염 때문에 손가락에 연필을 매고 그리면서도 마지막까지 제작하는 기쁨을 잃지 않았다. 최후 10년 간은 조수를 써서 조각에도 손대어 [모자(母子)](1816)와 같은 작품을 남겼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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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2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20쪽 | 1030g | 350*500*8mm
ISBN13
9791196325039

출판사 리뷰

제작 배경

미술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 안에 있다. 우리가 입는 옷, 먹는 음식, 머무는 건축, 걷는 거리까지. 미술과 예술은 이미 우리의 공간과 삶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조금만 주변을 둘러보아도 우리는 매일 미술을 만나고, 예술을 경험한다.
그런데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려는 순간’부터 문제는 시작된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아이들은 미술을 어려워하고, 결국 예술까지 멀리하게 된다. 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우리는 미술을 감상하기보다 ‘이 화가의 이름은? 작품의 이름은? 미술사조는?’처럼 외워야 할 지식으로 먼저 배운다. 그렇게 명화는 명화로 느껴지기보다 하나의 수학문제 같은 개념이 되어버린다. 마치 영어단어를 외우듯이 말이다.

나는 그런 편견을 깨고 싶었다. 어떤 책을 만들더라도, 책 안에 담긴 그림의 퀄리티만큼은 남녀노소 누구나 보는 순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감동을 주고 싶었다. 내가 처음 명화를 직접 마주한 날, 교과서를 포함해 그동안 보아 온 미술책 속 그림들은 원작의 감동과 너무나 달랐다. 책은 ‘고흐’의 ‘해바라기’를 감상하게 하기보다,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라는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직접 마주한 원작은 전혀 달랐다. 너무나도 강렬했고, 너무나도 감동적이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날 만큼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감동은 나에게 하나의 꿈을 꾸게 했다. 이 위대한 예술의 감동을 누구나 쉽고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었다. 그리고 결국 스물아홉 살, 나름 잘나가던 회사를 그만두게 만들었다.

개발 스토리

2002년 11월, 예술의 감동, 명화의 감동이 온전히 담긴 책을 만들기 위해 인쇄를 연구하고 실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비싼 인쇄기를 살 형편이 되지 않아 하루 8시간씩 인쇄기를 임대해 테스트를 했다.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테스트를 멈출 수는 없었다. 종이, 잉크, 분판, 출력, 인쇄 원리까지 처음부터 다시 공부했다. 각각의 요소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연구하고 실험했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인쇄기를 임대할 수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녔다. 그렇게 15년을 보냈다.

개발 과정 중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연구는 ‘가격을 낮추는 연구’였다. 총 20년의 연구 기간 중 이 과정에만 무려 15년이 걸렸다. 퀄리티를 높이면서 공정을 단순화하고, 공정을 단순화하면서도 색상 밸런스를 맞추고, 단순화된 공정 안에서 인쇄 트러블을 줄여야 했다. 잉크값을 낮추고, 종이값을 낮추고, 인쇄 비용을 낮추는 일까지 끝없는 실험의 연속이었다.

마리갤이 탄생하기까지 실제 그림을 그리는 수채화지와 판화지 위에 수없이 테스트를 반복했다. 미술용지는 일반 인쇄 용지보다 종이값이 비싸고, 잉크를 흡수하는 특성이 강해 원하는 색을 표현하기가 훨씬 어렵다. 인쇄 비용 역시 높다. 그럼에도 마리갤은 종이에 직접 그린 듯한 질감을 살리기 위해 미술용수채화지에 직접 인쇄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마리갤은 그렇게 탄생했다.
명화를 더 많은 사람이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원작을 마주했을 때의 감동을 종이 위에 최대한 온전히 옮기고 싶었던 집념, 그리고 좋은 품질의 예술을 부담 없는 가격으로 전하고 싶었던 오랜 연구가 모여 하나의 결과물이 되었다. 마리갤은 단순한 명화 포스터가 아니다. 20년 동안 인쇄를 연구하며 쌓아온 기술과, 누구나 일상 속에서 예술을 자연스럽게 누렸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작은 갤러리다.

집 안의 선반 위에, 책상 위에, 침대 옆에 가만히 세워두는 것만으로도 공간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가 누군가에게는 미술관에서 처음 원작을 마주했을 때의 감동처럼 오래 기억되는 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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