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소리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의 소리는 힘이다. 그분의 말씀은 움직일 수 없는 환경을 움직이게 하고 상황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예언적으로 분별하고 하나님이 드러내신 것을 선포하면, 그 말씀은 치유와 축사와 자유롭게 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성경은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시편 29:4절)라고 선포한다. ‘힘이 있다’라는 단어의 히브리 원어는 ‘코악(koakh)'인데, “힘, 세력, 강건함과 부”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 일이 일어난다. 막힌 것이 제거되고, 방해물이 멸해지고 축복이 풀어진다. 성경은 또한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이사야 30:31절)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선포하면, 어둠의 세력이 무너지고 사람과 땅이 구원을 받는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한복음 5:25절)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소리는 생명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기독교인의 삶에서 부수적인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한복음 10:27절)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기도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예언적인 삶의 방식을 개발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믿는 자의 삶의 일상적인 부분이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란 그분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을 연결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과 대화하고 그분이 우리와 대화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과 말하고 대화하며, 우리의 삶을 위한 그분의 뜻을 나타내기를 좋아하신다. 또한 우리의 소명을 막고 있는 장애물들을 우리가 극복하여 이 땅에 그분의 왕국을 세우도록 돕기 원하신다. 모든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듣기」중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일에 대한 종교적 대적
전환기는 다루기 힘든 연약한 때일 수 있다. 상황이 변하고 있을 때, 분별력 안에서 활동하는 것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하나님이 “새로운 계절”과 “새로운 시대”에 대해 말씀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옛 것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새 것을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대적으로 오는 축복을 놓칠 수 있다.
우리는 항상 변화를 대적하는 종교의 영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죽이고 이 땅에 하나님의 개혁의 새로운 움직임을 멈추게 했던 것은 종교의 영이었다. 종교의 영은 계속하여 능력이 없는 어떤 형태나 구조를 시도하여 사람들을 과거의 경험에 붙잡아 놓기를 바라며, 성령의 부어짐과 부흥 그리고 진리의 회복을 대적한다. 그것은 열정적인 기도와 기쁨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을 죽이고 변화를 일으키는 개척자들을 지치게 한다. 종교의 영은 하나님 음성의 역동적인 역할과 성령이 나타나는 능력을 축소하는 의식과 방법 또는 프로그램을 통해 거짓 위로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찾는다.
하나님의 왕국은, “옛 것은 버리고 새 것만 취하는 것“이 절대 아니라, ”어떻게 새 것을 적절하게 이전의 질서에 연결할 것인가?“이다. 하나님이 새 일을 하고 계신다. 그러나 그분은 그 새 일을 이전의 계절에 세워졌던 것 위에 세우신다. 하나님이 사도적 또는 예언적인 범위에서 새 일을 행하신다고 해서, 우리가 이신칭의(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의미-역자주)나 물세례, 거룩함과 치유, 성령 세례 또는 이전의 또 다른 하나님의 영의 회복에 대해 놓인 기초를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러한 각각의 운동은 새로운 것을 분별하는 데에 실패했다. 그렇다, 가톨릭은 개신교 개혁 때에 루터교를 핍박했지만, 루터교는 침례교를 핍박했다. 침례교는 감리교를 핍박했고, 감리교는 오순절교를 핍박했다. 각각의 회복 운동에서의 진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세우는 과정을 분별하지 못해서 이전의 운동에 의해 핍박을 받았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그분의 새로운 계시 안으로 전진하는 것을 막는 종교의 영을 분별하지 못했다.
---「세우기 위한 분별력」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