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사람의 입이 머리와 가슴 딱 중간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입은 머리와도 가까워야 하지만, 가슴과도 가까워야 한다는 생각을 해봤다. 현명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따뜻하게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부디 이 책이 머리와 입 사이, 그리고 가슴과 입 사이의 거리를 조금이나마 가깝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p.8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친구 아내는 가사를 담당하는 자신의 입장에서 친구의 말을 판단해, 당연히 남은 음식물을 버리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만약 친구가, “이거 한 숟가락만 먹고 그만 먹어야겠다. 아껴뒀다가 저녁에 다시 먹을 거니까 치우지 마”라고 조금 더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전달했다면, 본인이 사랑해 마지않는 돼지찌개의 결말을 알고 힘없이 주저앉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싶다.
--- p.18
생각이 많은 것은 득인데, 그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 것은 독이다. 가끔 정리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해독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본인의 머릿속 정보를 판화로 찍어서 상대방에게 똑같이 전달해준다는 생각으로 말한다. 이처럼 뭔가를 설명하거나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할 때는 구조화된 말하기 방식을 선택해보자. 설명의 달인까지는 못 되더라도, “이 친구, 말 좀 할 줄 아네”라는 칭찬 한마디 정도는 들을 수 있을 것이다.
--- p.41
“교육생이 진짜 많다는 게 얼마나 많다는 거냐?”
“가만있어 보자……. 음…… 대충 한 200명은 되는 거 같았어.”
“설문조사 결과가 역대급으로 잘 나왔다는 건 얼마나 잘 나왔다는 거냐?”
“그걸 내 입으로 꼭 말해야 되냐? 5점 만점에 4.6 점.”
여기까지 듣고 있던 친구는 뭔가 알아차렸다는 듯이 소주잔을 탁 내려놓고는, 황급히 내 말을 가로막는다.
“오늘은 내가 먼저 말할게.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은, 정확한 숫자로 말하라는 거지? ‘엄청’, ‘잘’, ‘매우’, ‘빨리’ 같은 게 애매모호하니까 숫자로 이야기하라고. 내가 알면서도 깜빡했네.”
--- p.45
“네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만, 아마 네가 ‘이해했지?’라고 말하는 순간 네 후배는 일종의 심리적인 부담감을 느꼈을 거야. 네 말 속에 ‘나는 제대로 설명했으니, 그걸 이해 못하면 네가 바보’라는 식의 전제가 깔려 있거든. 그 책임감 때문에 ‘아니요’, ‘모르겠는데요’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지는 거지. 또 네가 다그치듯이 몰아세우기도 했고, 오늘 처음 보는 나까지 옆에 있는데 모른다고 하기가 쉽지 않았을걸?”
--- p.87
‘당신은, 당신이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그 사람을 제대로 대접한 적이 있는가? 아니면, 단 한 번이라도 서비스직, 판매직, 아랫사람을 대할 때 존중하는 마음, 고마운 마음을 가진 적이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이 ‘네’라면,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해주기 바라고, 만약 ‘아니요’라면 ‘나오신 커피’ 말고, ‘나온 커피’를 그냥 잔말 말고 고맙게 마셔줬으면 좋겠다. “커피 나왔습니다”에 덧붙일 존댓말은 더 이상 없으니까 말이다.
--- p.100
반면, 위와 같이 ‘문제→해결책’의 순서로 말을 풀어내는 방식은 상대방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조금 더 설득력을 높일 수 있는 방식이다. 게다가 ‘네가 가지고 있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점에서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이야기에 더욱 빠져들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15초의 미학’이라 할 수 있는 광고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한민국 대표 잇몸약 ‘인사돌’ 광고를 생각해보자.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장면에서 꼭 주인공이 제대로 씹지 못하고 잇몸을 부여잡으며 아쉬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등장하는 광고 카피는 다음과 같다. “잇몸이 튼튼해야 맛있게 먹죠. 꼭꼭 씹는 행복, 인사돌.”
--- p.107
사람은 설득해야 하는 순간에 마음이 급해진다. 내가 원하는 목적을 지금 당장 달성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급한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상대방의 마음을 아주 서서히 공략해보자. 상대방에게 작은 승낙을 지속적으로 얻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큰 승낙을 이끌어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고 내 말에 서서히 젖어들다가, 결국 마지막 요구에 이렇게 답할 것이다. “Yes!”
--- p.125
이때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의견을 무조건 무시할 것이 아니라, 일단 첫마디를 긍정의 신호로 시작하는 YB 화법을 사용하면 좋다. YB 화법은 한마디로 ‘No, Because(안 돼, 왜냐하면)’가 아니라 ‘Yes, But(맞아, 그런데)’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도 있지만’, ‘그 점은 인정합니다만’ 등으로 우선은 상대방의 말을 먼저 인정한 다음에 내 의견을 펼치는 화법이다. 이 화법을 쓰면 내 의견에 대한 상대방의 수용도가 높아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p.173
운전할 때, 내 앞에서 깜빡이도 안 켜고 ‘칼치기’로 들어오는 차가 있다면 깜짝 놀라거나 사고가 날 수 있다. 끼어들 때는 반드시 깜빡이를 켜는 게 일종의 신호이자 예의다. 마찬가지로 사람 사이에서도 생면부지의 다른 사람 영역으로 들어갈 때는, 깜빡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어떠한 ‘시그널’이 필요하다. 그에 맞는 의사 표현을 하고,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생략하면 누군가를 놀라게 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기분을 상하게 만들 수도 있다.
--- p.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