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의는 대부분 시편 예배의 근원적인 배경으로 나타난다. 현대 시편 연구에 있어서도 제의적 배경(cultic setting)과 구조와 해석에 큰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는 비제의적이라는 견해도 대립되어 왔으나 실제 거의 그렇지 않음을 인정하는 터이다. 구약 학자들 중에는 만일 제의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지 않는 시가가 있다면, 그것의 존재를 부정해야 한다는 데까지 이른다. 1980년대 쿠엘은 제의 시편의 문헌적 배경을 연구하여 시편 전역에서의 제의가 세 그룹으로 나뉜다고 보고 한 바 있다.
첫째, 제의 그룹 가운데 총 62편이 뚜렷한(dominated) 제의 사상으로 함축되어 있다고 보았다. 시편 1, 2, 12, 14, 15, 20/21, 24, 29, 33, 44~48, 50, 58, 60, 65, 67, 68, 72, 74, 76, 78~83, 85, 87, 90, 93, 95~100, 102, 105, 107, 110, 112~114, 117, 124~126, 128, 129, 132~136, 147~150편.
둘째, 제의시로서 종교의 감정(sentiments)이 섞여 있는 그룹(kultisch-religiose mischgruppe)은 75편.
셋째, 제의 시편과는 무관하지만 기본적으로 종교(신앙)의 표현으로 이뤄진 그룹은 모두 13편으로써 6, 19:1~7, 38, 39, 41, 88, 91, 102, 120, 127, 131, 139, 143편(이 중 모빙켈은 127편, 솔로몬의 시만 제의 시편 그룹으로 취급함)을 범위로 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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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독자들에게는 교회공동체를 향한 시와 찬미의 권면이 낯설지 않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엡 5:19),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골 3:16) 부를 것을 요청한다. 오래된 것에 대해선 새롭게 갱신해야 하거니와 시편 기도와 찬양은 오늘의 교회공동체 안에서 회복되어야 할 중요한 영 성이다. 시편은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공동체의 기도이기도 하다. 이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선 다음의 3가지 과정들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시편에서의 기도가 개인적인 기도만 위해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까닭은 시편의 기도가 개인적인 자신만을 위한 생각으로 출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의 끈을 개인에게만 갖다 놓지 않는다. 시편에 기록된 일련의 기도들은 기독교 초기 단계에 정리되어진 낡고 진부한 것으로만 간과해서도 아니 된다. --- p.54
시편 저자들의 표현은 하나님의 법 준수를 행동 지침으로 수행하며 이스라엘을 번영으로 인도하는 지혜서 역할도 하고 있음에 즐거워한다. 이러한 찬송시들은 잠언과 욥기를 포함해 지혜문학의 윤리와 교훈까지 담고 있다. 시편은 그 저작 목적이 성전의 찬송가로 엮어진 것이기 때문에 성전의식(예배)에서 찬양하고, 성산에 계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기쁨을 표현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개인의 신앙적 정서 표현과 결합하여 고대 이스라엘의 제의를 가장 완전하고 능력 있게 실현한다. 백성들의 일상 중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민족축제(절기), 군 사적 행동은 신앙의 헌신과 함께 공동체에 널리 행해졌던 것이다. 이러한 행동과 신앙은 곧 노래로써 불러지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식 속에 예술적 요소를 지닌 함축된 스토리(구속사)의 형태라는 점에서 그 본질이 이방의 문학과는 달랐다. 함축이란 이미지, 상징, 비유, 감정적인 어휘 등 복합적인 의미의 사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시편에서 사용된 비유나 이미지의 묘사는 자연 속에서 겪는 흙냄새를 풍긴다. 이는 이스라엘이 시골 전경에서 생활하던 농경과 목동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또한 시편의 표현들은 군대적(정복과 방어) 용기와 영적인 의미에서 치르는 성전으로써 하나님을 찬양하였기에 독자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경험에 동참하며 그들 표현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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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공동체는 주전 15세기경 출애굽으로부터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면서 하나의 공동체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공동체는 셈족 가운데서도 히브리 민족이었으며, 민족의식뿐만 아니라 신앙의 공동체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를 살필 때, 좀 더 명백히 나타나기는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 처음으로 조직화되고 완전한 공동체를 이루었다. 곧 ‘12지파 동맹’이다. 이들의 공동체 의식은 첫째, 사회 환경적 동기(열악한 환경에서도 이방 문화로부터 히브리 민족의 순수성 보존) 둘째, 정치적 동기(외세 침입의 방비) 셋째, 종교적 동기이다. 세 번째의 중요한 목표는 여호와를 중심한 신앙공동체(출 19:3~6)로서의 유일신 신앙을 고수했는데, 이는 후손들을 통하여 전수되었던 선민의 신학사상이었다(신 6:21~23).
이러한 공동체 의식은 시편 가운데서 애가와 감사 표현에서, 어떤시편에선 그 주어가 복수로 나타나고 있다(시 44:7~8). 혹은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시 124:1, 129:1)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의 이름이 하나로 쓰이기도 한다. 이렇게 제의 중심의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순복하는 공동체요. 찬양하며 축복을 기다리는 공동체였다. 공동체적 성격이 두드러진 시편은 그 단락의 형식과 문법적인 면을 고려하여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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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신학을 서술함에 있어 몇 가지 난해한 점은 ① 연대적 불확실성 ② 감정의 과잉 ③ 신학체계의 미비로 간주할 수 있다. 더욱이 신화와 전승 문제가 계속 대두되어 오고 있으며 ‘라스 삼라’(Ras Shamra)에서 발굴된 우가리트 문서 원경을 통한 가나안의 종교 이해가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난해한 골짜기를 꿰뚫고 있는 시편 산맥의 정상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시편은 이스라엘의 신앙정신을 송두리째 반영하고 있다. 시편 독자들은 제의적 성격과 개인의 경건 사이에서 시편이 그것들을 일치시키며 양자 간에 적용함을 살필 수 있다. 예를 들면 많은 시들이 율법에 대한 사랑과 묵상(119편), 구속사의 재현(시 78; 105; 106편 등)과 찬양(시 145~150편)을 주제로 삼아 노래한다. 상술한 제유형상에서 볼 때 찬양시는 그 대상으로서의 심판을, 애원시는 그 주체로서의 인간을, 감사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관을, 제왕시는 메시아 기대와 종말 사상을 그리고 순례시는 시온과 성전관을 각각 암시해 주는 구실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저자들의 개인적 신앙이 공동체적인 성격을 띤 제의 안에 적용되며 선포의 역할로 입증하는 동시에 이러한 영적 주제가 후대 기독교 발전에 크게 기여할 기반을 세우고 있음에 일조한다. 본 장에서 여기에 근거하여 첫째, 논리적이고도 정적인 입장에서 둘째, 역사적이고도 동적인 입장에서 서술하려고 한다. 이는 시편 신학과 하나님의 섭리를 동시에 보여주는 상호 보완적인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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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속사역의 대상은 이처럼 세계의 [온 땅]과 [나라]와 [민족]과 역사의 모든 [언어]를 총망라한 것이다. 여기에는 일찍이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서 맺은 언약 체결의 조건성과도 상통한다. 하나님께선 아브라함과 더불어 큰 민족과 후손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셨다(창 12:1~3, 17:7).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아브라함 안에서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신 언약이다. 이 언약은 백성들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 아래 존재하며 지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순종이 따르고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간섭(주권)이 은혜의 토대가 된다. 이것이 시편 본문에 나오는 두 용어에서 모두 사용되었다. 곧 ‘모든 나라’와 ‘모든 족속’에 해당하는 대상이며 마태복음 28장에 선언된 선교의 지상명령(Great Commission)에서 절창을 이루게 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지키심과 동시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미래 구원을 내다보는 선교적 대 위임령에도 시편의 선교 메시지를 연결시키시는 것이다.
--- p.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