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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빨간 의자

작고 빨간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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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4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416쪽 | 436g | 133*200*21mm
ISBN13 9791187750512
ISBN10 1187750514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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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이 겨울날 저녁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천둥이 칠 때처럼 개들이 그렇게 미친 듯이 짖어댄 적도, 꾀꼬리 노랫소리가 그렇게 서쪽 멀리까지 퍼진 적도 없었다고. 바다 옆 이동식 주택에 사는 어느 집시 가족의 아이가 푸카맨이 창문으로 들어와 손도끼로 자신을 겨냥하며 다가오는 걸 틀림없이 보았다고.
--- p.16

그는 남자로부터 몬테네그로의 아름다운 풍경, 알프스에 비견할 만한 산세, 깊은 협곡, 산의 눈目이라고 불리는 빙하 호수, 허브가 가득 자라는 골짜기에 대해 들었다. 그곳에는 바위를 깎아내 만든 작은 교회와 수도원들이 있는데, 아일랜드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기도하러 오는 곳이라고 했다.
--- p.22

“그냥 부크라고 부르시면 됩니다.”남자는 망설이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부크는 그의 조국에서 남자아이에게 널리 사용되는 이름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아기를 계속 잃던 한 여인이 새로 태어난 아들에게 늑대를 뜻하는 부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기를 잡아먹는 마녀가 늑대 아이는 무서워서 잡아먹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 p.24

조금 취한 채 자리에 앉아 향수에 젖어 있던 모나는 가슴 위의 제비꽃 코르사주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어쩌면 그 사람이 우리에게 로맨스를 좀 가져다줄지도 모르겠네.”
--- p.30

다미엔 신부는 벌써 주교와 다른 신부들에게 보고할 말을 고른다. 그들은 두 개의 허파로 숨 쉰다는 이야기를 마음에 들어할 것이다. 지옥이 가톨릭에서는 공간의 개념이고 정교회에서는 신의 시야에서 배제된 영혼의 절망이라는 말에는 눈을 치켜뜰 테지만, 2차 바티칸 공의회가 비장의 카드가 될 것이다. 플라톤 이야기는 빼기로 했다. 열두 사도 옆에 안치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유해 이야기는 그들의 궁금증을 유발할 것이다.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도를 따르던 사도들이 타보르 산에서 본 것과 동일한 변모의 환영을 경험한 성인이었다.
--- p.48

피델마가 앉은 벤치 맞은편에는 수렁 같은 갈색 물이 흘렀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진한 자주색 물이 보였다. 물살이 휩쓸고 가는 길이 으레 그렇듯 항상 변하는 물길을 보는 동안에도 그녀 자신의 인생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똑같은 일상, 똑같은 바람, 똑같은 외로움.
--- p.65

피델마는 결혼 생활 중 두 번 임신했고, 잭은 그때마다 그녀에게 보석을 사주었다. 그러나 두 번 다 아이를 잃었고, 그게 자신의 잘못인 것 같아서 홀로 슬퍼했다. 어느 해 여름에는 잭이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해서 갔는데,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 탄생화가 보였다. 엄마와 아이가 고요한 표정으로 서로에게 밀착해 있는 모습을 풍부한 색채로 묘사한 그림을 본 후 뜨거운 거리로 다시 나오니 점심시간이라 상점들의 차양이 내려져 있었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뺨을 적시고 있었다.
--- p.66~67

나는 아일랜드에 가기로 결정했어요. 왜냐하면 톨킨을 좋아하거든요. 톨킨은 스코틀랜드, 뉴질랜드, 아일랜드를 좋아했대요. 나 영어 못해요. 체코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프랑스에서 레시피 가져왔고, 여기 음식도 몇 개 배웠어요. 스콘 같은 거요. 숲이 있어서 도시에서 여기로 왔어요. 나는 숲하고 강을 사랑해요. 얼마나 오래 있을지는 몰라요. 여러분, 나는 이 말을 하고 싶어요. 우리 좋은 친구들이지만 유니폼 입으면 다 변해요. 전쟁에서는 누가 내 형제인지 몰라요. 전쟁에서는 누가 내 친구인지 몰라요. 전쟁에서는 누구든 야만인이 돼요. 모든 걸 빼앗겼을 때 우리 각자의 마음에 뭐가 남을지 누가 알겠어요.
--- p.82

스칸디나비아의 고대 서사시에는 어떤 부족이 치명적인 버섯을 잘못 먹었는데 그 버섯이 정신 장애를 일으키고 본래의 감정을 빼앗았다는 내용이 있다. 그 부족은 미쳐갔고, 그들과 유대관계가 있던 왕자들조차 그들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방패를 물어뜯고 나무를 뿌리째 뽑았으며 주변의 모든 것을 도륙했다. 그들을 베르세르크라고 불렀다.
--- p.87

“당신을 체포합니다.”경찰의 말소리가 천둥처럼 울린다. 당신을 체포합니다. 그는 나무 한 그루에 기대어 균형을 잡고는, 자애로운 아버지가 실수한 아이에게 이야기하듯 가장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만약 자신이 해를 끼치려고 했다면 환한 대낮에 아이들 열다섯 명을 데리고 나오지는 않았을 거라고 항의한다. 그러려고 했다면 어두울 때 한 명을 자동차에 태워 납치했을 것이다.
--- p.92

우리는 형제였고, 어린 시절과 대학 시절에 절친이었으며,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조금은 경쟁적으로 숭배했지. 괴테와 무질도 사랑했지만, 셰익스피어야말로 우리의 신이었어. 너는 기질상 지독히도 대조적인 두 측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젊은 퇴를레스25라는 별명을 얻었지.
--- p.103

피델마가 커프스 단추와 깃을 조여주는 작은 단추 두 개를 채우자 블라드는 그녀에게 셔츠 자락을 바지 속으로, 그의 “사랑의 구슬”까지 밀어넣으라고 시키고, 그녀는 그렇게 한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고 팔로 얼굴을 가린다. 그 모습을 보고 그는 그녀가 얼마나 특별하게 아름다운지, 마치 정부로서 모든 매력을 지닌 백작부인 같다고 말한다.
--- p.131

늑대는 비틀거리다가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졌습니다. 와인보다 더 붉고 진한 피가 흘렀습니다. 아버지는 나에게 늑대가 죽어 있는 곳으로 걸어가라고 했어요. 늑대의 눈을, 옆구리를 들여다봐. 이제 만져봐라. 그러고는 내 손에 묻은 피를 핥아보게 했고 당신도 똑같이 했죠. 아버지가 내 이마에 전사의 표지를 그려주었어요. 그때 나는 죽이는 일의 신비로움에 첫발을 내딛게 된 겁니다. 알 것 같나요. 여자들에게 양육 본능이 있듯이, 남자들의 깊은 내면에는 죽이고자 하는 본능이 있어요.
--- p.134

나는 아이를 쓰다듬고, 거의 잡아먹고 싶었어요. 검지손가락을 내밀었더니 아이가 잡고 빨더군요. 그 아름다운, 다 이해한다는 듯한 미소를 계속 지으면서요. 여행 내내 그랬어요. 아이는 나를 쳐다보고, 나는 아이를 쳐다보고. 내가 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면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내 인생이 완전해질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 p.139

과수원에서 처음 피델마를 봤을 때, 그녀는 막 농익기 시작한 소녀였고 검고 짧은 머리와 매우 흰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얼굴과 표정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타고 온 기사들에게서 물려받은 거라고 말하곤 했다.
--- p.158

텔레비전에 한두 사람이 나와 그가 전사이자 시인이며, 역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한 신비주의적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별 볼일 없던 의사에서 그토록 바라던 세계적으로 유명한 악당이 되었고, 이제는 종족 살인과 인종 청소, 학살, 고문, 수용소 억류 및 수십만 명을 난민으로 만든 죄로 기소되어 덴하흐의 전범 재판소로 호송되는 중이었다.
--- p.178

권투 선수였던 그의 할아버지가 그를 발견하고는 케이지 격투기를 하는 곳으로 데려갔다. 팔각형 모양의 케이지에서 두 사람이 발가벗은 채 대치했다. 금지된 짓이라고는 서로의 눈알을 뽑는 것밖에 없었다. 시작하기 전에는 누구랑 싸우게 될지 몰라요. 그가 나보다 클까? 더 강할까? 더 거칠까? 케이지에 들어갈 때는 못되고 나쁜 모든 것을 가지고 가는 겁니다. 손과 발을 모두 써서. 그리고 40분이 지나면 이기건 지건 나쁜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자유로워집니다. 자유로워요.
--- p.235

작은 소녀가 말쑥하게 차려입고 발코니로 나왔다. 밑단 끝부분에 패드를 덧대어 부풀게 만든 라일락색 드레스와 핑크색 레깅스를 입고 검은 에나멜 구두를 신고 있었다. 피부는 밤껍질처럼 짙은 금빛이었다. 소녀에게는 완성된 느낌이 있었다. 눈과 앙증맞은 속눈썹, 작은 치아에, 청록색으로 칠한 손톱은 큐티클까지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 p.245

나히르는 조용히 시작했다. “전쟁은 로또 같아요…… 여러분이 여기 있게 된 건 수많은 행운의 결과예요…… 나는 매우 진지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오래된 카우보이 책만 읽어요. 이유 없이 많이 웃고요. 사람들이 나한테 돌을 던져도 같이 돌 던지지 않고 웃어요. 우리 나라에 살진 않지만 축구를 응원하고요. 나는 대건햄에 살고 여자친구는 옥스퍼드에 살아요. 한 달에 한 번 만나요.”
--- p.279~280

열세 살 무렵에 나는 내 머리가 너무 싫었어요. 한 친구가 약을 써보라고 권했어요. 욕실로 가서 문을 잠그고 해봤어요. 그랬더니 곧 머리가 초록색이 되면서 한 줌씩 뽑히는 거예요. 엄마한테 뛰어가서 머리가 다 빠졌다고 말했죠. 엄마가 ‘꼴 좋다’하면서 내양 볼을 세게 때렸어요. 엄마는 기분이 나빴던 거예요. 나는 항상 엄마가 날 원하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우리 나라의 문화가 그래요. 크고 강하게 자라서 먹을 것을 구해올 아들만을 원하죠.
--- p.235

엄마는 관목 숲에 들어가 나를 낳았어요. 내가 아들이길 바랐죠. 딸은 쓸모가 없거든요. 엄마는 처음부터 나를 박해했어요. 주술 치료사에게 데려가 진흙 냄비에 여러 가지를 끓여서 내 몸 전체에 문질렀어요. 그리고 면도칼로 몸에 악마가 나갈 구멍을 내고는 환호하며 말했어요. ‘이제 너는 나쁜 아이가 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엄마는 그후에도 나를 괴롭혔어요.
--- p.289

임신했을 때 딸이라는 걸 알았고 정말 딸이었어요. 딸은 처음부터 상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죠. 그애는 특별해요. 나를 돕고, 정돈도 하죠. 학교에서 그앤 뻔뻔스러운 여학생들한테 선생님께 예의를 지키고 말대꾸하지 말라고 하기도 해요.
--- p.291

그를 증오해요. 온갖 형벌을 다 가하고 싶어요. 목소리를 없애고 후두를 밖으로 꺼내서 마디마디 조르고 싶어요. 그 세 놈은 뭉개버리고 싶고. 나 자신과 내 몸도 증오스러워요. 폭력만이 그 폭력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증오가 내 심장을, 내 영혼과 내 존재를 가득 채우고 있어요. 생리를 할 때면 그 피로 얼굴을 닦고 싶어요. 더 더럽히고 싶어요. 보시다시피 나는 당연한 것과 당연하지 않은 것 사이의 모든 연결점을 잃었어요. 아까 그 방에서 다른 여자들 이야기도 들었지만, 나보다 훨씬 힘들고 고통스러운 운명들이라 감명 깊었지만, 나를 졸라매고 있는 이 증오를 떨쳐버릴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에요.
--- p.295

라라가 우리를 함께 쓰는 암컷과 수컷 개 한 쌍을 데리러 가자고 제안했고, 개들은 두번째 깜짝 산책에 행복하게 짖어댔다. 피델마는 기다란 주둥이를 움켜쥐고 입마개를 씌우는 법을 처음으로 배웠다. 그녀의 긴장이 초조해하는 개에게도 전해진다. “너무 느슨하게 잡아도 안 되고 너무 꽉 잡아도 안 돼요.”
들판으로 나오자 놀랍게도 개는 몸부림치거나 목줄을 당기지 않고, 어두운 담장 밖으로 나온 것만으로도 행복해한다.
--- p.305

우린 다른 사람들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수수께끼 같은 존재에요. 특히 가깝게 지낸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 알 수가 없어요. 습관이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하고 희망이 우리의 눈을 멀게 해서 진실을 볼 수 없죠. 쪽지를 남겼더군요. 나는 이제 매우 평온해라고 쓰여 있었어요.
--- p.326

우리는 책을 좋아하는 가족이었어. 책을 사랑했지만 곧 그것도 난로 옆에 줄 세웠고, 엄마와 삼촌은 어떤 책을 먼저 태우고 어떤 책을 끝까지 남겨둘지를 두고 싸웠어. 『일리아스』는 아름다운 초판본이었고 우리 서재의 자랑이었는데 그것도 갔지. 인간의 왕 아가멤논, 그리스 기사도의 꽃 네스토르, 검은 배들, 파트로클로스의 시신, 헬레나의 팔찌, 카산드라의 비명, 이 모든 것이 두세 번의 저녁 식사를 위해 불꽃으로 사라졌어. 삼촌은 마크 트웨인은 정말로 보내기 싫어했지……
--- p.343

다음 전시실에는 꽃들이 가득했다. 액자마다 백합이며 붓꽃이며 장미가 화병에 넘칠 듯이 잔뜩 꽂혀 있었는데, 어찌나 생생한지 곧 적갈색 줄기를 떠나 이리저리 날아다닐 것 같았다. 옆 전시실의 〈델프트 풍경〉은 앞에 앉아서 바라보면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침과 시작의 특징이 잘 드러난 그 그림에서 푸른 물은 그 자체로 깨끗하게 씻은 것 같았고, 물을 둘러싸고 있는 둥근 하늘도 매혹적인 푸른색이었다.
--- p.382

한 여인이 앞으로 나와 지휘하기 시작했는데, 풍부하면서도 부드러운 그녀의 목소리는 수난당한 사랑과 소속감의 기억으로 가득 차 짙은 와인빛 바다 같았다. 곧 다른 사람들도 따라 불렀고, 서른다섯 개의 언어가 하나 되어 솟구치는 초월적인 마니피캇90에 합류했다. 집. 집으로. 집으로 . 노랫소리가 점점 커지고 넘쳐흘렀다. 서까래와 벽을 넘어 가로등이 켜진 거리로, 시골의 습지와 들판으로, 묘지와 양들의 우리로, 놀라서 말을 잃은 숲으로, 쓸쓸한 사바나와 악취 흐르는 빈민가로, 바다를 지나 그 너머로, 그리운 곳으로 끝없이 울려 퍼졌다.
--- p.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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