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아방가르드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차이는 ‘단절’과 ‘반동’으로 단순 요약될 수 없다. 서구의 문화유산을 비롯해 전통적인 고급문화 형식 전반에 대한 식견을 갖추었던 급진적 아방가르드의 대표자들은,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위해 그 유산의 ‘폐기 처분’을 선택했다. 반면 스탈린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또 다른 급진성은 바로 그 전통적인 문화 형식을 공리적으로 ‘이용’하고자 했던 데에 있다. 아방가르드가 과거를 단호하게 폐기하려 했다면, 스탈린주의는 ‘부정의 부정’이라는 기묘한 변증법적 아이러니를 통해 그에 대한 합법적 사용 권리를 주장했던 것이다.
--- p.48
여기서 또다시 곱씹을 수밖에 없는 것은 아감벤이 말한 장난감의 시간, 저 이중적 시간성이다. “한때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닌”의 시간, 과거를 아예 없애버리거나 혹은 여전히 그에 붙들려 있는 대신에, 그것을 ‘다르게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의 마지막 질문은 여기에 걸려 있다. 만일 그것이 아감벤이 말하듯, ‘목적 없는 수단’의 잠재태적인 시간성이라면, 우리는 그와 같은 ‘아이들’의 시간을 여전히 ‘혁명’이라는 말로 지칭할 수 있을까? 신화의 무게와 권위로부터뿐만이 아니라 유토피아와 종말론의 핵심적 요체라 할 ‘목적’으로부터도 자유롭게 풀려나온 시간, 아이들의 저 ‘무위’의 시간성은 과연 혁명이라는 결정적 단절의 사건과 함께 갈 수 있는 것일까?
--- p.55
1920년대 모스크바의 극장은 단지 무대가 아니라 ‘새로운 세기와 새로운 인간’의 윤곽이 제시되는 장소였다. 소위 ‘혁명적 예술’이란 무엇이며, 또 어떠해야 하는지를 시험하기 위한 가장 생생하고 격렬한 현장이 바로 연극 무대였다. “극장의 10월”이라는 메이예르홀트의 슬로건이 잘 보여주는바, 1920년대 러시아에서 무대 위의 혁명과 거리의 혁명은 함께 가야만 하는 필연적인 과정으로 여겨졌다. […] 인류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국가에 방문한 벤야민은 혁명의 무대 위에서 무엇을 보았고, 또 어떤 생각을 했을까? 수세기에 걸친 연극의 관례들을 ‘혁명’하는 일과, 연극을 포함한 삶의 조건 자체를 총체적으로 변혁하는 일 사이에서 그가 고민했던 선택지는 무엇이었을까?
--- p.60
모스크바의 극장에서 벤야민의 시선이 끊임없이 무대가 아닌 관객석을 향하고 있음은 이제 더 이상 놀랍지 않다. 그가 보고 있고 애초부터 보고 싶어 했던 것은 혁명적 아방가르드의 놀라운 예술적 성취가 아니다. 그가 확인하고자 했던 것은 그것 너머, 그것 다음의 풍경이다. 그다음의 풍경은,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물음들을 둘러싸고 펼쳐진다. 과격하고 진보적인 ‘예술의 혁명,’ 그 실험적 시도 이후엔 무엇이 오는가? ‘예술 속의 혁명’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것’ 자체의 기능과 조건이 혁명적으로 달라져버린 세계에서, 예술가와 비평가, 저널리스트와 지식인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가? 예술 ‘형식’의 혁명을 넘어선 예술 ‘생산’의 관계와 조건 자체의 변혁은 어떻게 발생하며, 또 그 결과는 무엇인가?
--- p.94
분명한 사실 하나는 벤야민의 행보가 일반적인 ‘소비에트 방문객’의 예를 따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신념에 찬 볼셰비키로서 러시아에 왔다가 왕당파가 되어 그곳을 떠나는” 행보. 아서 쾨슬러나 앙드레 지드가 거쳐 갔던 저 환멸의 행보를, 벤야민은 되밟지 않았다. 어떤 점에서 그는 반대 반향으로 움직여 갔던바, 모스크바에서 그토록 우유부단했던 벤야민은 이제 놀랄 만큼 단호하고 명료한 어조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우라에서 해방된 ‘대중’의 잠재력과 투쟁하고 개입하는 ‘생산자로서의 작가’에 관하여.
--- p.97
벤야민의 이 거꾸로 된 행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다시 꼼꼼하게 되짚어보아야만 한다. 당연히 귀국 후 급속도로 가까워진 브레히트와의 관계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과거를 재구(再構)하는 우리의 시선은 훨씬 더 포괄적이어야 한다. 두 사람 사이의 숨겨진 고리였던 세르게이 트레치야코프의 이야기, 무엇보다 “팍투라에서 팩토그래피로”라는 공식으로 흔히 지칭되는 소비에트 아방가르드 자체의 내적 변환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 모스크바의 유산을 벤야민의 또 다른 중대한 기획과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 신경감응을 요체로 한 ‘집단적 신체’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공산주의 바깥의 공산주의적 시도, 초현실주의가 그것이다.
--- p.97~98
이 모든 사실들을 앞에 두고, 익숙한 환멸의 서사를 구축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식으로. 벤야민은 애초 공산당에 가입할 생각으로 러시아에 왔지만, 그가 목도한 현실은 온통 퇴행적 징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결국 당대의 수많은 서구 지식인 예술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환멸을 느끼며 소비에트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이런 전형적인 서사에 동의하는 순간 우리는 곧바로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어떤 문제인가? 모스크바 이후 벤야민이 걸어간 길과, 그 과정에서 남긴 저술들이 이 서사를 통해 온전히 해명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그것이다.
--- p.108
‘사실의 문학’이나 ‘팩토그래피’라는 용어에서 받게 되는 일차적인 느낌은 ‘팩트,’ 즉 사실을 향한 강한 지향이다. 원어인 팍토그라피아 자체가 ‘사실(facto)’의 ‘기입(graphia)’이라는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바, 결국 이는 다큐멘터리즘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외적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팩토그래피와 전통적 의미의 다큐멘터리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최대한의 객관적인 현실 묘사라는 후자의 원칙은 팩토그래피의 지향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팩토그래피의 목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현실을 적극적으로 변형시키는 데 있었다. 훗날 트레티야코프가 ‘작동적’ 모델이라 부르게 될 이런 개입적 실천의 전략에는 다큐멘터리의 객관주의가 자리할 곳이 없다.
--- p.145~146
러시아 정교 철학자로서 도서관 사서로 근무했던 니콜라이 표도로프는 인류와 우주를 둘러싼 실로 평범하지 않은 생각들을 내놓았다. 표도로프의 독트린을 집약하는 ‘공통 과제의 철학’의 핵심은 ‘모두를 위한 불멸’이라는 개념에 놓여 있다. 간단히 말해 공통의 과제는 ‘기술적 수단을 통한 인간 불멸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두 가지 과제를 포함하는데, 첫째는 모든 인류의 조상들을 물리적으로 부활시키는 일이다. […] 두번째 과제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항성과 행성을 정복하여 식민지로 만드는 일이다.
--- p.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