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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의 삶

그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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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28쪽 | 538g | 140*210*21mm
ISBN13 9788954686594
ISBN10 8954686591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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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시골로 행군해 들어갔고, 열기가 오르며 태양이 목과 어깨를 옥죄고 얼굴에서 땀이 쏟아져 등으로 흘러내리자 함자는 다시 불안해졌다. 그는 충동적으로 자원했다.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은 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어디에 몸을 판 것인지, 이곳의 요구에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지 몰랐다. 함께 지내기로 한 사람들이 어떤 자들인지 몰랐던 것은 아니다. 아스카리 군대인 슈츠트루페에 대해서, 또한 그들이 보이는 사나움에 관해서는 모두가 알았다. 그들을 이끄는, 마음이 돌덩이 같은 독일 장교들에 대해 모두가 알았다. 함자는 도망치기 위해 그들의 병사가 되기로 했다. 달아오른 한낮에 지쳐서 땀을 흘리며 흙길을 나아가는 동안, 함자는 자신이 저지른 짓 때문에 불안감이 너무도 강렬하게 치솟아 간혹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 p.84

당시 이 세계의 그 지역은 그런 이름으로 불렸다. 세상의 이 지역은 전부 유럽인의 것이었다. 최소한 지도에서는 그랬다. 영국령 동아프리카, 독일령 동아프리카, 포르투갈령 동아프리카, 벨기에령 콩고.
--- p.136

전투와 질병, 탈영으로 병사와 짐꾼들을 잃기는 했지만, 슈츠트루페의 장교들은 광기어린 고집과 끈기로 계속 싸웠다. 아스카리는 땅을 황폐하게 했고,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을 수십만 명씩 굶겨 죽였다. 그러면서 자신들로서는 기원조차 알 수 없는 공허한 야망이자 결국 그들을 지배할 목적이었던 명분을 맹목적으로, 살인적으로 끌어안고 계속 분투했다. 짐꾼들은 말라리아와 이질, 탈진으로 여럿씩 죽어나갔다. 아무도 굳이 그 사람들의 숫자를 세지 않았다.
--- p.142

이제 아피야는 더이상 소녀가 아니라 키자나, 아가씨였다. 그녀는 여성의 격리된 삶에 따라오는 무한한 분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 아피야는 마음속에서 뭔가가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 꾸지람을 당하기만 기다리는 것처럼 불안해졌다. 이제는 부적절한 일, 그녀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아졌다. 아피야는 인사를 할 때조차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남자의 손을 건드려서는 안 되었다. 상대가 먼저 말을 걸어올 때, 그리고 그 사람이 아는 사람일 때를 제외하면 남자와 말을 해서는 안 되었다. 모르는 사람을 보고 미소 지어서도 안 됐고, 우연히 시선이 마주치지 않도록 눈을 살짝 내리깔고 걸어야 했다.
--- p.156~157

함자는 열린 창문 너머로 무화과나무 일부와 선교사의 집 일부를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아침에는 작은 연녹색 왜가리가 꼼짝도 하지 않고 지붕 위에 오랫동안 서 있다가, 함자로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떠나는 모습이 보였다. 왜 그런지는 몰랐지만 꼼짝도 하지 않고 지붕에 서 있는 왜가리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슬픔으로 가득찼다. 너무도 외로워졌다.
--- p.188

그는 어둠 속에, 맨바닥에 오랫동안 누워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마음이 이 마을에서 보낸 인생 초기와 지금까지 잃은 모든 사람들, 그가 겪어온 치욕을 떠돌아다녔다. 함자는 자기 몫의 치욕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가 인생 초기에 이 마을에서 살며 저지른 최악의 실수는 치욕을 두려워한 결과로 생겨난 것이었다. 그 실수로 함자는 형제와도 같았던 친구와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던 여자를 잃었다. 전쟁은 함자에게서 그런 것들을 샅샅이 앗아갔고, 그에게 아찔한 잔혹성을 보여주며 겸손을 가르쳐주었다. 이런 생각이 함자를 슬픔으로 가득 채웠다. 함자는 그 슬픔이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 p.236~237

짧은 순간, 함자는 얼굴과 눈에 정직함이라는 깨끗한 모습이 어려 있는 자그마한 사람을 보았다. 달리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이 본 모습이 바로 정직함임을 알았다. 그 눈빛을 보자 함자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스스로가 안쓰럽게 느껴졌고, 사랑 없는 그 자신의 인생 몇 년과 그 사이사이에 경험했던 너무도 짧은 온화한 순간들이 슬프게 느껴졌다.
--- p.254

행운은 절대 영원하지 않아. 좋은 순간이 얼마나 오래갈지, 또 언제 올지 항상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인생은 후회로 가득해. 자네는 좋은 순간들을 인정하고 그에 감사하며 확신을 가지고 행동해야 하네. 운을 시험해봐.
--- p.3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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