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악마가 대결하는 이 이야기는 사실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는 이 광야 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그 안에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유심히 살펴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에 우리의 운명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싸우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마음의 거울”(마르틴 루터)일 뿐 아니라 우리 마음의 거울(빌 2:7)이기도 하다.
---「서곡: 빵, 성전 꼭대기, 광야의 모래 속에서 반짝이는 나라들
하나님에게서 벗어나려는 욕망은 인간의 가장 깊은 갈망이다. 그 갈망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보다 더 크다. 그렇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 속에도, 경건한 신앙생활 속에도, 조심스레 입에 올리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도, 하여튼 이 모든 것 속에 하나님에 대한 냉정한 거부, 하나님에게서 벗어나려는 욕망이 깃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서곡: 빵, 성전 꼭대기, 광야의 모래 속에서 반짝이는 나라들
이 세상은 하나님과 그분의 원수 사이에 있다. 그런데 언제라도 원수 편으로 뛰어들 태세다.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비밀이다. 이것이 시험의 시간이다. 이것이 땅의 시간이요 이 세대의 시간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으로 인해 죽으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십자가는 영원과 시간 사이의 경계선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세상은 그 ‘십자 교차로에서’ 맞닥뜨린다. 이것이 진리다. 다른 신들의 형상과 화상은 모두 거짓이다.
---「서곡: 빵, 성전 꼭대기, 광야의 모래 속에서 반짝이는 나라들」중에서
결국 인류의 타락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신비로운 유혹의 힘을 지닌 사과가 아니다. 인간 외에 누가 책임을 질 수 있겠는가? 낙원에서 인간이 타락하는 순간에 진짜 문제는 사과가 아니라 인간이었다. 스스로 신처럼 되려는 인간의 탐욕이 문제였다. 하나님의 순전한 모상이자 하나님과 같은 ‘형상’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동등한 ‘지위’를 차지하려는 과도한 욕심이 재앙을 가져왔다.
---「서곡: 빵, 성전 꼭대기, 광야의 모래 속에서 반짝이는 나라들」중에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예수의 첫 번째 시험에서 배우게 된다. 시험은 생각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구체적인 현실에서 생각이 나온다. 하나의 현실, 곧 배고픔의 현실에서 우리를 언제든 시험에 들게 만드는 생각이 나오는 것이다. 배고픔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현실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가, 아니면 그 관계가 깨졌는가?’를 판가름하는 현실이다.
---「첫 번째 시험: 굶주림의 현실」중에서
예수께서 악마에게 맞서 내세운 말씀이 더 큰 권위를 가지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이유는, 그 말씀이 예수 자신에게도 권위 자체이고 예수 자신도 그 권위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자’(엡 3:1)로서 그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려 있을 때만, 그만큼만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말씀을 제멋대로 ‘이용’하면서 어떤 영리한 목적을 가지고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면(마 7:21 이하), 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악마의 말이 된다.
---「두 번째 시험: 자기과시의 부추김」중에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이 되셨다. 그분이 우리를 대신하여, 그러나 우리와 함께, 우리의 형제이자 동료로서 악의 세력에게 공격을 당하신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그토록 무방비 상태로 보이실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드러내는 신비다. 그분이 왜 십자가에서 그렇게 저항도 없이, 원망도 없이 원수들에게 자기를 내어 주시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셨는지를 드러내는 신비다. 이것이 그분이 광야에서 모든 권세와 왕국들을 거부하실 수 있었던 신비다. 그분의 무방비함은 그분이 받은 사명의 가장 심오한 본질이다.
---「세 번째 시험: 예수의 이 세상 나라」중에서
주님이시면서 형제, 왕이시면서 동행자, 다스리시면서 함께 고통당하시는 분. 이것이 구원자 예수의 드높은 기적이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우리 위에 드리워진 하늘 아래서 살아가듯이, 우리는 바로 그 기적 아래서 살아간다. 우리는 그 기적의 이름으로 살아간다. 예수, 우리의 구원자, 우리의 형제! 그 기적이 우리에게 평화를 선물한다. 모든 생각을 뛰어넘는 높고 높은 평화!
---「에필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