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라는 범주, 개념 하에서 중국영화를 다뤄보는 건 어떨까. ‘동아시아’라는 용어가 주는 묘한 동질성과 매력이 분명 있는 것 같다. 한, 중, 일은 흔히 동아시아 국가로 분류된다. 과거에는 극동이라는 표현도 자주 썼지만 최근에는 이 동아시아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것 같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아시아란 지정학적으로 유라시아 지역에 있는 아시아 동부지역을 일컫는다. 즉 국가적으로는 한국, 일본, 북한, 중국, 홍콩, 대만, 몽골까지를 포함한다. 자, 그렇다면 동아시아 영화란 일차적으로 이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영화를 뜻한다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동아시아 영화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상기한 각 국가의 영화를 대상으로 예컨대 장르별, 감독별, 혹은 다양한 주제를 따라가며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작업을 제대로 해내는 것은 생각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다. 왜 그럴까.
영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은 각 해당 국가의 역사와 문화, 사회 특징 등 다양한 정보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가령 영화 속의 어떤 행위나 대사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에 바탕을 둔 것일 수 있지만, 반대로 그것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어떤 특정한 의미를 표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해당국가의 정치, 사회, 역사, 문화적 배경 하에서 요컨대 그 나라 사람이 아니고서는, 혹은 그러한 배경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면 좀처럼 캐치할 수 없는 부분이 상당히 존재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러한 복잡 다양한 배경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보아낼 수 없는 경우라면 상당한 장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이고, 애를 쓴다고는 해도 피상적 수준의 관찰에 그칠 확률이 크다. 우리가 잘 모르는 국가, 민족일수록 더욱 그러할 것이다.
중국, 일본은 우리 한국과 더불어 동아시아 3국이라는 범주로 자주 분류된다. 그리고 그간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어느 정도는 서로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실제적으로도 중국, 일본 영화는 비교적 많이, 그리고 쉽게 접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일본, 중국영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걸까. 누군가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쉽게 답하기 힘들 것이다. 우선 중국을 살펴보자. 중국은 엄청나게 넓고 또 깊은 역사를 가진 나라이고 그만큼 다양한 문화적 코드를 보유한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수십 년 우리와는 단절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홍콩, 대만까지를 포함한다면 몹시 복잡한 정치, 사회적 배경을 두르고 있기도 하다. 예컨대 중국영화라는 용어부터가 간단치 않다. 즉 사회주의 중국뿐 아니라 대만, 홍콩, 나아가 화교권의 영화까지를 포괄하고자 한다면 중화권 영화라는 명칭이 좀 더 적절할 것이다. 일본은 어떤가. 몇몇 대가들과 인기 있는 젊은 감독의 영화 몇 편이 비교적 잘 알려져 있을 뿐, 일본 영화의 구체적 면모, 영화의 수용과정, 나아가 일본의 근, 현대에 대해서 여전히 잘 알지 못한다.
다른 나라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일본의 영화를 읽고 다루기 위해서는 특히나 일본의 근대에 대하여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주지하듯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였다. 일본은 영화라는 서구의 발명품을 근대화 과정에서 열정적으로 받아들였고, 자신들의 문화로 흡수하였으며, 그들만의 새로운 장르로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2차대전이 있었고, 전후의 복잡한 사회변화를 거쳐 경제대국의 길을 걸었다. 요컨대 일본의 근현대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없다면 일본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 역시 쉽지 않은 것이다.
다음으로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동아시아’라는 개념이다. 주지하듯 한동안 동아시아 담론이 상당히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가 있었다. 가령 탈근대, 탈식민, 탈제국 등등의 어젠다를 다루면서 동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제반 문제들을 공통의 분모 하에서 다루는 작업들이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지금 역시도 그러한 방법론은 일정 부분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정치, 경제적 측면은 물론, 문화, 지역학에 이르기까지 그 적용 범위는 실로 광범위하다. 대체로 우리 한국에서는 동아시아 여러 국가 간의 적극적인 연대, 교류 및 협력 속에서 서구 중심의 식민지 체재와 냉전 체제의 극복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결국 동아시아 담론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동아시아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반성, 나아가 발전적인 미래에 대한 모색의 필요성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앞서도 보았듯이 이 동아시아란 개념이 상당히 모호하다는 문제가 있다. 앞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동아시아는 지리, 역사, 정치, 문화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사용자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게 체현될 수 있으며, 특정한 맥락 위에서 유동적이며 가변적인 개념일 수 있다. 그러므로 동아시아를 어떻게 사유해야 좀 더 객관적이고 총체적인지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조금 더 논의를 이어보자.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을 넓은 범위로 동아시아인이라고 한다면, 우리를 제외한 다른 국가들의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이질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해야 할까. 물론 우리는 그 안에서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공유하는 공통된 주제와 동질성을 제시할 수 있고, 그를 통해 ‘동아시아인’이라는 개념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경우에 따라 지나친 도식화나 끼워 맞추기식의 분석이 될 위험도 분명 존재한다. 또 한가지를 언급하자면, 이 동아시아라는 개념 자체가 종종 서구와의 관계에서 설정되고 설명되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러한 난제는 바꿔 말하자면 ‘동아시아’에 대한 개념, 혹은 범주뿐만 아니라 좀 더 넓은 ‘아시아’를 거론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요컨대 동아시아라는 것의 개념화, 대상화, 내재화 등은 결코 생각처럼 한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고 실로 복잡다양하다는 말이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우리는 동아시아 영화, 또 중국(중화권)영화를 어떻게 대상화 하고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읽어낼 것인가, 나아가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물론 쉽지 않고 또한 간단치 않다. 다만 우리가 목표할 수 있는 것, 또한 지향해야 할 지점만은 분명히 상정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주요하게는 중국의 영화를 다루되, 최대한 대륙, 대만, 홍콩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함께 보면서 영화와 감독을 읽어낼 것이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 그리고 기타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의 비교의 관점을 적용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결코 우열의 가름이나 또한 단순하게 객관적 면모만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적극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실천적 과제를 상정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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