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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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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262g | 140*210*10mm
ISBN13 9788954686877
ISBN10 895468687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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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피라미드는 권력입니다, 폐하. 억압이요, 힘이요, 부이지요. 동시에 군중을 지배하고 그 정신을 우매화하고 의지를 꺾어놓는 무엇이며, 단조로움이요 소모입니다. 그러니까 지존이시여, 그건 폐하의 가장 든든한 보초입니다. 폐하의 비밀경찰이지요. 폐하의 군대고, 함대이고, 하렘입니다. 그 높이가 더해갈수록 그 그늘에 자리한 폐하의 백성은 미미한 존재로 보일 겁니다. 그 백성이 작아질수록 폐하의 위풍당당한 자태가 더욱 돋보일 테지요.”
--- p.16~17

과거에도 피라미드를 만들어왔지만, 기억하건대 이와 유사한 정신적 마비와 당혹감을 불러일으켰던 적은 없었다. 처형에 대한 공포와 피로, 채석장으로 보내질 수도 있다는 걱정만이 그런 낙담을 초래한 건 아니었다. 이 나라 전역에 불길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 p.57

그들의 구상대로라면 안치소는 일종의 갑문이었고, 그곳을 통과해 피라미드는 깊디깊은 암흑세계와 소통할 수 있을 것이었다. 말하자면 피라미드의 뿌리며 피라미드를 땅에 정박시키는 닻이었다.
--- p.62

그들은 피라미드가 지나치게 높아서 하늘을 건드려 흠집이나 상처를 낼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고 보라고. 이제 우린 어쩌지! 어디로 숨지?”
--- p.67

모래와 풍문, 이것이 이집트다. 아버지 스네프루가 임종 직전 그에게 말했었다. 그것들을 지배하면 넌 이 나라를 지배할 거다. 나머지는 모두 허상에 불과해.
--- p.80

공식적인 발표대로라면 이번 수사가 밝혀내야 할 수수께끼의 열쇠는 피라미드 내부에 있었다. 축의 오른쪽, 백번째와 백세번째 단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지점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돌들이 들러붙어 있는 곳, 인간의 이성으로도 실성으로도 감지할 수 없는 무한한 고통이 자리한 곳이었다.
--- p.100

저마다 수수께끼가 지닌 양면성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수수께끼는 돌들을 보호막처럼 덮어쓴 채 바로 곁에 있었다. 이 세상도 저세상도 아닌 두 세상 모두에 속한, 무덤 속에 산 채로 매장된 생명체 같았다.
--- p.101

아무리 넋이 나가 있었어도 사람들은 분명히 알았다. 피라미드는 천상의 종자나 빛을 빨아들인다기보다 이집트를 통째로 먹어치우는 무엇이라는 것을. 이미 세워질 때부터 피라미드는 이집트를 집어삼켰고, 이제는 반추하는 물소처럼 삼킨 걸 되씹고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 p.108

이제는 어느 것이 진짜 피라미드이고 어느 것이 그 환영에 불과한지 그들 자신조차 알 수 없었다. 둘 중 누가 누구를 낳았는지 알 수 없었고,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때때로 밀랍으로 된 그 모조품을 바라보노라면 정맥 속 피가 얼어붙고 금세라도 울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양쪽이 다투어 불길함을 과시하는 듯했고, 하나는 눈에 보이고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지만 그렇게 둘이 쌍둥이로 태어난 게 아닌가 싶었다.
--- p.115

쿠푸는 마법사가 말하는 내용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으나 정신이 흐트러졌다. 어느 순간 그가 중얼댔다. “내가 스스로 내 소멸을 준비한 거로군.” 하지만 마법사는 이 말에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 p.121

기다리던 미라를 받아 모신 피라미드는 성취감으로 충만해 보였다. 무수한 인간의 운명을 뒤집어놓았고 무수한 머리를 먹어치운 그것이 이제 도도하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햇빛을 받으며 반짝이고 있었다.
--- p.124

‘덧없음’의 개념은 보다 무겁게 들리는 ‘완전한 소멸’의 개념과 상통한다. 여전히 윤곽이 잡히지 않는 이 모호한 생각이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한 채 주저주저 여기저기서 응축되어 나타났다. 이집트가 피라미드들 없이 살 수 있을까? 피라미드들도 사라질 수 있을까? 이 공간이 끔찍한 혹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 p.144

“시간이야.” 그는 기진맥진해서 벽 아래로 쓰러지며 중얼댔다. “너를 지상에서 쓸어낼 수 있는 건 시간뿐이야!”
--- p.151

그 진정한 첫번째 화신. 피라미드는 거울을 통해 이미지를 반사하듯 아득히 먼 곳, 다른 시대에 제 화신을 던져놓았다. 아시아의 한 오지인 이스파한 인근 대초원에서, ‘절름발이 티무르’라는 절대군주가 쿠푸처럼 피라미드를 세웠다. 사람들의 머리통을 잘라 만든 것이었지만, 돌로 쌓은 피라미드와 자매인 듯 흡사했다.
--- p.155

그는 필름을 현상액에서 꺼냈다가 다시 담갔다. 천 년, 이천 년, 사천 년의 깊이 속으로…… 하지만 필름을 다시 꺼내보아도 긁힌 자국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필름 자체의 결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핏자국이었다. 어떤 물, 어떤 용액으로도 지울 수 없는.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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