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사랑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지금까지의 그 크시고 놀라운 은총들의 세월에 놀라고 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였습니다. 평생(90년)을 돌아볼 때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은총이 한이 없습니다. 분에 넘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였습니다. 그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의 연속이셨습니다. 구사일생(九死一生)이 아니라, 아니 십(十) 구사일생(九死一生)도 더 됩니다. 그보다도 더한 것은 그 은총에 대한 터득성(攄得性)입니다. 즉, 어느 정도의 인생 문제에 자유함을 주신 능력입니다. 그 자유함 안에서의 깨달음은 대물 관계, 대인 관계, 자아에 대한 구체적인 조명(照明), 죽음에 대한 구체적인 기다림 등입니다. 그것은 이 생명을 어찌 투자해야 하는가의 사명의식(使命意識)에 대한 지각(知覺)의 터득(攄得)입니다. 그 크시고 한이 없으신 구속(救贖)과 축복과 충만을 인하여 감격과 행복 중에 존재하게 된 생명을 어찌 섬기고 돌아가야 할 것인가의 간절한 열망 중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 생명의 본질이 사랑입니다. 하여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는 생명체입니다.
최고 최대의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 왕의 고백에,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 1:14)라고 하는 그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전도서인데,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3~14)라는 결론을 나 자신의 세월에서 어느 정도 확인하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 다시 또다시 회고(回顧)해도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 였습니다. 이 한없는 은총과 축복을 되돌아보면서 그저 감읍(感泣)할 따름이요 그 무엇이든지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도 허락하시고 역사하셔야 될 일이지만 그 사상(思想)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합니다. 주의 일에 동참하는 고난은 행복 그 자체요 인생의 존재 의미의 극치(極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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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세가 되니 죽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만일 사람이 죽지 않는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어찌하여 죽음을 주셨겠습니까? 하나님은 잘못을 행하실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죽음은 우리 인생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신 은총(恩寵)의 순리입니다. 육신의 죽음이나 영적 죽음은 인생 자신이 뿌린 씨에 대한 결과입니다. 여기에 인생과 죽음에 대한 오묘(奧妙)함이 있습니다. 자아(自我) 자존(自存)의 실체(實體)는 외적 생명이 아닌 내적 생명입니다. 하여 내적 생명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당연하게 감사하게 된 존재적 해답입니다.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사는 길입니다. 그리고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주시고 죽으시고 다시 사시고 우리의 운명을 끝까지, 영원까지 책임져 주신 우리 하나님을 위하여, 나도 그 은총에 감사 감격하고, 나의 전 존재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당연하게 투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게 된 것은, 그 헌신과 투자의 정도에 따라 죽음에 대한 문제에 대처하는 자신감과 능력의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스데반의 죽음(순교)에서 확인된 것 같이 확신에 찬 사람은 그 얼굴(죽음)이 오히려 천사와 같이 빛나는 것입니다. 구주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육적 생명이 삶의 중심인 사람은 죽음 앞에서 많이 후회하고 통탄(痛歎)하게 되나, 그러나 그런 사람까지도 천국으로 영접함을 받을 것입니다 ─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 3:12~15). 그러나 상급은 없습니다. 불 가운데서 얻어진 구원이 될 것입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6~8).
인생에 있어서 아니 자신에게 죽음은 최후 최대의 사건입니다. 이런 중차대한 사건을, 두려워하고 고민을 하면서도 그 중압감에 평생을 시달리면서도, 그 대책은 생각하지 않은 인생이여! 자아(自我)여! 무지(無地)여! 그리고 통탄(痛歎)이여! 그 문제 해결을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멸망(죽음)하지 않는 방법, 죽음 문제의 해결 방법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일입니다. 그리고 믿음에 굳게 서서 구원에 감격하여 전(全) 존재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아버지를 위하여, 그 영원한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 로 드리는 삶입니다. 이는 보상이나 어떤 기대 심리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무한한 은총이 터득(攄得)된 자들의 천국인(天國人)의 생명이요 생존의 충만입니다. 이는 죽음을 초월한 천국인의 무한한 자유의 증언들입니다. 아멘.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