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빛
한 아이가 길에서 버려진 꽃 한 송이를 주웠다. 누나가 좋아하는 장미, 누나는 한참이나 향기를 맡으며 붉으레한 볼로 쓰다듬었다. 누나는 청맹과니였다.
마음이 믿음에 흔들리지 않으면 고요함에 들 수 있고 고요함으로 지혜에 들면 내면에서 한울의 빛이 스스로 올라와 형체 없는 한울을 보며 형체 있는 한울도 보게 된다.
〈대종정의 : 오교의 요지〉
누나를 생각하고 아이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버려진 장미를 떠올립니다. 모두 귀한 존재들이지요.
--- 「마음」 중에서
인간 세상에 최고는 무엇일까? 따뜻한 감정이다. 이 감정이 있어서 인간은 서로 감응하는 것이다.
마음이란 것은 허령의 그릇이요 화복의 근원이니, 공적 일과 사적 일 상관없이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것이 여기 달려 있느니라.
〈해월법설 : 강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살면서 맺어지는 관계망 속에서 살아간다. 살면서 나는 어디에 기준 점을 둘 것인가? 따뜻한 감정이 있어야 한다. 결코 변하지 않는 인간미, 뭐 그런 것.
--- 「순일한 감정」 중에서
거기, 생명의 숨결
나뭇가지에 왕사마귀 집이 덩그렇게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알들이 보내는 인내의 시간. 처연하게 매달려 있는 알집마다 봄빛이 그립답니다.
아홉길 조산할 때 그 마음 오죽할까. 다른 날 다시 보니 한 소쿠리 더 했으면 여한없이 이룰 공을 어찌 이리 불급한고.
〈용담유사 : 흥비가〉
견디는 중에 다듬어집니다. 견디는 중에 좋은 소식이 찾아오는 법. 식물도 그렇고 동물도 그렇습니다. 견디는 중에 생명체는 단단해집니다.
--- 「생명」 중에서
나무는 자신을 스스로 치유합니다. 누구를 탓하지 않고요.
일일시시 먹는 음식 성경이자 지켜내어 한울님을 공경하면 자아시 있던 신병 물약자효 아닐런가.
〈용담유사 : 권학가〉
모든 생명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다만 계절을 거스르고, 순리를 어기면 치유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을 뿐.
--- 「스스로 택한 선택지」 중에서
자연의 이치
벌어진 시간의 틈
숲에서 솔방울을 주워 왔어요. 옅은 갈색의 색감이 아주 맘에 들었거 든요. 지금 가만히 살펴보니 나에게 할 말이 있는 듯 솔방울 연신 입 을 벌리고 있네요. 벌어진 틈에 날개가 보입니다. 어미 품속에서 씨앗 이 날고 싶은가 봐요.
방방곡곡 돌아보니 물마다 산마다 낱낱이 알겠더라. 소나무 잣나무는 푸릇푸 릇 서 있는데 가지가지 잎새마다 만만 마디로다. 늙은 학이 새끼 쳐서 온 천 하에 퍼뜨리니 날아오고 날아가며 사모하기 극치로다.
〈東經大全 : 화결시〉
자연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신기한 게 참 많다. 솔방울도 살펴보면 껍질 하나하나에 씨앗 이 두 개씩 들어가 있다.
--- 「자연」 중에서
햇살 돋는 어머니의 산 지리산, 골골마다 나무나무 품고 나무 자라며 푸르렁, 푸르렁. 강물 흐르며 울렁울렁 마음을 적시네.
이 생각을 한번 개벽하면, 이에 희고 흰 얼음과 눈의 깨끗함과 하늘이 개이고
날이 밝은 광명과 산이 높고 물의 흐름이 방정함과 뜻이 크고 뛰어난 구름 속 학의 고상한 그 모든 것이 참된 정신의 나이니라.
〈의암법설 : 인여물개벽설〉
그 많은 사람들을 맞이하며 새날을 맞는 나날. 다른 산도 많지요마는 지리산은 갈 때마다 외경심을 느낍니다.
--- 「지리산에 들면 그냥 좋아라」 중에서
열매가 되는 이유
길섶에 매화꽃 시들어 가네. 향기 아직 훈훈한데 숱한 날을 기다려 품어 내던 늙은 나무, 봄볕 가득 품어 실한 매실이 되리라.
원형이정은 천도의 모습이요, 한결같이 중도를 지키는 것은 사람이 살필 바 니라.
〈東經大全 : 수덕문〉
나고 자라고 열매 맺고 저장하는 순환이 생명의 본질이다. 그런 계절에 따른 변화는 서 두르거나 늦어지는 법이 없다. 그것이 중도다. 사람이 배우고 따라야 할.
--- 「도」 중에서
내 몸의 일부
꼬부랑 할머니는 날마다 자신의 유모차를 밀고 나가 밤이고 낮이고 정해진 시간이 없이 버려진 물건을 줍습니다. 종이. 빈 병. 작은 쇠붙이. 헌 옷.
모두 물질고아를 입양합니다. 고아들은 모이고 모여서 할머니에게 따 뜻한 밥 한 끼를 차려 드립니다.
손수 꽃가지를 꺾으면 그 열매를 따지 못할 것이요, 폐물을 버리면 부자가 될 수 없느니라.
〈해월법설 : 대인접물〉
성찬경 시인이 말했습니다. “우리 집 헛간에는 고물들이 많이 있어요. 길섶에 홀로 떨어 진 녀석을 모셔옵니다. 모두 물질고아이지요.” 전 이 이야기에 감동 받았습니다. 사물을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 때문이죠. ‘물질고아’ 다시 새겨 봅니다.
--- 「인간」 중에서
나무 그늘에서 쉬었다. 바람에 유영하는 벼이삭.
올 해도 풍년이길 바랐다. 농부의 바람대로, 정한 수확은 했으나 빈 들녘의 허허로움 그대로, 농부는 여전히 허허롭다.
그릇이 비었으므로 능히 만물을 받아들일 수 있고, 집이 비었으므로 사람이 능히 거처할 수 있으며, 천지가 비었으므로 능히 만물을 용납할 수 있고, 마 음이 비었으므로 능히 모든 이치를 통할 수 있는 것이니라.
〈해월법설 : 허와 실〉
만남은 어디서든 소중합니다. 사람과 사람, 나무와 나무, 뜻과 뜻, 뿌리와 뿌리가 만나 근본을 돌아봅니다. 잊고 살던 우리에게 만남은 샘솟는 감정을 제공합니다. 지기의 기화작용이지요.
--- 「만나는 일은 같다」 중에서
첫발
누구나 첫발은 설렌다. 먹이를 찾는 괭이도 길을 나서는 엄마도 늘 아이들 생각뿐이다.
먼 곳에 일이 있어서 가게 되면 나에게 이롭고 가지 않으면 해롭게 되었다. 급하게 길을 나서서 가다가 도중에 생각하니, 길은 아직 멀고 집은 종종 생각 나서, 정말 가는 게 이로운 것인지 의심이 끊이지 않는다. 확신이 서지 않아 도로 돌아오니 그 얼마나 못났는가?
〈용담유사 : 흥비가〉
돌아보지 말자. 이왕지사 길을 나섰으니 내가 가는 길이 첫발이다. 묵은 가지에 새움이 돋듯 늘 봄처럼 여기며 걷자.
--- 「가족」 중에서
엄마의 라면 반 개를 생각해 보는 아침입니다. 자식을 공부하는 학원 에 따뜻한 밥을 먹여 보내고 자신은 늘 라면으로 아침과 점심을 먹는 다고 이웃집 아주머니가 철없는 자식에게 어느 날 아침 귀뜸해 주었습니다.
한울은 사람에 의지하고 사람은 먹는데 의지하나니, 만사를 안다는 것은 밥 한 그릇을 먹는 이치를 아는 데 있느니라. 사람은 밥에 의지하여 그 생성을 돕고 한울은 사람에 의지하여 그 조화를 나타내는 것이니라.”
〈해월법설 : 천지부모〉
아현동 달동네 살 때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십대 초반 재수시절 전 어렵게 단과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서대문까지 걸어 다녔지요. 철없는 자식의 행보에 늘 허기졌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 「라면 반쪽」 중에서
다, 지난 일
고개를 들기 부끄럽구나. 내 누울 자리 하나 마련 못하고 평생을 살았다. 아쉬운 시절이 지났다.
인간만사 행하다가 거연 사십 되었더라
사십평생 이뿐인가 무가내라 할길없네
〈용담유사 : 용담가〉
실패한 삶이라고 단정 짓지 말자. 주변에 피해 주지 않고 살아온 일도 대단한 일이다.
--- 「인생」 중에서
아무도 없다. 아직 떠나지 못한 씨앗들, 바람이 불기만을 바라고 있다. 씨앗은 곧 떠날 것이다. 여러 날을 함께했던 시간 서정의 그리움에 내가 젖는다.
“부자유친 있지마는 운수조차 일신이며, 형제일신 있지마는 운수조차 일신인가.”
〈용담유사 : 교훈가〉
삶과 수행은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가고 싶은 대로 가라. 누구를 해치지도 말고 두려움 없이. 얻는 것에 만족하며 내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자신있게. 무소의 뿔처 럼 혼자서 가라. 잎을 다 떨어낸 저 겨울나무와 같이 세상의 속박을 다 잘라버리고 편안 하고 자신있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숫타니파타≫
--- 「지상의 한나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