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봄에 나는 없었다 … 009
에필로그 … 269 옮긴이의 말 … 285 해설|자기기만과 회한의 여로 … 289 |
저애거사 크리스티
관심작가 알림신청Agatha Christie,アガサ クリスティ-
애거사 크리스티의 다른 상품
역공경희
관심작가 알림신청공경희의 다른 상품
몇 날 며칠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말고는 할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자신에 대해 뭘 알게 될까. (25
생각이 나도록 내버려두면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 p.113 “우리가 아이들한테 어떤 일을 하는지 생각해봐. 우린 아이들에 대해서 뭐든 안다고 생각하잖아. 온전히 우리 손아귀에 잡힌 무력하고 어린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최선을 알고 있다는 듯 굴지.” “당신은 그애들이 자식이 아니라 노예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네요.” “노예 아닌가? 우리가 주는 음식을 먹고 입혀주는 옷을 입고 시킨 대로 말하는데! 그게 아이들이 지불하는 보호의 대가 아닌가? 하지만 아이들은 매일매일 자라서 자유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지.” “자유요? 그런 게 있기나 해요?” --- p.117~118 두렵고 위협적이고 그녀를 쫓아다니는 겁나는 무엇. 항상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그것.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회피, 왜곡, 외면…… --- p.214 정말 흥미롭다…… 자신을 만나다니…… 자신을 만나다…… 맙소사. 그녀는 두려웠다…… 소름끼치도록 두려웠다…… --- p.216 진실의 조각들이 도마뱀들처럼 튀어나와서 말했다. “나 여기 있어. 넌 나를 알아. 아주 잘 알다마다. 모르는 척하지 마.” 그리고 그녀는 그들을 알았다. 그래서 지긋지긋한 것이었다. --- p.217 전에는 그 생각을 해볼 필요가 없었다. 중요하지 않은 소소한 일들로 생활을 채우기가 쉬웠다. 그러느라 자신에 대해 알 시간이 없었다. --- p.217 사람들을 사랑하면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건데. 참된 진실보다는 유쾌하고 편안한 것들을 사실이라고 믿는 편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에, 그래야 자신이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몰랐다. --- p.218 사막에 온 건 그것 때문이다. 이 맑고 무지막지한 빛줄기가 그녀에게 자신의 본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동안 외면했던 모든 진실을 보여줄 것이다. 사실은 그녀도 다 알고 있었던 모든 것을 보여줄 것이다. --- p.230 경멸에 찬 목소리. “엄마는 아빠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그녀는 몰랐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왜냐하면 결코 알고 싶지 않았으니까. --- p.233 다 잘되자고 그런 거였어! 한 사람이라도 현실적이어야 하잖아! 신경쓸 자식들이 있었잖아.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렇게 처신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변명의 아우성이 싹 가라앉았다. 이기적이지 않았다고? --- p.234 진실? 그게 진실인지 내가 어떻게 알지? 조앤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모든 것이 자신 쪽에서 한 상상이지 않을까? 구체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 p.262 귀한 게 뭘까? 귀하지 않은 게 뭘까? 추억이란 것이 세상에 있기나 할까? --- p.283 |
외딴곳에서 낮은 목소리로 이어지는 불쾌한 자기분석
―“넌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자상하고 유능한 변호사 남편, 반듯하게 자란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활기 넘치는 중년의 주부 조앤 스쿠다모어. 그녀는 딸의 병간호를 마치고 바그다드에서 런던으로 돌아오던 길에 여고 동창 블란치를 만난다. 학창 시절 친구들의 우상이었던 블란치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남자 이야기나 떠들어대는 천박하고 추레한 중년이 된 듯했고, 조앤은 그녀와 자신을 비교하며 내심 우쭐한다. 하지만 이날 블란치는 조앤의 가족에 대해 언뜻언뜻 이해 못할 이야기를 던져 조앤의 심기를 거스른다. 그후 폭우로 교통이 끊기면서 조앤은 사막의 기차역 숙소에서 발이 묶인다. 어둡고 서늘한 무덤 같은 숙소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태양이 내리쬐는 사막을 걷는 것 말고는 아무 할일이 없는 허허벌판에서 조앤은 그 며칠을 그동안 바라던 온전한 자기만의 휴식 시간으로 삼기로 한다. 하지만 블란치가 던진 말 몇 마디가 불씨가 되어 과거의 일들이 머릿속에서 하나씩 점화되기 시작한다. 도마뱀처럼 여기저기 구멍에서 튀어나오는 날카로운 기억의 조각들이 그녀를 향해 비아냥거리고 있었다―“넌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자신 있어하더니 왜 그렇게 지쳤지?” 우리 삶에 ‘안전’은 없다, ‘자기기만’이라는 안전장치가 있을 뿐 ―“신경 꺼. 난 알고 싶지 않아.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아! 진실? 그게 진실인지 어떻게 알지?” 조앤은 자랑스럽고 뿌듯했던 자신의 과거를 송두리째 의심하기 시작한다. ‘블란치는 왜 엄마인 내가 딸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듯이 얘기했을까?’ ‘남편은 왜 내가 탄 기차가 움직이자마자 마치 기쁜 사람처럼 뒤돌아 걸어갔을까?’ ‘딸은 왜 자기 병명조차 숨겼을까?’ ‘애들은 왜 아빠에게만 사랑한다며 매달렸을까?’ ‘나는 왜 남편과 셔스턴 부인의 밀회 장면을 목격하고도 도망치듯 물러났을까?’ 변호사를 그만두고 농부가 되고 싶어하던 남편은 재고 따지기만 하는 세상이 역겹고 신물 난다고 했고, 아들 토니는 말끝마다 “엄마는 아빠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빈정거렸고, 딸은 “엄마는 추악”하다고 소리쳤었다! 뒤돌아선 그들의 등에서 흘러나온 아내와 엄마를 향한 혐오와 불쾌와 포기와 낙담의 언어들. 덮어버리고 지워버렸던 비극적 순간들이 조앤의 뇌리에 하나둘 뚜렷하게 떠오르고, 마침내 그녀는 정상과 광기의 경계에 위태롭게 선다. 난 외톨이야. 완전히 외톨이야…… 무시무시한 고요…… 지독한 외로움…… 가여운 조앤 스쿠다모어…… 멍청이, 헛똑똑이, 가식덩어리 조앤 스쿠다모어…… 사막에 혼자 있네. (224쪽) 흔들리는 확신, 흔들리는 목소리 현실 속에서 진실을 지나치고 회상 속에서 진실에 다가서는 아이러니 불안이 가파르게 증폭되는 조앤의 회상 장면은 자신에게 만족하며 살아가던 인간이 타인의 눈빛이나 말 한마디에 속절없이 무너질 수도 있는 나약한 존재임을 말해준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다가드는 불안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본 감정일 것이다. 작가는 불완전한 기억의 퍼즐을 맞춰가는 조앤을 삼인칭 주인공의 시점으로 묘사한다. 이는 주인공에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냉정한 시점을 견지하여 자신을 반추하라는 의도로 이해된다. 때문에 독자는 주인공에게 아주 밀착하지도, 멀리 떨어지지도 않은 거리에서 그와 자신을 겹쳐 바라보면서 바라지 않던 자기분석의 시간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자신을 똑바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위기의 순간이 왔을 때 인간은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조앤의 숨통을 조이며 뼈아픈 자기고백과 반성으로 내몰았던 사막에서의 고립 이후 그녀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아니, 그녀가 의심했거나 확신했던 것들이 모두 사실이긴 할까? 기억은 언제나 온전하지 않은 거니까. 기억은 언제나 진실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니까. 그래서 그녀 역시 다시 진실을 의심한다. “진실? 그게 진실인지 어떻게 알지?” “구체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애거사 크리스티의 답변은 조앤이 집으로 돌아간 이후의 이야기에서 아주 현실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12장과 남편의 시점으로 쓰인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드러나는 진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아주 뼈아픈 선고에 다름 아니다. 추리소설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진 이 작품을 통해 애거사 크리스티가 가진 스토리텔러로서의 뛰어난 능력을 다시금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인간 내면의 초상을 그린 보석 같은 작품. _뉴욕 헤럴드 트리뷴 『봄에 나는 없었다』는 고전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역작이다. _뉴욕타임스 환상으로도 결코 바꿀 수 없는 한 인물에 대한 명민하고 흥미로운 연구. _가디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