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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뚝배기의 안 멋진 죽음 上
조헤드의 멋진 하루 上 릴뚝배기의 안 멋진 죽음 下 조헤드의 멋진 하루 下 작가의 말 |
저류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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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힙합만으로 성공해서 방송국의 영향력을 따라잡는 미래를 그렸습니다. 뭐 하나 터져서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하지만 나이 먹고 보니 터지는 건 엄마 속이고, 방송국은 무슨 순대국 사 먹기도 힘듭니다. 욕조에 몸을 담근 채로 릴뚝배기는 자신의 미래를 계산합니다. 그리고 목욕을 끝마칠 즈음에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힙합 그만해야겠다. 한순간의 투정이나 회피가 아닙니다. 진지한 결론입니다. 입만 산 말뿐인 리스펙을 받으며 텅 빈 통장 잔고 를 괜찮다고 위안하기도 이제는 지칩니다. --- p.9~10 아트 디렉터 누나를 통해서 말로만 들었던 이사님의 햄버거 부심을 직접 듣는 시간이었다. 이사님은 맥도날드, 롯데리아 햄버거 맛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음식 맛을 모르는 거라고 비난했다. 이곳의 햄버거는 전문가들과 함께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서 만들었단다. “에이. 그래봐야 햄버거 미국 음식이잖아요.” “그러면 네가 하는 힙합은 미국 꺼 아니냐?” 이사님이 시니컬하게 받아쳐서 나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 p.80~81 주로 TV나 Youtube에서 힙합을 접하고, 래퍼의 꿈이생긴 청소년들이 인터넷 보고 이곳에 찾아와서 언더그 라운드 래퍼들 생활비에 보탬이 돼 주고 있답니다. “뭐, 걔네 덕에 나도 돈을 벌긴 하지만, 옆에서 보고 있으면 안쓰러워.” “뭐가요.”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철썩 같이 믿는데….” 지금 이 순간 릴뚝배기는 아저씨에 대해 좋게 생각하던 게 그저 오랫동안 안 보면서 미화되던 것에 불과하다 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걸 일로 삼으면 안 되거든.” “왜요?” “결국 안 좋아하게 된다.” --- p.104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나서’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실패한 이들은 이런 내 성공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완성된 뮤직비디오와 달리… 나는 영상에 등장하는 이들을 놀리고 싶지 않았다. 한때 그들이 짜증났던 건 사실이지만, 더는 풍자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내 태도가 성공하고 나니까 배가 부른 걸 지는 몰라도. --- p.154 |
“한국에서 태어나서 ㅈ 같다.” vs “제가 만약 힙합을 버리려고 한다면… 가차 없이 저를
뒤지게 해주세요.” 내 아마추어 시절 팬들아. 정말 미안. 얼마 없는 너희 챙기려고 노력 많이 했다. 너네들이 내 앨범은 안 구매해도, 뮤직비디오에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전세기 끌고 다녔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안타깝다…’ 같은 댓글을 달아주면 나도 일일이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됩니다. 하지만 솔직히 큰 힘 안됐다. 어쩌란 건가 싶었다. 다시 태어날 수도, 굶어 죽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 나도 먹고는 살아야 했다. -41쪽에서 ‘조헤드’는 언더그라운드 래퍼 시절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을 디스하면서 꿋꿋이 자기의 길을 걷고자 했다. 그러나 생활비가 부족했던 조헤드는 힙합 오디션 프로에 지원하고 심지어 우승까지 해버린다. 문제는 언더 시절 팬들이 그가 메이저와 타협다했고 욕하고 동료마저 돌아섰다는 것이다. 조헤드 자신도 은연중 언더그라운드 시절 자신의 모습이 진짜 힙합다웠다고 생각하는데…. 이 모든 게 한국 특유 음악 시장 탓이라고 생각하며 “한국에서 태어나서 ㅈ 같다.”는 문장을 비밀 SNS 계정에 게시한다. 한 시간 뒤, 그는 비밀 계정이 아니라 공식 계정에 올렸다는 걸 깨닫는다. 연예 기자들은 조헤드를 매국노인양 취급한다. 방송국의 쇼케이스마저 취소될 운명이다. 그때 소속사 아트디렉터가 방송국 PD 앞에서 이게 모두 ‘노이즈 마케팅’이었다며 묘수를 꺼낸다. ‘한국의 팬들에게 감동의 메시지를 보내는 반전’을 주기 위해 깜짝 이벤트를 벌이는 중이라고. 물론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조헤드는 팬들에게 보여줄 특별한 뮤직비디오 ‘한국에서 태어나서’를 단 하루 만에 완성시켜야한다. “릴뚝배기야. 넌 이제 뒤졌다.” “누구신데요?” “나는 너의 신이다.” “신이요?” “네가 기도했던 내용을 잊었느냐.” 제가 만약 힙합을 버리려고 한다면… 가차 없이 저를 뒤지게 해주세요. ―11쪽에서 ` 한편 랩스타 조헤드 대신 언더그라운드 래퍼 ‘릴뚝배기’가 존재하는 평행우주. 열심히 작업해 1집 ‘나는 벌레’를 발표했지만 올라오는 댓글이라곤 “얘는 미국에서 태어났어야 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댓글이 하나도 없네.” 같은 소리뿐이다. 미국 래퍼들처럼 ‘진짜 힙합’을 해서 한국 사람들이 못 알아준다는 소리겠지만, 릴뚝배기는 마음이 좋지 않다. 지금 죽어버리고 다시 미국에서 태어날 수도 없는데 어쩌란 건지 싶다. 그렇게 힙합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신이 그의 앞에 나타나 이제 죽을 시간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열일곱 살, 자신이 힙합을 버리려 한다면 가차 없이 죽여 달라고 기도했기 때문이다. 신은 마지막 하루를 살아갈 시간을 주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릴뚝배기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마지막 하루를 어떻게 장식해야할지,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고민하게 되는데…. 한 아티스트의 성장과 엔터테먼트 산업에서 행해지는 아이러니, 다종다양한 아티스트와 예술계에 발을 걸친 이들의 고군분투를 다룬 군상극. 소설은 평행우주에서 살아가는 같지만 다른 두 래퍼, 조헤드와 릴뚝배기가 말 한마디 때문에 처한 부조리한 상황으로 시작된다. 그로 인해 두 사람은 전에 생각해보지 못한 세상의 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조헤드의 경우 말 한마디에 의해 그와 얽혀 있는 회사 전체 인구가 움직인다. 이사, 아트 디렉터, 회사 연습생, 연기자 지망생, 음악감독 등이 조헤드의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 동원된다. 릴뚝배기는 말 한마디 실수에 죽을 운영에 처하지만, 지난 인생을 되새기며 어머니, 동료 래퍼 무알콜과 버터맨, 자신이 줄곧 랩 하던 낡은 공연장 사장, 힙합 꿈나무 청소년 등과 만난다. 조헤드와 릴뚝배기는 자신이 단순히 ‘개인’으로 존재하는 아티스트로서가 아닌.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산업 등에 의해 위치 지어진 구조적 정체성을 깨닫는다. 그리고 예술 세계와 발을 걸친 사람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 성찰하게 된다. 이 소설은 예술세계에 존재하는 인간 군상의 보고에만 그치지 않는다. 조헤드가 찍는 뮤직비디오가 사실은 릴뚝배기가 평행우주에서 힙합의 신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라는 게 밝혀지면서, 릴뚝배기가 처해 있는 부조리한 상황이 실은 조헤드가 과거 언더그라운드 래퍼였던 시절을 깨끗하게 청산하는 작업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이 소설의 부제 ‘자칭 리얼 엠씨의 부캐 죽이기’는 조헤드가 릴뚝배기의 정체성을 상실해야하는, 엔터테인먼트 기획에 의해 과거의 자신을 죽여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지시한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가 거대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개인 아티스트의 대결구도를 그리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은 언더그라운드 시절 분노의 가득 차 있던 랩퍼 릴뚝배기의 모습을 마냥 긍정적으로, 그렇다고 마냥 부정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조헤드는 릴뚝배기 시절 자신이 어떤 면에서 리얼 힙합스러웠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아마추어 같았다고 생각하며, 힙합 오디션에서 승리를 거두고 생긴 새로운 자아가 어떤 걸 얻었고 어떤 걸 놓쳤는지 고심해보게 된다. 이 세계와 단절하려는 게 아닌 이 세계에 이미 ‘속해’ 있는 아티스트의 입체적인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금수저 출신이면서 예술을 하려 했던 무알콜이나, 예전에는 알아주는 언더그라운드 래퍼였으나 이제는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며 자신의 앨범을 겨우 홍보하는 버터맨 등을 묘사하며 ‘노력’이나 ‘천재성’으로 쉽게 포장되지만 실은 그렇지 않는, 하나의 정의로만 봉합되지 않는 예술 세계의 복잡성에 대해 토로한다. 나아가 소설은 기회와 성장, 상실과 우울이라는, 삶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로 나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