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에서 유행했던 이교주의와 세속성의 영향이 고린도의 문제에 대한 가장 좋은 설명이다. 어떤 학자들은 황제 숭배를 큰 영향으로 본다. 이 영향은 가능할 수 있지만, 설득력 있는 증거가 없다.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카이사르에 대한 논쟁을 읽어 내려고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본문 읽기는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 바울이 걱정하는 명백한 이교주의는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 문제에서(8:1-11:1) 부상하지만, 우리는 고린도 교인들이 황제 숭배와 타협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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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교회의 지도자들에게만 아니라 함께 모였을 때 전체 교회 공동체가 행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신자들은 뻔뻔스럽게 죄를 지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내쫓아야 할 책임이 있다(5:12- 13). 세상은 사탄의 영역이기 때문에(참조, 고후 4:4; 엡 2:2; 요한 1서 5:19), 사탄에게 넘겨주는 것은 교회에서 쫓겨남을 의미한다(5:5). 바울의 주된 관심은 교회의 순결과 그것이 세상에 증거되는 것이다. 죄를 용납하면 악이 누룩 덩어리처럼 퍼지게 되기 때문이다(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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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다. 구약에서 신자 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에피칼레오, epikale?, 예. 창 4:26; 왕상 18:24; 시 74:2[70인역]; 98:6[70인역]; 욜 3:5[70인역]; 습 3:9).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기도를 의미하고 이름은 또한 그리스도의 신성을 나타낸다. 왜냐하 면, 하나님의 이름은 그분의 성품을 나타내므로 그들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참조, 창 32:29; 출 20:7; 삿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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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높은 계층, 힘 있는 자, 그리고 지혜 있는 자 대신 천한 자, 약 한 자, 그리고 어리석은 자를 택함으로 인간의 기대와 명예와 수치라는 인간의 기준을 뒤엎으신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뜻하신 자를 부르시고 선택하신다. 이와 같은 주장은 인간의 책임을 배제하거나 축소하지 않는다. 구원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이기 때문에 인간의 자랑이 배제된다. 모든 찬양과 존귀와 영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만, 고린도 교인들은 인간 사 역자들을 자랑함으로 사실 자신을 찬양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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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바울은 교회 안에 존재하는 오만과 자랑을 걱정한다(참조, 1:29, 31; 3:21; 4:6, 7, 18, 19; 5:2). 그들의 자랑은 고린도 교인들이 명백한 범죄를 용납 하기 때문에 매우 아이러니하다. 6-8절에서 바울은 유월절과 무교절 절기를 자신의 견해를 위한 구약성경의 토대로 삼는다. 여기서 그는 유월절과 무교절 동안 집에서 모든 누룩을 제거해야 하며, 아무것도 먹지 말아야 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온다(출 12:14-20; 13:6-7). 그러므로 누룩은 악과 타락을 의미한다. 반죽 덩어리의 적은 누룩은 전체에 퍼질 것이다(갈 5:9; 참조, 마16:6). 그러므로 바울의 주된 관심사는 개인적 죄를 범한 자가 아니라 교회에 죄가 퍼질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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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4〉 바울은 계속해서 노예이든 자유인이든 사회적 지위가 상관 이 없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모든 신자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 이것은 6:12-20의 성 윤리의 토론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 진리이다(6:20의 주석을 보라).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구속 역사가 사회적 지위에 적용된다. 바울은 고린도 사회의 사회적 가치를 계속해서 전복시킨다. 그들의 눈에는 사회적 지위가 중요했고 명예 또는 수치의 근원이었지만, 바울은 사회에서 그 사람의 위치가 하나님의 눈에는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았는지 여부이다. 그리스도로 구속받았다면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산다.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은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에게 노예가 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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