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수송선에 오르고 나니, 앞쪽에 간이 무대가 설치되어 펼쳐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대형 여객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상태에서 연예인들의 환송 위문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이어서 여고생들의 환송가와 「달려라 백마」가 우리의 귓전에 울려 퍼질 즈음, 우리는 그제서야 “아! 이젠 정말 베트남 전선으로 떠나는구나!”라는 긴장감에 젖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남편 등을 베트남 전선으로 떠나보내는 군인 가족들의 눈물과 환송으로 정신없이 시끄러운 가운데, 배에서는 길고 구슬픈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뱃머리가 서서히 돌려지고 있을 즈음, 이때 또다시 힘차게 울려 퍼지는 여고생들의 합창, 군가 「달려라 백마」를 귓전에 담으면서 우리 모두는 염원을 가득 담아 기도를 올렸습니다. 나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늘을 우러러, 신께 아주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하느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소서, 제가 전쟁터에서 죽는 것은 두렵지 않사오니, 제발 부상당해 불구가 되지는 않게 하여 주시고, 만약 불구가 되어야 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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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안에 침이 나오질 않아, 입 속이 메말라 말조차 하기 힘들다 보니, 오직 물 이외에는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었습니다. 눈을 뜨나 눈을 감으나, 모든 전우들의 머릿속에는 온통 물 생각뿐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땅바닥에 엎드려서 허우적거리는 병사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군복 상의는 벗겨져 있었고, 총이고 철모는 내팽개쳐 버리고, 눈은 확 뒤집힌 채, 맨손으로 땅을 파헤치는 이상행동을 하는 병사들도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15일 작전 중에 이제 겨우 5일째인데 이거 정말 큰일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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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얼음덩어리처럼 차갑게 굳어 버린 몸으로, 잠시 멈칫하였습니다. 이내 정신이 들자, 나는 즉시 도주하는 베트콩들을 향해 반사적으로 사격을 가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그 위쪽에서 우리에게 반격을 가해 왔습니다. 몇 명인지 알 수조차 없는 수많은 베트콩들이 숨어서 우리에게 일 제 사격을 가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아까 우리와 눈이 마주쳤 다가 도주하는 베트콩들을 엄호하기 위해 그들은 아주 필사적으로 대응해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에게 사격을 가해 오는 베트콩들은 어느 쪽에서 몇 명이나 되는지 가늠조차 잘 안되는 상황이었으니 정말 불안, 초조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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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6·25 전쟁이 막바지, 휴전협정이 한창 논의될 즈음,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또한 협상에 유리한 고지에 서려고, 전투가 제일 극심했듯이, 월맹군과 베트콩의 기습 또한 엄청났습니다. 월맹 측에서는 미국의 들끓는 반전 여론을 더욱 부채질하기 위해 공세적 전략으로 나오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정세가 급변함에 따라 우리 소대도 더 이상 나트랑에 머물며 경계근무만 설 수는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다시금 중대 본부가 있는 곳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불안감도 엄청 고조되었을 무렵, 상부 에서는 정신 무장 교육 지침을 내려보내며, 다음과 같은 표어를 적어서, 크고 작은 진지에 부착하고, 숙지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도망갈 곳이 없다, 죽을 곳도 이곳이요 살 곳도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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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시끄럽기도 하였지만, 생전 처음 들어 보는 그 소리 자체가 상당한 불안감덩어리였습니다. 그런 데다가 중대 본부 건물 대문으로 들어서려는데, 그 대문 정면에는 아주 새빨갛고 큼직한 글씨로, “도망병은 민족의 반역자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나는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듯하더니만, 순간,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의 삶이며 생활이 온통 꿈속에서나 있었던 듯하고, 영원히 다시는 못 돌아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내가 여기서 온전히 살아서 사회로 나갈 수가 있으려나? 얼마나 힘들고 고달프고, 춥고 배가 고팠으면 도망을 갔을까? 도망병이 얼마나 많으면 저런 표어를 써 놓았을까?’라고 심히 낙심되었던 바로 그때가 불현듯 떠올랐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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