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튼 난 그런 유의 인간이다. 내 주위에 무슨 전투나 난리가 벌어진다면, 그중 대부분은 내가 일으킨 것이다. 남군과 같은 다른 누군가에게 도발을 당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저 내 행동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그런다. 이런 나를 보고 “무모하다”고 엄마는 늘 말한다. 학교 심리상담선생님은 “충동 억제력이 낮다”고 했다. 아빠는 “그러다 언젠가는 크게 혼쭐이 날 거다”라고 했다.
아빠 말이 맞다. 엄마, 상담선생님의 말도 모두 다 맞다. 하지만 내 앞에 어떤 사물이 보이는데 그게 발로 차거나, 잡거나, 뛰어들거나, 색칠하거나, 누르거나, 불을 붙일 수 있는 거리에 있다면, 난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처럼 몸이 가는 대로 움직인다. 생각하는 대신 행동하는 것이다.
여동생의 튜브에 다트를 던져서 동생을 물에 빠뜨린다든가, 동물원의 라마한테 침을 뱉는 것 같은 장난은 자질구레한 것에 속한다. 헬륨 풍선에 낚싯바늘을 매달아 마크 삼촌의 가발을 벗겼던 건 꽤 창의적인 시도였다. 학교에서 행해진 ‘미래에 감옥 갈 것 같은 사람’ 투표에서 2년 연속 1위의 영광을 안을 정도로 기막힌 장난을 친 적도 있었다.
“우리 팬은 위대하다. 우리 팀은 훌륭하다. 우리는 50점 차로 발린다.”
우리 학교 농구팀의 숙적인 살렘 중학교와의 중요한 경기가 있던 날, 난 저런 망언을 내뱉고 말았다. 그냥 말했다면 모르는데, 아예 교내 스피커로 온 건물에 ‘방송’을 해버렸다.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 문구는 경기 홍보 포스터를 처음 봤던 그 순간 자연스럽게 떠올라 며칠에 걸쳐 내 머릿속에 완벽히 각인된 것이었다. 마침 그날 난 ‘침뱉기 놀이’를 한 죄로 이름이 같은 두 명의 다니엘과 함께 교무실에 묶여 있었고, 몇 미터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엔 생방송 가능한 교내 방송 마이크가 있었다. 운율까지 맞는 기발한 문장을 전교생과 나눌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난 주저 없이 마이크의 스위치를 올렸다.
--- pp.9-11
여섯 시에 아빠가 편지 한 통을 갖고 집에 돌아왔다.
“학교에서 온 편지다, 도니. 열어보기 전에 먼저 뭐 하고 싶은 말 있니?”
마치 본드로 혀를 입천장에 붙여놓은 기분이 들었다. 난 처참한 기분으로 곧 내려질 사형 선고를 기다리며 고개를 저었다.
얼마나 큰 벌이 내려질까? 정학? 그럴 수도. 설마 퇴학? 아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슐츠 교육감은 내가 일부러 지구본을 굴렸기 때문에 죄질이 나쁘다고 생각할 테니까. 사실, 나무막대기로 동상을 친 건 고의이긴 했다.
아빠가 편지를 읽는 동안, 난 아빠의 이마 왼쪽 윗부분에 보이는 핏줄을 조용히 살폈다. 의외로 삼촌의 가발을 벗겼을 때보다 훨씬 온화하고 안정돼 보였다. 좋은 신호였다.
마침내 아빠가 나한테 편지를 건네줬다.
“무슨 상황인지 설명 좀 해줄래?”
난 편지 위로 눈길을 옮겼다.
도노반 커티스 학생의 학부모님께.
아드님의 노력과 훌륭한 성과물이 마침내 하드캐슬 교육청에서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도노반 학생이 영재아카데미에 합격했음을 학부모님께 알려드립니다. 하드캐슬 교육청의 영재아카데미는 특별한 재능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영재 학생들을 겨냥하여 제작된 특수 프로그램으로…….
그 밑에는 전학 절차, 입학 신청서와 아카데미 통학버스 노선에 대한 안내가 나와 있었는데, 그 무엇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도노반 커티스’라는 이름과 ‘영재’, ‘능력’, ‘재능’ 같은 단어가 함께 있다는 것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영재라고? 내가? 난 수영장 미끄럼틀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전기 담장에 물 묻은 스펀지를 던지는 말썽꾸러기다. ‘절대 집에서는 따라 하지 마세요!’ 유형의 사람이지, 영재는 절대 되려야 될 수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건 퇴학이 아니라 진급이지 않은가!
--- pp.30-32
일반적으로 볼 때, 도노반 커티스는 절대로 영재가 아니다. 영재라기보다는 하드캐슬 교육청의 중3 남학생 중 무작위로 선발돼 운 좋게 들어온 학생이라고 보는 게 맞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우선 그 어려운 영재학교 입학 과정을 통과하지 않았는가. 교육부에서 출제하는 몇 세트의 시험을 치러야 하는 건 물론이고, 면접과 정신과 상담까지 거쳐야 한다. 운 좋게 합격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지난번 열린 교직원 회의는 거의 도노반 커티스에 관한 문제 위주로 진행되었다. 도노반에 대한 각 과목 선생님들의 평은 살짝 의외였다. 모두가 도노반의 재능이 자신의 담당 과목이 아닌 다른 과목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종합해보니, 새로운 전학생의 재능은 아예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영어, 사회, 프랑스어와 컴퓨터는 겨우 봐줄 만한 수준이었고, 수학이나 과학은 평균에 훨씬 못 미쳤다. 모든 분야에서 잘하리라고 기대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못할 줄은 몰랐다. 어떻게 여기 들어온 걸까?
“로봇공학반엔 잘 어울리나요?” 브라이언 델 리오 교장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글링 담당입니다.”
“뭐 담당요?”
“프로그래밍, 엔지니어링, 수압, 기압에 관한 지식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공학 상식도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인터넷에서 깡통맨에 붙일 웃기는 사진을 검색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아인슈타인이 바나나 먹는 사진 같은.”
교장이 얼굴을 찌푸렸다. “깡통맨요?”
“로봇입니다. 깡통 메탈리카 스폰지밥 맨을 줄여서 그렇게 부릅니다. 도노반이 지어줬죠.”
“우릴 우습게 보고 그러는 건 아니겠죠?” 사회과 담당 엘리 샤피로 선생이 물었다. “가끔씩 그런 식으로 재미를 찾는 아이들이 있잖아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들이 도노반의 역할을 좋아해요. 이전까지는 저나 학생들이나 로봇에 이름 붙일 생각을 못 했거든요. 처음엔 전학생 기죽지 말라고 그래 그래 했던 건데, 지금은 이름 붙여준 게 아주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 pp.63-64
2번은 화학 문제인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 불가. 이번엔 A를 찍기로 했다. 그런데 또다시 포인터가 알아서 움직이더니, E에 체크 표시를 했다.
그러더니 내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다음’ 버튼을 자동으로 눌렀다.
단순한 전산상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이 컴퓨터를 해킹해서 대신 답안을 작성해주고 있는 게 분명했다!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를 이렇게도 신경 써주는 친구가 있다니! 대부분의 아카데미 학생들은 자기 일 챙기기에만 급급해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되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나를 위해 애써주는 녀석이 있다니…….
3번 문제에 답을 체크하는 화살표를 보고 눈물이 고여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이 학교에서는 친구를 사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누군가가 이 건물 안에서, 아니면 밖에서 원격으로 시험을 대신 봐주고 있다니. 만약 다니엘 녀석들이라면 이렇게까지 나를 도와줬을까? 아, 그래, 다니엘 녀석들이 대리 시험을 쳐줘봤자 통과할 수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만약 그게 가능하다 해도, 녀석들이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런 일을 해줄까? 진심으로 의심스러웠다.
--- p.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