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나라의 정체성은 예수님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마 22:21)고 하신 것처럼 두 가지 의무를 다하도록 요구한다. 포로의식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오늘 이 시대에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크리스천의 정체성도 바로 이런 두 나라의 정체성이다. 사도 베드로가 하는 말을 좀 빌리면 ‘세상 속에 사는 흩어진 나그네’(벧전 1:1)이다. 우리는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수도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교제하는 모습을 기뻐하신다. 그러나 교회생활만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관심을 가질 유일한 영성의 마당인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삶의 터전인 세상이 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영성과 믿음을 드러내야 한다. 가정과 일터와 지역사회에서, 대한민국의 국민과 지구촌의 한 구성원으로서 우리의 정체를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두 나라의 정체성으로 무장한 크리스천」중에서
“이런 상황이 자주 생길 때도 적절한 대안을 찾을 방법이 있으면 모색해야 한다. 무역회사에서 일하던 한 크리스천은 연중 몇 차례 꼭 해야만 하는 주일 근무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주일에 부서의 전 직원이 출근해서 일하기 때문에 빠지기도 쉽지 않았고, 그렇다고 주일성수를 하지 않을 수도 없어 고민하며 기도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부서원들에게 제안했는데 주일 근무가 있을 때 교회에 갈 수 있도록 근무를 빼주면 주중 공휴일에 돌아가면서 서야 하는 당직 근무를 연중 혼자 다 맡겠다고 했다. 팀원들과 일종의 ‘거래’를 한 것이다. 무역회사였기에 주중에 있는 공휴일에는 언제나 당직을 서야 했는데 바로 그 휴일 근무를 모두 떠맡겠다고 자청했다. 물론 동료들의 열띤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설날과 추석 연휴 등 당시에 보름이 넘는 주중 공휴일 당직을 혼자 다 감당해야 했다.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이었겠는가? 그러나 그는 자신이 크리스천으로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이고, 그런 희생이 있더라도 주일성수를 하는 모습을 동료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일터문화의 갈등 속에서 대안을 제시하라」중에서
“직장에서 일하는 당신이라면 윗사람에게 이런 신임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평소에 별로 살갑게 대해주지도 않고 나를 알아주지도 않는 줄 알았던 우리 부서 팀장이, 어느 날 옆 부서의 팀장과 대화하고 있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나를 굉장히 신임하고 있었다면 기분이 어떨까? 나에게는 잘 표현하지 않았지만 날 믿어주는 상사의 마음을 알았을 때 눈물이 솟아날 것 같던 경험이 있는가? 다니엘이 바로 그런 신임을 받던 사람이었다. 우리도 일터에서 윗사람에게 신임받아야 한다. 이것이 임기응변에 탁월하거나 아부를 잘하거나, 아니면 뇌물 공세를 통해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지 않는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내가 일하는 일터에서 존재하는 첫 번째 이유, 나의 업무와 관련된 나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일터에서나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도 우리는 윗사람들에게 신임받아야 한다. 특히 크리스천 직장인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
---「다니엘처럼 능력으로 확실하게 인정받으라」중에서
“만약 ‘교회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대답을 하겠는가? 조금 구체적으로 ‘교회가 어디에 있느냐?’고 질문하는 것이 더 적합하겠다. 교회는 어디에 있는가?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주일에는 틀림없이 교회당 안에 교회가 있다. 우리 성도들이 그곳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교회가 어디에 있는가? 흩어진 성도들이 머물러 있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 이 교회를 이름 붙여 ‘흩어진 교회’라고 한다. 그러면 세상에서 성도들은 무엇을 하는가? 바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롬 12:1)로 우리의 몸을 드리는 영적 예배가 바로 세상 속 크리스천의 삶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삶 속에서 드리는 예배의 비중을 결코 약화시키면 안 된다. 중요성을 따지는 것이야 무의미하지만, 모인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와 흩어진 교회에서 드리는 삶의 예배는 결코 다르지 않다. 주일에 예배를 잘 드리더라도 월요일부터 시작된 삶의 예배를 제대로 못 드리는 이원론적 크리스천들이 많아서 오늘 어지러운 사회를 바로잡지 못하는 것 아니겠는가? ”
---「세상에 영향을 주는 교회와 크리스천」중에서
“저의 인생길을 인도해주시는 하나님, 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합니다.
마음으로 저의 길을 계획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저의 인생길을 인도하십니다.
인생의 중요한 통과의례의 시기들, 선택의 기로에서 저울질하며 고민해야 하는 순간들,
그 선택의 때에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게 하소서.
아브라함, 모세, 다윗, 사무엘, 그리고 느헤미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정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을 따라 저도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게 하소서.
아버지여, 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소서.
부모님의 음성을 알아듣듯이 주님의 말씀을 보고 들으며 깨달을 수 있게 하소서.
기도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겠습니다. 사람들의 조언을 통해서도 주님의 뜻을 알려주소서.
제가 기대하지 못한 방법으로 주님의 뜻을 알려주실 때는 순종하게 하소서.
사도 바울을 통해 말씀해주신 대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게 하소서.
저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일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늘 주님의 뜻을 기도하며 기대하고 기다리며 살아가겠습니다.
저의 마음에 많은 계획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만 완전히 설 수 있게 인도하소서.”
---「특별수록. 세상 속 크리스천 직장인을 위한 기도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