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족은 1960년대에 새롭게 부상하는 인구개념을 통해 포착되면서 인구를 조절하기 위한 통치의 도구로 정치의 전면에 등장했다. 이 점은 한국 사회에서 가족이 산업화의 이행 과정과 맞물려 정치 수단으로 변화하고 적응하였음을 의미한다. 한국의 가족은 전통시대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근대 산업화의 시대를 지나는 동안 가족을 중심으로 한 운명공동체적 시각에 입각한 가족주의가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때문에 가족이 일종의 신화화된 현상에 머물러 있고, 이에 따라 정상가족과 비정상가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틀에 매몰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인식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가족의 다양성이 공론화되거나 인정받을 수 있는 여지는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이런 측면에서 가족은 겉으로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잔잔한 호수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에는 작은 돌 하나만 던져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만큼 본질적 문제를 안고 있는 휴화산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는 가족을 둘러싼 다양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가족에 관한 제도로서의 가족은 불확실성이 증가할 것이며, 친밀한 환경을 만들어 가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의미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 가족의 불확실성이 증가할 것이라는 것은 이혼율 급증, 출산율 감소, 고령사회 진입 등의 인구학적 반란과 더불어 다양한 가족형태가 증가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든 가족생활 영역에서 과거는 당연시되어 오던 것이 이제는 의식적인 선택영역으로 변화하게 되었음을 나타낸다.
특히 한국 사회의 가족 변화에서 흥미로운 현상은 개인적 자유와 자아실현이 결혼과 양육, 부양보다 중요하게 부각되면서 가족이 점차 취약한 제도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혼이 늘어나고 비혼자가 증가하며 출산이 줄어드는 현상은 전통적 가족제도가 약화됨과 동시에 다양한 가족형태가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시민의 인식 변화는 가족 형태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변화된 가족의 모습으로 패치워크 가족을 이야기할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른 아이들이 하나의 가족을 이루어 한 가정에서 자라는 모습은 우리 사회가 받아들여야 할 자연스러운 가족 변화의 실체로 인정되어야 할 부분에 해당된다. 이들 가족은 여느 가족과 다름없는 가족이며,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이들 가족은 혈연의 공고함을 뛰어넘어 친밀성에 기반한 정서적 돌봄과 나눔의 실천을 경험한다는 측면에서 가족이란 게 어떠한 가치와 의미를 지향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이들은 불안전한 사회에서 네트워크에 바탕을 둔 실질적 지원을 공유하며 살아간다는 측면에서 다양한 가족의 가치를 증명하는 실제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이렇듯 한국 사회의 가족을 둘러싼 다양한 변화의 양상은 현시점에서 우리 주변에 펼쳐지고 있는 삶의 모습으로 기억될 필요가 있다. 가족의 변화는 근본적으로 ‘과연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 개념의 변화상을 돌이켜 볼 필요가 생긴다. 이와 함께 가족과 유사한 의미로 다가오는 가정, 가구의 개념에 대해서도 의미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가족에 대한 다양한 접근
가족은 사전적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하여 그로부터 생겨난 아들, 딸, 손자, 손녀 등으로 구성된 집단을 가리킨다. 혈연관계와는 상관없이 주거와 생계를 같이하는 단위인 가구와 구분된다. 하지만 현대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다양한 가족의 양상을 통해 “가족이란 구성원의 역할과 행위를 둘러싼 환경변화에 맞추도록 조정하는 역사적 구성물이자, 인간관계의 다양한 집합이며, 보편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고정된 실체가 아님”을 인식하게 된다. 때문에 가족을 둘러싼 용어나 개념, 그리고 학문 분야에서 가족에 접근하는 시각 등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가족에 대한 용어들에 있어서 가족(the family), 가족들(families), 가족 실천(family practice) 이라는 비슷한 듯 미세한 차이를 보이는 개념들이 등장하고 오늘날 가족의 변화 양상을 설명하고 있는 것을 통해 대표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역사학이나 인류학, 사회학에서 다가서는 가족에 대한 이론적 접근에 있어서도 시각의 차이를 우리는 다음과 같이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역사학에서는 가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가족은 결혼과 혈연을 통해서 구성된 생활 공동체로서 부모와 자녀를 근간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변화가 없었지만, 서구 문화권의 가족의 경우 구성원의 범위, 구성원 간의 내적인 구조, 사회적 기능 등은 경제?정치?종교 등 여타의 제도들과 가족이 맺고 있는 관련성에 따라 역사적으로 변모해 왔다. (중략) 부모와 자녀에 더해 결혼하지 않은 친척들, 그리고 견습공들을 포함하는 가족 형태가 중세 이래로 지배적이었지만, 산업화?도시화 및 중간 계급의 성장과 더불어 공동체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부부가 중심이 되는 ‘근대 가족’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때 근대 가족의 형성 안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구분되기 시작하는데, 남성은 부양자로 여성은 어머니, 배우자, 주부로 역할이 구분되면서 여성의 사회적 배제가 뒤따르게 되었다. 때문에 서구 근대 가족의 형성에는 유럽의 자본주의의 발전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인류학에서 가족은 혼인과 혈연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동거 집단을 이루고 동재(동재)를 나누어 갖는 집단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특히 가족을 의미하는 단어의 어원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은 가족의 구성원에 대한 접근으로 시작된다.
파밀리아(familia)라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비롯되었다. 이 단어는 파물루스(famulis : 하인)라는 단어의 파생어로 로마 시대에 나타났지만, 우리가 보통 그 단어에서 떠올릴 수 있는 어의와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파밀리아는 우선 한 지붕 아래 거주하는 노예와 하인, 그리고 온 가족과 주인을 지칭했으며 또한 주인의 지배하에 있었던 안주인과 아이들 그리고 하인을 가리켰다. 파밀리아는 그 의미가 확대되어 아그나티(agnati : 부계친족) 과 코그나티(cognati: 모계친족)을 지칭하게 되었다. 적어도 당시 일상용어에서는 씨족(gens)과 같은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제Ⅰ부 인문학이 바라본 한국가족의 개념과 현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