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속에서 ‘나는 믿습니다’Credo라고 사도신경을 고백한다는 것은, 나보다 더 크고 더 위대하며 더 오래된 무언가에 접붙여짐을 의미합니다. 삼라만상의 주님이신 하나님의 은혜의 포괄성에 상응하듯, 우리는 시공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전 세계 곳곳의 성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룹니다. 이는 사적 세계로 후퇴하며 자신의 세계를 각종 논리로 옹호하려는 인간의 자기중심성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나와 너를 갈라놓는 언어와 문화, 인종, 성별, 역사적 기억, 이데올로기, 계급의 차이를 뒤로하고, 세상과 화해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모든 것을 거는 신앙의 모험을 떠나는 원정대에 합류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서론. 믿음에 대하여」중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사용한 사랑의 유비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라는 말씀을 겹쳐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표현하는 아주 흥미로운 문법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아들을 ‘사랑하는 분’으로서의 성부 하나님,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분’으로서의 성자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흘러나온 기쁨을 나눠 받으며 두 분의 관계를 더욱 풍성히 하는 ‘사랑의 끈 혹은 열매’로서의 성령 하나님입니다. 이렇게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은 영원부터 사랑을 주고받는 친교 속에 계신 관계적 존재입니다.
---「1장. 하나님」중에서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류가 화해하게 함으로써, 인간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하는 결정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사흘 만에 장차 있을 ‘부활의 첫 열매’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부활과 함께 옛 창조의 질서에 속하지 않는 새로운 인류가 역사에 등장했습니다. 참 하나님이신 성자가 인간이 되신 것은 단지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함만이 아니라, 자신과 같이 우리도 ‘참 인간’이 될 수 있는 기적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2장. 예수 그리스도」중에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역사의 암흑 속에 있던 사람들을 일으켜 공동체로서 새 생명을 선물하십니다. 교회의 예배를 통해 예수께서 아버지라 부르셨던 분을 아버지라 고백하고, 그분이 잠기셨던 물로 세례를 받고, 그분이 제자들과 나누셨던 식사에 참여하고, 그분이 가르쳐 주신 기도로 함께 기도하고, 그분이 선포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꿈을 함께 품음으로써 우리는 ‘함께’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4장. 성령과 교회」중에서
여전히 우리는 죄인이지만 은혜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믿음으로 그 은혜를 받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사랑의 불씨를 가슴에 품은 자유인으로서 정의로운 삶의 모험을 떠납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들과 죄인인 인간 사이에 ‘운명의 교환’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인류의 대표로서 우리를 대신해 저주받을 인간의 운명을 자기 것을 취하시고,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참 생명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5장. 죄 사함」중에서
마지막을 뜻하는 영어 단어 end(그리스어로는 telos)에는 ‘목적’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즉 우리는 종말을 단지 역사의 마지막에 관한 예고가 아니라, 삼위 하나님이 이루실 역사의 궁극적 ‘목적’에 관한 교리로 이해해야 합니다.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겸손한 고백은, 역사의 최종 목적을 인간이 결정하거나 성취할 수 있다는 낙관론의 마성적 힘에서 자유롭게 해줍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약속하시고 그 약속에 신실하신 분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약속은 역사의 ‘목적’이 되고, 약속을 실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활동은 역사의 ‘동력’이 됩니다.
---「6장. 종말」중에서
사도신경은 삼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인간이 이토록 경이로운 존재임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고대의 문서입니다. 사도신경 조항 하나하나 입에 올리면서 우리는 삼위 하나님의 은혜의 문법에 따라 생각과 행위를 재구성해 갑니다. ‘아멘’으로 사도신경을 끝맺으며 하나님께서 완성하실 미래에 대한 갈망을 품고서 오늘의 세상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진실하게 살겠다고 담대히 선언합니다. 그렇기에 사도신경은 그 고풍스러운 언어 속에 인간성의 혁명 선언문이라 불릴 법한 급진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습니다.
---「결론. 아멘, 그리고 다시 ‘믿음’에 대하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