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에 한 번쯤 들어봤을 사슴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그 사슴은 불붙는 코를 갖고 있어서 다른 사슴들이 놀릴 정도였다. 사슴은 결국 외톨이가 되었다. 누구도 말을 걸어주거나 이해해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놀랄만한 일이 일어난다. 성탄절에 산타가 와서 말해주었다. 네 코가 밝으니 썰매를 끌어달라고. 그 후로 사슴의 평가는 급격하게 변한다. 따돌리던 다른 사슴들이 그를 매우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이제 루돌프는 산타와 함께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이 노래는 왕따 극복담이다. 외톨이가 된 사슴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다는 말이 없다. 자신의 코를 성형하지도 않았다. 이 사슴은 신데렐라가 아니다. 로또에 당첨된 것도 아니다. 산타가 나타나서 돈을 준 것도 아니다. 목적에 따라 임무를 부여했을 뿐이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루돌프는 가엾어 보였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이다. 일단, 루돌프는 죽지 않았다. 주어진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자신의 코를 쥐어뜯지도 않았다. 세상을 원망하거나 저주하지도 않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이미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루돌프의 지혜’」중에서
하나는 확실하다. 성공의 정의가 잘못되었다는 것. 성공을 그토록 갈구하지만, 정작 성공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부분 답하지 못한다. 보편적으로 하는 답은 원하는 일을 이루는 것! 도대체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대개 진학이나 직업을 말한다.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는 뜨악해진 눈으로 이렇게 답하기 마련이다. 아, 그건 실패죠. 이러한 단순한 논리에 의하면, 우리의 삶은 늘 실패다. 원하는 진로대로 안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보는 눈은 있지만, 속할 수는 없는 상황들이 파다하다. 탐나는 곳의 경쟁률은 치열하고 산 넘어 산이다. 누구나 성공을 원하지만, 정작은 잡을 수 없는 무지개가 되고 만다. 이쯤에서 자신에게 물어보라. 나는 과연 성공했는가? 성공을 향해 가고 있는가? 이 물음에 제대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잘못 산 것이 아니다. 제대로 성공을 모른 탓이다. 성공은 한마디로 하자면, ‘역경의 극복’이다.
---「‘성공의 절대값’」중에서
잘해 나갈 거라는 믿음,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날 것이라는 긍정적 마음과 따뜻한 시선으로 멀찌감치에서 바라보는 것, 단지 그것만 하면 된다고 했다. 당장 안쓰럽고 불안한 시선을 거두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했다. 자기 자식을 믿지 못하면, 세상 어느 누가 믿어줄 것인가. 때로는 믿음이 내팽개치는 듯해도 그저 훌훌 털어버리자. 자식은 현세에서 도를 닦기 위해 하늘이 보낸 선물이므로. 자식이 날개를 펴고 마음껏 날아가도록 두고 지켜보는 것, 그것 말고 부모가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정신분석학자 라캉(Lacan)의 말에 의하면, 사랑은 갖지 않은 것을 주는 것이다. 이제껏 속박했다면, 지금은 부디 자유를 줄 차례다. 살아오는 동안 미처 자유를 갖지 못한 채 살아왔다면, 이제는 내가 갖지 못했던 자유를 온전히 줘야 할 때다. 별 볼일이 다 있는 부모교육, 낯 간지러운 이 글을 쓴 나는 그 시간에 강사를 맡았다.
---「‘부모교육’」중에서
도대체 인간을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가 없다. 그런데도 감행해보고자 한다. 인간은 에너지 체이다. 그 어떤 상황보다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긍정은 지속적인 긍정을, 부정은 끝없이 부정을 낳는다. 에너지 힐러인 웬디 드 로사의 말에 의하면, 삶의 목적은 ‘내 안의 빛을 이해하고 세상에서 빛이 되는 법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인간’은 ‘호모 룩스(Homo Lux)’, 즉, 빛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빛은 어둠을 물러나게 한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개인이든, 사회든 치유가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세상은 그 무엇보다 치유가 절실하다.
---「‘호모 룩스’로서의 인간‘」중에서
현재를 생생하게 살아나가는 비결이 있다. 언제나 이어질 것 같은 현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생의 마지막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 땅에서의 삶은 언젠가는 종지부를 찍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죽음’이 곁에 있다는 진실을 아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오늘만 살 수 있다면, 매 순간이 너무나 귀해서 권태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생애 마지막 순간,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끔찍한 일이라고 여겨진다면 오산이다. 마지막이 있기에 현재가 더없이 빛난다. 사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이들은 늘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자주 상상해볼 일이다.
이 세상을 끝내게 되는 날, 어떤 마음으로 눈을 감을지. 모조리 놓고 갈 것에만 여전히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느닷없는 스미싱으로 인해 딸을 그리워하는 심정의 한 자락을 잡고, 지금 현재를 들여다본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사랑을 담은 문자를 전할 이들이 있으니 감사하다. 먼저 하늘로 간 이들한테도 마음을 보낼 수 있어서 감사하다. 한 해의 마지막과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 새해의 하늘을 만나기 직전 지금은 내 안의 우주, 근원적 힘을 발동할 때다. 내가 나한테 수고와 격려의 악수를 하며 다독여주고 토닥여주자. 올 한 해 정말 수고 많았다고, 새해에는 분명 빛나는 축복이 깃들 것이라고.
---「‘삶과 죽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