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고 거룩하고 행복한 성도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어떤 사역을 하시는지, 우리 위에 어떤 복을 베푸시는지, 또 우리는 그것들을 어떻게 경험하고 반응하는지 잠시 멈춰 깊이 생각해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구원은 세 가지 시제의 사역이다. 우리는 구원받았고, 구원받고 있으며, 구원받을 것이다. 구속(救贖)은 영혼을 기쁘게 하는, 여러 면을 가진 보석이다. 특히 계시의 빛에 비추어볼 때 그 얼굴은 우리 앞에서 반짝이며 빛을 발한다. 하나님의 백성 위에 부어진 언약의 자비의 풍성함과 영원함은 우리의 면밀한 집중과 즐거운 관찰과 신실한 찬송과 진심 어린 헌신을 요구한다.
이 책이 성도들을 일깨울 뿐 아니라 생기 있게 하기를, 성도의 경험을 이해하고 확인하는 영적 카테고리를 제공하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여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 감사하고 사랑하게 하기를 기도한다.
---「머리말」중에서
당신의 수고도 바라보지 말라. 당신의 눈물과 회개도 바라보지 말라. 당신의 마음과 감정도 바라보지 말라. 잘 발휘되고 있는 당신의 장점과 은사도 바라보지 말라. 당신이 지키는 종교적인 의식도 바라보지 말라. 거룩한 연회와 축제도 바라보지 말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께 용납되기 위해 당신의 의, 당신의 노력을 바라보지 말라. 그것은 당신에게 자격을 부여해주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죄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자격조건인데, 그것은 우리가 끔찍이도 충분히 갖고 있는 것이다.
그 명령은 죄인인 우리에게 온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 모든 일들에서 우리를 돌이켜 하나님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이신 인간 예수 그리스도, 죄인들의 유일한 구원자, 잃어버린 자의 단 하나의 구속자를 바라보라고 말한다.
우리는 갈보리에서 그분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고통당하는, 피 흘리며 죽어가는 어린양이 매달려 있다. 그분을 바라보라. 가시관이 그분의 고귀한 눈썹을 찌른다. 그분을 바라보라. 로마 못에 잔인하게 찔린 그분의 손과 발에서 피가 흐른다. 그분을 바라보라. 포악한 채찍에 찢겨진 등과 상처 난 살갗에서 피가 떨어진다. 그분을 바라보라. 거룩하신 아버지의 죄에 대한 공의로운 진노의 무게 아래 고뇌하며 그분이 머리를 떨구신다. 그분을 바라보라.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그분이 외치신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분을 바라보라. 그분이 큰 소리로 외치신다. “다 이루었다!” 그분을 바라보라. 그분이 자기의 영을 내주신다.”
---「1장 그리스도를 바라보기」중에서
세상은 만족의 근원으로 여겨지지만 언제나 우리를 실망시킨다. 세상이 주는 최고의 보물은 더럽혀졌으며 사라져버린다. 믿음은 이생이 주는 것들 너머를 본다. 그리고 위에 있는 것들을 사모하게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의 복을 추구하고 찾는 자들의 행복이 여기 있다. 우리의 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영적인 복이다. 그 풍성함은 측량할 수 없지만, 이를 추구함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그 풍성함은 추적할 수 없지만, 성경의 모든 페이지와 경험을 통해 그것을 추적하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가! 그 풍성함은 발자취가 없지만, 그 끝없는 탐험의 여정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게다가 그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저장되어 있다. 그분은 저장고이시고, 그 안에 저장된 보물은 그분의 것이다. 당신이 그분을 소유할 때, 당신은 그분 안에 있는 모든 선한 것들을 그분과 함께 소유한다. 만약 당신이 그것들 중 일부를 소유하게 된다면, 오직 그것은 당신이 먼저 그분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분은 여전히 값없이 제공된다. 나는 당신이 그분을 알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당신이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소유하는 복을 누리게 되면 좋겠다. 만약 당신이 아직 소유하지 못했다면, 그 풍성함은 당신이 받아 누릴 수 있도록 선포된다. 이 사실을 믿으라.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 풍성함은 후회나 분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들이 보고 알고 얻을 수 있도록 계시된다. 이해할 수 있도록 선포되기에 우리와 같은 죄인들이 바울처럼 겸손히 감탄하며 살아가게 한다.
---「3장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누리기」중에서
또한 확신에 찬 신자는 신념과 용기가 있는 신자다. 우리는 어디에 서야 할지 모를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른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일은 발뺌이나 트집 없이 올바른 코스를 따르도록 우리를 돕는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인가? 만약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 두 가지 의견 사이에서 망설이는 것을 멈춰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 편에 서 있는지 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와 싸워야 하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안다. 확신에 찬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께 담대히 간청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사람들 앞에 담대히 선다.
또한 확신에 찬 그리스도인은 적극적인 그리스도인이 된다. 확신은 진실로 성도를 자유롭게 한다. 왜냐하면 올바른 방법으로, 우리의 관심을 우리 자신과 우리의 처지에서 벗어나게 해서, 그 에너지를 섬김에 쏟게 하기 때문이다. 복과 특권에 대한 확고한 지각은 감사하는 마음과 자발적인 마음을 낳는다. 믿음 안에 있는 기쁨과 평강이 우리의 섬김에 자기희생적 열심을 불러일으킨다. 타인에게 심각한 손상을 입히는 두려움은 더 이상 견고한 성도를 머뭇거리게 하지 못한다. 그는 자유롭게, 굳건하게, 긍정적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말하고 섬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확신은 사람을 점점 더 성장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만든다. 참된 구원의 확신은 결코 거룩함이라는 신경을 자르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함, 성령님과의 교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 우리의 하늘 소망에 대한 인지 등은 모두 순결한 삶을 향한다.
---「5장 구원의 확신을 얻기」중에서
물론, 그리스도인은 때때로 방황한다. 때때로 방어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슬프게도 신앙을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삶의 전반적인 어조와 취지는 전진이다. 그는 죄의 패턴을 거듭 회개해서 완패시키고 경건을 계발한다(요일 1:9-2:2). 그가 자신의 죄악된 욕망과 갈망을 줄여가는 데서, 전쟁에 활발히 참여하는 데서, 죄를 덜 짓게 되는 데서, 더 기꺼이 회개하는 데서, 죄로 돌아가는 빈도가 줄어드는 데서, 성령의 열매를 드러내는 데서 그것이 보인다. 참된 구원의 이 모든 표지에서 우리는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디까지 왔는가?”를 물어야 한다.
기억하라. 그중에 어느 하나도 새로운 출생 및 성령님의 내주하심과 동떨어져서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어느 정도 당신의 경험이라면, 그리스도의 영께서 당신 안에 일하시기 때문일 수밖에 없다. 자연적으로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의 영혼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열매를 맺었기 때문일 수밖에 없다. 만약 당신 안에 새 생명의 표지를 볼 수 있다면, 아직 활짝 꽃피우진 못했더라도 그 봉우리가 솟아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그 기원을 부인하지 말고 그것이 성령님의 생명의 표지인 것과 장차 올 것의 확실한 표지임을 기뻐하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29-30).
---「6장 성도의 표지를 확인하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