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륙’이 지닌 의미는 곧 의례의 대상을 표현한 것이다. 참고로 의례문에 보이는 ‘무차(無遮)’, ‘평등(平等)’은 의례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목적을 표현한 것이다. 즉, 수륙재는 시방법계에서 사생(四生)으로 육도(六道)를 윤회하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베푸는 법식으로, 사성(四聖)과 육범(六凡)이 서로 막힘 없이 널리 융통(融通)함으로써 무차평등(無遮平等)을 구현하는 의식이다.
종교적 관점에서 수륙재는 시방법계의 사성과 육범,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 모두를 대상으로 공양과 법식을 베푸는 의식이다. 사회적 관점에서 수륙재는 나이와 성별, 빈부와 학력, 지역과 인종, 장애의 유무등과 관계없이 모든 생명체가 공생(共生), 공화(共和)의 세상을 구현하는 의식이다.
--- pp.19~20
재의 규모와 설행 시간의 관점에서 본다면 조선 시대에는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로 설행되는 수륙재가 민중에게 더 친숙한 모습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 수륙재의 특징을 밝히는 데 있어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 pp.25~26
오늘 밤 크게 보시바라밀을 수행하는 모인(某人)이 [무슨 일을(某事) 위해 엎드려] 넓고 큰 원을 발하여 무차평등한 자비를 일으켜 수륙의 특수한 법규에 따라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가 함께하는 수승한 법회를 열고자 하옵니다. 시방세계의 여러 성인과 삼계(三界)의 여러 성인이시여! 부디 가피를 내려 주시어 모든 의식이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엎드려 바라옵니다.
--- p.36
제가 지금 발심한 것은 내 스스로 인간과 하늘의 복을 구하려 하거나, 성문 · 연각 내지 방편으로 나투시는 보살의 지위를 구하려 함이 아니옵니다. 오직 최상승에 의지하고자 보리심을 내는 것이오니, 법계의 중생과 더불어 일시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얻어지기를 원하옵니다.
--- p.47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늘의 빛은 아래로 비추고 상서로운 기운은 위에서 엉기듯이, 성인과 범부의 경지는 다르지 않고 사람과 천신의 길도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앞에서 자리를 드려 불 · 법 · 승 삼보자존께서 편안히 좌정하시었으니, 이제 다시 향을 피워 올려 천선신(天仙神)의 대중을 널리 부르겠습니다.
--- p.82
시방삼세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곳곳마다, 나라 안이나 나라 밖의 성(姓)이 있는 귀족부터 성이 없는 천민까지, 제왕과 후비를 비롯한 문무 관료, 지위가 높은 자나 낮은 자를 불문하고 남녀 모두 등 인간계의 모든 고혼들, 지옥계 · 아귀계 · 축생계 · 수라계 · 천상계의 중생을 비롯한 각 권속들, [별도의 천도 영가는 여기에 들인다.] 이 사바세계나 타방세계의 열 종류 고혼과 풀과 나무에 의지하여 사는 일체의 귀신들, 저승의 풍도지옥과 철위산에 있는 크고 작은 지옥과 근본지옥 · 근변지옥 · 고독지옥 등 일체 지옥중생들, 항하사처럼 많은 아귀와 법계의 방생 (傍生)과 중음(中陰)의 모든 유정(有情)이시여! 이와 같은 셀 수 없고 끝도 없이 많고 많아 하나하나가 티끌처럼 많은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고혼들을 청하옵니다.
--- p.98
하나의 큰 경전이 있으니
그 양이 삼천대천세계와 같이 많다고는 하나
전체가 하나의 작은 티끌 속에 있으며
모든 작은 티끌도 또한 그와 같다네.
--- p.172
지옥 · 아귀 · 축생의 유정님이시여! 저희 공양받으시고
삼악도에서 벗어나 불도를 닦으려는 마음을 내소서.
고혼이시여! 저희 공양받으시고
기운을 품부(稟賦) 받아서 다시 몸을 받으소서.
--- p.176
일체중생은 본래 여래장(如來藏)을 구족하고 있으나, 한 망념을 일으킴에 따라 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어, 비인(非人)들이 그대를 괴롭히거나 그대 스스로 그대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무릇 여래의 성품은 망념의 꿈을 한번 깨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아시고, 천선(天仙)이라면 탐욕을 좋아하는 것을 잘 살펴서 보리심을 내시고, 사람이라면 삼독(三毒)을 없애어 단박에 신령스러운 기틀을 갖추고, 아수라라면 성냄과 어리석음을 벗고 자비와 인욕이 조화로운 너그러움을 갖추고, 축생이라면 어리석음과 무지함을 떠나 모든 죄의 성품이 공(空)함을 알아차리고, 아귀라면 업보의 원인을 참회하여 기아의 배고픔으로부터 아주 벗어나고, 지옥 중생이라면 이전에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여 지옥의 고통으로부터 멀리 떠나고, 고혼이라면 형태와 품성을 갖추어 정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합니다. 그리고 그대들은 마땅히 공덕에 보답하겠다는 마음을 널리 내어 은혜를 머금고 있는 이 도량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 p.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