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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아버지

아들의 아버지

: 아버지의 시대, 아들의 유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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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82쪽 | 530g | 142*216*30mm
ISBN13 9788932024486
ISBN10 8932024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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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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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이 나이가 되도록 가물가물한 기억 저편에 있는 아버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당신의 면면을 내 소설 속에 더러 등장시키긴 했으나 내 문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당신을 올곧게 그려본 적 없었다는 그 어떤 부채 의식을 뒤늦게 깨우쳤다.
--- p. 7

일제가 패망하고 이 나라가 독립을 맞을 때 국가 건설의 이념 잣대는 민족주의-사회주의 체제로 나가야 한다고 믿는 사람 중에 아버지가 포함됨은 물론이다. 아버지의 그럼 이념 성향은 향리에 돌아오자마자 마산과 부산으로 행동반경을 넓혀 자기 이념을 실천할 동조자를 규합하는 한편, 일제의 단말마적 강압통치 아래서 자기 갈 길을 정했다. 말해보아야 알아듣지 못하거나 이해해주지 못할 가족에게는 자신의 이념 잣대를 설명하지도 않은 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들어선 외길이 당신의 평생 직업이 되었다. 좋게 말해 혁명가의 길이요,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사상에 미쳐 가정을 버린 거리귀신으로 나선 길이었다.
--- p. 43

나를 업은 채 삭정이 한 짐을 꾸려서 이고 온 어머니는 누나로부터 아버지가 왔다는 말을 들었다. 우체국에 가서 고모한테도 아버지가 왔다는 소식을 알렸다고 했다. 어머니가 마루에 놓인 아버지가 사온 선물 내 새 옷 꾸러미를 보았다. 아들이 모처럼 귀가했기에 할머니는 상설시장으로 가서 저녁 찬거리를 푸짐하게 사왔다. 어머니의 부엌 일이 바빠졌다. 중앙산 너머로 해가 떨어졌을 때야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누나와 함께 마루에 누워 노는 나를 보더니 “이 놈이 바로 그 놈이군”하며 안아들었다. 놀란 내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가 안아주는데 울다니” 아버지가 나와 눈을 맞추었다. 내가 아버지를 처음 본 순간이었고 그 품에 안겨보기도 처음이었다. 내 울음소리를 들은 어머니가 정지에서 나왔다. “애가 튼튼하구려.” 아버지가 어머니를 보고 처음 한 말이었다.
--- p. 105

남로당이 지방조직에 착수했을 때 아버지는 그 이름이 중앙에도 알려져 남로당 경남도당 책임지도원 자리에 앉게 되었다. 책임지도원은 도당 부위원장급이었다. 민청 경남지부 지도위원에 남로당 책임지도원까지 맡게 되자 아버지는 진영의 집에 머무는 날보다 부산에 있는 날이 많아졌다. 아버지 숙소는 일정하지 않아 진영 식구는 아버지가 부산 어디에서 먹고 자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렇게 한 달이면 일주일도 채 머물지 않는데도 건넌방에 들어앉은 진주 색시는 그곳이 제 둥지인 듯 뱃심 좋게 눌러앉아 있었다. 9월도 중순에 들자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낮 동안 건넌방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닫힌 건넌방에 눈이 갈 때마다 어머니의 한숨이 잦았다.
--- pp. 176

허겁지겁 고물상 마당으로 나서니 철모 쓴 미군 흑인 병사와 한국군이 우리 식구를 제치고 총질을 하며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어머니가 두 손을 번쩍 들어 나도 덩달아 손을 치켜들었다. 흑인 병사와 국군은 연방 총을 쏘아대며 영진공업사 창고로 건너갔다. 객차방 지붕으로 올라간 백인 병사가 지붕 사이 아래에 대고 총을 쏘아댔다.

마당에 둘러섰던 사람들이 입을 벙긋 벌린 채 튀어나온 우리 식구를 주목했다. “미군들이 아부지 잡으러 왔습니더. 우리도 붙잡히모 죽습니더.” 누나가 어머니 몸뻬를 흔들며 말했다. “그래 맞아. 인자 안 되겠다. 왕십리로, 어서 거게로 가자.”
--- p.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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