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련의 행동과학자들은 마거릿 미드를 필두로 인류학자들이 지속적으로 이야기했던 바를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심리학에서 일반적 지식으로 여겨지는 것들은 서구의Western, 교육받은Educated, 산업화된Industrialized, 부유한Rich, 민주주의Democratic(WEIRD) 사회의 개인에 대한 연구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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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론들은 여전히 인간 발달을 일반화하는 데 있어서 인류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는 표본이자 심지어 아웃라이어인 미국의 샘플을 사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 p.15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전형적인 양육 방식 이외의 다른 양육 방식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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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뉴욕 경찰은 덴마크 어머니가 레스토랑에서 남편과 밥을 먹는 동안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레스토랑 밖에 두었다는 이유로 그녀를 체포했다. 이 덴마크 어머니는 이러한 관습이 그녀의 고향인 코펜하겐에서는 관례라고 주장했고, 이 주장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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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우리는 부모가 아동 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새로운 관점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 관점은 심리적 요소뿐만 아니라 사회적 요소도 고려하고 있으며, 여러 문화에서 수집된 비교문화적 증거에 의해 검증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 관점은 수년 동안 지배적이었던 기존 관점들에 비해 부모들의 걱정을 훨씬 덜어준다. 과학적이라는 이름하에 제공된 기존 이론들은 부모가 아동 발달에 미치는 심리적인 영향력뿐만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기를 때 직면하는 위험들을 극도로 과장해왔다.
--- p.33
미국에서 가장 많은 교육을 받은 이 세대가 양육에 대한 조언을 얻기 위해 책이나 잡지를 보게 되면서, 그들은 좋은 부모란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의 자녀 양육 앞에 놓인 도전들이 무엇인지에 관한 새로운 관점에 쉽게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걱정할 새로운 이유들을 찾아냈다.
--- p.49
“당신은 아기를 너무 많이 안아주면 버릇이 없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아기를 많이 안아주라는 이야기도 들었을 것이다. [...]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에 너무 위압되지 마라. 당신 자신의 상식을 믿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 p.49
평범한 일반인들이 아동기의 불쾌하거나 “힘들었던”사건이 정신 기능에 장기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가정하게 되면서, “트라우마”나 “학대”와 같은 단어는 미국에서 일상적인 언어가 되었다.
--- p.52
심리분석학자 프리다 프롬라이히만Frieda Fromm-Reichmann은 어머니의 행동과 인성이 성인기 정신분열적 정신질환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정신분열증을 만드는 어머니”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1956년 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eson, 정신과 의사 존 위크랜드John Weakland, 가족 치료사 제이 헤일리Jay Haley가 이중구속 가설double-bind hypothesis을 제안했는데, 이 가설은 감정적으로 비일관된 어머니의 양육이 정신분열증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베이트슨의 전기를 쓴 작가가 이야기하듯, 베이트슨은 어떤 자료도 없이 이 가설을 내세웠다.
--- p.57
이 당시 어머니들은 자폐에도 책임이 있는 것으로 지목되었다. 존스홉킨스 의대의 레오 캐너Leo Kanner는 자신이 “영아 자폐infantile autism”라고 이름 붙인 현상이 따뜻함이 부족한 “냉장고 같은 어머니”에 의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그는 이 가설을 버렸다. 브루노 베텔하임은 『빈 요새The Empty Fortress』라는 저서에서 더 극단적인 생각을 내놓았다. 그는 “영아 자폐를 촉발하는 요인은 아이가 존재하면 안 된다는 부모의 바람”이라고 주장했다. 증명되지 않은 이론들은 그것이 만들어졌을 때 논쟁을 일으키긴 했으나 정신병에 대한 정신의학과 공공의 논의에 매우 폭넓게 전파되었고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 그리고 이는 정신분열증과 자폐증을 지닌 아이들의 수많은 어머니들에게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 p.59
수년 동안 자폐 아동의 부모들은 자녀의 장애를 일으킨 죄로 비난을 받아야 했다.
--- p.62
애착 모델은 아동 발달에 관한 다른 연구들 못지않게 20세기 영미 도덕이념에 기초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애착 모델이 미국이 아닌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유효할 것인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 p.66
영아기 아동의 건강 위험을 고려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미국 부모들이 자신들에게 익숙하지 않고 잘 알려지지 않은 타 문화의 영아 양육관습이 자신들의 관습보다 더 위험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더 잘못된 것은 아이의 사회적·심리적 환경이 감염의 위험처럼 (주로 서구 심리학자가 정한) 보편적인 기준에 의해 측정 가능하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 p.94
이제 막 태어난 아이를 가진 미국 부모들이 피곤한 이유는 (대부분 의 서부 유럽에서도 발견되는) 집 안에서의 일반적인 잠자리 배치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즉, 아기가 부모의 침대에서 떨어진 아기 침대나 아기 방에서 부모와 떨어져서 자는 것과 관련이 있다.
--- p.111
어머니가 아기에게 얼마만큼 말을 하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상호작용에 있어 어머니의 말은 핵심이 아니며, 서구적 기준에서 보았을 때는 말을 매우 적게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들은 아기를 각성시키기보다는 아기의 평온함을 유지하는 데 더 힘을 쏟는다.
--- p.125
아프리카 어머니들은 지속적인 상호 눈 맞춤, 미소, 이야기 등을 통해 아기를 흥분시키기보다는, 아기를 평온하고 차분한 상태로 유지하기를 원한다. 그들의 목표는 물건보다는 사람들에게 더 민감한, 말을 잘 듣는 아기로 키우는 것으로, 향후 공손한 어린이, 그리고 더 자라서는 순종적인 아이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시 이야기하자면, 이는 미국 어머니들의 목표와는 매우 다르다. 상이한 목표와 전략이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 환경을 다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 p.126
반면 미국 어머니들은 아기가 깨어 있을 때 아기를 안정시키거나 달래기보다는 자극하고 흥분시키기를 원했다. 그들은 아기의 정신적·사회적 발달을 위해서는 자극이 필요하고, 아기와의 필수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아기와 어머니의 재미있는 상호작용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미국 어머니들은 비록 구시 어머니들보다 아기를 덜 안고 젖을 적게 먹이지만, 아이를 바라보거나 아이에게 이야기할 때 애정을 표현하고 명시적으로 이 상호작용을 즐겼다. 그렇다면 “응석 받아주기”란 “애정” “따뜻함” “정서적 안정감” 등과 마찬가지로 관찰자의 관점에 따라 결정되는 관념이다.
--- p.130
서아프리카는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속담이 탄생한 곳이다. 이때 “마을”은 반드시 장소가 아닌 아이 돌봄을 위해 멀리서도 부르면 올 수 있는 여성들이 존재하는 친족 및 타인의 사회적 연결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연결망은 먼 농촌 지역에서 주요 도시로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 p.167
잠시 아이 집을 들르는 조부모나 방문자들은 아이의 귀여움만을 볼지 모른다. 그러나 부모들은 유아기 아동의 예측 불가한 변덕스러움과 부담스럽고 다루기 어려운 요구, 그리고 부모들을 지치게 하는 떼쓰기를 상대해야만 한다.
--- p.178
배변 훈련은 여전히 유아기 아동을 키우는 어머니들에게 불안감을 주는 영역으로 남아 있다. [...] 이러한 불안감은 프로이트가 “항문기”를 강박신경증과 같은 감정적 문제를 일으키는 부모와 아동 간 갈등의 근원이라고 개념화한 것과 일부 관련이 있다. 이 관념은 경험적 근거 없이 거의 한 세기 동안 영향을 미쳤다(프로이트는 이 이론을 1905년에 만들었다. 우리는 그의 영향이 언제 사라졌는지, 또는 사라지기는 했는지 알 수 없다).
--- p.199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은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주요한 역사적 출발점이었다. 언급했듯, 부모에게 의무교육은 자식의 활동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아이에게 의무교육은 공간적 구성과 의사소통이 표준화된 집 밖의 새로운 장소에서, 존경해야 하는 권위적인 가족이 아닌 다른 어른에게 배운다는 것을 의미했다. 학교는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사회에서 처음 접하는 관료제도였다.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학습 내용과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은 표준화되었고, 이는 다양한 배경을 지닌 아이들이 공통된 내용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 p.250
“헬리콥터 양육” “집중 양육intensive parenting” “방어적 양육defensive parenting” “편집증적 양육paranoid parenting” “노예가 된” 부모들, 그리고 심지어는 “양육의 붕괴”라는 표현들을 사용하며 부모들의 우선순위와 과도하고 자멸적인 양육 관습을 비판한다. 이런 부모들의 양육 관습이 부모에게 무례하고 집에서 최소한의 책임감도 거부하는 “권리만 주장하고” “버릇없는” 아동을 길러낸다는 것이다.
--- p.283
미국 부모들이 현재 미국의 관습에서 한 치라도 벗어나면 자녀에게 트라우마가 생기거나 학대가 될 수 있으며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우리가 보여주었듯 대체로 근거 없는 경고들이다.)로부터 스스로 벗어나 타 문화의 사례로부터 배운다면, 부모로서의 짐을 좀 더 합리적인 수준으로 덜 수 있을 것이다.
--- pp.296~297
이 책의 부제에는 “미국의 가족은 그냥 안심하고 쉬어도 된다.American families should just relax”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다. 즉 “부모가 아이의 심리적·정신적 건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전문가 조언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여 양육을 두렵고 불안한 무거운 짐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아이가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것만큼 민감하지 않으며 상당 수준의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있음을 믿고 안심하라는 것이다. 이 “안심하고 쉬라relax”는 조언은 한국 부모들에게도 해당된다.
--- pp.338~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