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흥미를 느낄 만한 소식이야. 물질의 존재에 대한 철학을 전개하다 보니, 내가 받아들일 만한 이론이 되려면 모종의 신을 가정해야 하더군. 하지만 물론 우린 아무것도 몰라. 어쨌건 진짜 선이 무엇인지 모르잖아. 그래서 나는 하늘에 항의하던 걸 중단했어. 하늘이 나보다 아는 게 적을 리는 없을 테니 말이야. 어쩌면 세상은 썩 괜찮은 상황인지도 모르겠어. 네게는 이것이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닐 테고, 내게서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걸 은혜의 징조로 여기겠지. 하지만 내 입장을 오해하진 마. 나는 ‘세상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외치는 게 아니야. 내가 내놓을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우주에 대해 반대할 권리가 없다고 말하는 것뿐이라구. 그 점에서 우리 모두 파산한 상태라고 할 수 있지.---리오 베이커에게 보낸 편지. 그는 배우이자 연기 지도자였고 1919년 옥스퍼드에서 루이스와 친구가 되었다. 그는 인지학자anthroposophist였던 동료 오언 바필드의 소개로 루이스를 만났다. 이 편지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루이스의 인식이 자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920년 9월 5일
저는 경건 생활에 대해 조언할 만한 사람이 못됩니다. 제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주요 기도 시간이 언제이건 ‘자기 직전’까지 미루지 않고 그전에 합니다. (2) 기도할 때 내성內省을 피합니다. 내 마음이 올바른 상태인지 지켜보지 않고 시선을 바깥으로 돌려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3) 의지력으로 감정을 만들어 내려는 시도는 결코,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4) 가능할 때는 침묵 기도를 하지만 몸이 지쳤거나 다른 면에서 여의치 않을 때는 소리 내어 기도합니다.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괜찮으시면 가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겠습니까?---F. 모건 로버츠에게 보낸 편지. 루이스의 기도 규칙에 대하여. 1954년 7월 31일
예, 맞습니다. 저는 중병이 들어 기적이 나타나지 않으면 죽을 것이 분명한 여자와 (그 사실을 알면서) 결혼했습니다. 상대는 조이 데이비드먼입니다. 그녀의 책 《시내산의 연기》는 수녀님이 읽으셨을 겁니다. 아내는 헤딩턴의 윙필드모리스 병원에 있습니다. 주말마다 보러 가는데, 비전문가인 제 눈에는 매주 나아지고 이제는 완전히 회복 중인 것처럼 보입니다(의학지식을 갖춘 의사가 볼 때는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병명은 암입니다. 제 아버지, 어머니, 제일 좋아하던 외숙모를 앗아간 암 말입니다. 그녀는 물론 자신의 병세를 압니다. 저는 성인이자 그리스도인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할 마음이 없으니까요. 상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제 인생에는 새로운 아름다움과 새로운 비극이 들어왔습니다. 우리 사이에 이상한 행복과 심지어 유쾌함까지 가득하다는 걸 알면 놀라실 겁니다(놀라지 않으시려나요?). ……
수녀님께서 조이와 저(그리고 두 아들, 데이비드와 더글러스)를 위해 기도해 주실 줄 확신합니다. 더글러스는 한마디로 매력덩어리입니다(11세 반). 데이비드는 첫눈에 그만큼 매력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제게는 우스꽝스러울 만큼 적절한 의붓아들입니다. 그 또래였을 때의 제 모습과 거의 똑같거든요. 책벌레에 잘난 체하고 다소 고지식합니다.---페넬로피 수녀에게 보낸 편지. 루이스의 삶에 들어온 아름다움, 비극, 행복, 흥겨움에 대하여. 1957년 3월 6일
당신의 편지는, 많은 사람들이 바라지만 좀처럼 이루지 못하는 부부관계의 깊은 경험을 놀라우리만큼 분명하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편지를 돌려드립니다. 남의 이야기처럼 볼 수 있을 때까지 틈틈이 계속 읽으세요. 그러면 언젠가 ‘서로’에게 온전히 헌신된 (처음에는 그랬겠지요) 삶에 대해 지금 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실 겁니다(물론 당신은 편지를 읽으며 훨씬 많은 아픔을 겪을 것이기에, 저보다 훨씬 깊고 결실 있는 생각을 하게 되겠지요).
저뿐 아니라, 다양한 수준의 인류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에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바닥에서부터 시작해 봅시다. 미개한 이교도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들은 그 편지가 그리는 사랑에 지나친 면이 있어서 신들의 보복(네메시스)을 부추길 거라고 할 것입니다. ‘위험 경고를 발견’할 것입니다. 한 단계 올라가 보지요. 세련된 이교도들은 인류 공통의 요구를 회피하는 일을 남자답지 못하고 시민답지 못하고 아내에게 목매는 행위로 지적하며 나무랄 것입니다. 스토아학파라면 전체의 일부(‘서로’)를 왜곡하여 홀로 자족하는 전체로 삼으려 드는 것은 ‘자연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다음에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물론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이라는 데 동의할 것입니다. 진과 당신이 ‘한 몸’을 너무나 훌륭하게 실현했다고 인정할지도 모릅니다. ……---셸던 베너컨에게 보낸 편지. 그는 아내가 살아 있을 때 아이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드는 일이 없도록 아이를 갖지 말고 죽을 때는 같이 죽기로 약속했다며, 절망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자살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겠느냐고 루이스에게 물었다. 그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는, 유명한 “잔인한 자비” 편지.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다시 읽고, 이교에서 기독교에 이르는 다양한 윤리적 감수성을 가진 인류와 함께 그것을 해석해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진정한 자아의 탄생을 즐겁게 감수함에 대하여. 1955년 5월 8일
자네 연락을 받게 되어 기쁘네. 상황이 더 나쁠 수도 있었네. 조이는 암으로 죽는 많은 사람들보다 수월하게 떠나갔네. 마지막날 오전에는 두 시간 정도 끔찍한 고통을 겪었지만 나머지 시간에는 대체로 잠들어 있었네. 그래도 의식이 있을 때는 정신이 말짱했어.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두 말은 “당신 덕분에 행복했어요”와 “저는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롭습니다”였네. 그날 저녁 10시에 죽었어. 나는 횡사는 봤지만 자연사를 본 것은 처음이었네. 정말 특별한 것이 없더군.
부활절 휴가 때 그녀가 평생의 꿈이었던 그리스 여행을 했다는 것이 기쁘네. 우리는 거기서 멋진 시간을 보냈어. 이후에도 많은 행복한 순간들을 보냈지. 죽기 전날 밤에는 오랫동안 차분하고 유익하고 잔잔한 대화를 나누었네.
워니는 아일랜드로 휴가를 떠났고 언제나처럼 술을 마시다 입원했네. 둘째 더글러스는 늘 그렇듯 더없이 든든한 친구이고 내 인생에서 참으로 밝은 별이지. 나는 상당히 괜찮네.
---아서 그리브즈에게 보낸 편지. 조이의 죽음에 대하여. 1960년 8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