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을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무렵, 아담 아네트가 죽었다. 아담은 나의 친구요, 스승이요, 인도자였다. 그는 색다른 친구였다. 보통 사람이 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애정과 사랑을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색다른 스승이었다. 깊이 사고할 수 없었고, 사상이나 개념을 표현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색다른 인도자였다. 내게 어떤 구체적인 방향 제시나 충고도 해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담은 내가 처음으로 라르쉬 데이브레이크에 갔을 때 함께 살았던 사람 가운데 하나였으며, 내가 토론토의 라르쉬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 합류했을 때 돌보아야 했던 최초의 사람이었다.
---「서론: 이 책이 쓰이기까지」중에서
아담의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예수님의 가정생활과 병행되는 모습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은 권세와 힘을 가지고 오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연약함의 옷을 입고 오셨다. 그분의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부분은, 아이로서, 청소년으로서, 발버둥치는 청년으로서, 성숙한 성인으로서 인간의 상황을 공유하신 숨겨진 부분이다. 나사렛 예수님의 삶처럼 아담의 숨겨진 삶은, 수많은 사람을 위한 사역의 때를 앞두고 눈에 보이지 않는 준비를 한 시간이었다. 그의 부모는 이를 그런 식으로 바라보지 않았을지라도 말이다.
---「1장 아담의 숨겨진 이야기」중에서
예수님은 세례받으신 직후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나가 40일 동안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다고 복음서는 말한다. 영적인 삶에서 광야는 시험과 시련과 정화의 장소다. 아담에게도 ‘광야’ 시기가 있었다.…아담이 병원에서 보낸 시간은 분명 그의 광야였다. 하나님의 영이 요단강에 계셨던 예수님에게 임하사 그분을 광야로 내몰고 가셨듯이, 동일한 영이 가정에 있던 아담에게 임하시어 그를 정화의 장소로 몰고 가셨다. 그것은 아마도 아담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아담에게서 은사를 발견하고 그를 ‘피스메이커’로 부른 사람들을 위한 시험의 시기였다.
---「2장 아담의 광야」중에서
아담은 진정한 스승이요, 진정한 치유자였다. 그의 치유는 대부분 상처를 인식할 수 없는 사람들을 향해 평안과 용기와 기쁨과 자유를 선포하는 내적인 치유였다. 아담은 자기의 눈과 자기 존재로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고통으로부터 그렇게 달아날 필요가 없습니다. 나를 바라보십시오. 내게 가까이 오십시오. 그러면 당신도 나처럼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3장 아담의 공생애」중에서
아담은 내가 만난 인도자 중에 가장 비지배적이며 가장 의존적인 사람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그의 길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듯하다. 나는 그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 똑같은 기적을 행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는 스스로를 위해서는 그 어느 것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장 아담의 길」중에서
우리는 그의 육체적 혹은 정서적 아픔이나 고통에 대해 대부분 알지 못한다. 아마도 아담의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는 자기를 괴롭게 하는 것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인 듯하다.…아담 주위에서 이루어진 어떤 활동도 그의 수난을 감소시키지는 못했다. 그는 완벽하고도 철저한 의존 상태로 살았다. 그는 철저한 연약함 가운데서 빛과 평안을 발산하며, 다른 사람의 손에 완전히 자신을 맡긴 채 그 운명을 따르는 것 같았다.
---「5장 아담의 수난」중에서
데이스프링의 내 방에서 잠이 들자마자, 새벽 1시쯤, 앤이 전화를 걸었다. “헨리, 아담이 죽었어요.” 나는 즉시 “다 이루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했다. 아담의 인생 그리고 그의 사명이 이제 끝난 것이다.…예수님은 죽어 가실 때 사랑하시는 제자를 바라보시며 마리아에게 “어머니, 당신의 아들입니다”라고 하셨으며 요한을 바라보며 “네 어머니다”라고 하셨다. 자신의 죽음으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신 것이다. 아담 역시 그 순간 그리고 그 이후에도 가족과 과거와 현재의 공동체 구성원들과 친구 사이에 교제의 끈을 만들었다.
---「6장 아담의 죽음」중에서
그날 오후 나는 장례식장에서 관 속에 누워 있는 아담의 시신을 보고 너무나 놀랐다. 그는 막 잠이 든 열여덟 살 소년처럼 너무나 어려 보였다. 그의 얼굴은 너무나 온화했고, 피부도 부드러웠다. 머리는 곱게 빗겨 있었다. 그는 예쁜 셔츠와 옅은 노란색 털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그의 아름다움과 젊음을 보니 눈물이 흘렀다. 입을 다물고 아주 아주 잠잠히 있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이 사람이 내게 그렇게 많은 것을 주었던 사람인지, 그리고 동시에 내게 한 마디도 하지 못했고, 정원에서 뛰어놀 수도, 공놀이를 할 수도, 규칙적으로 학교에 다닐 수도, 혹 책을 읽을 수도 없던 그 사람인지 믿을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친구들과 함께 그들 곁에 있는 것만 좋아했다! 여기서 그는 너무 건강하고 너무 온전하고 너무 잘생겨 보여서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가 부활할 때 얻게 될 새로운 몸을 미리 조금 보여 주는 것만 같았다.
---「7장 아담의 장례」중에서
아담의 부활은 그를 사랑했던 사람의 슬픔 가운데서 시작되었다. 그 슬픔은 아주 실제적이었고, 깊었다. 장례식 후 우리 모두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의 대강당에 모였을 때, 나는 우리의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단지 나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아담은 공동체의 중심인물이었고, 불안한 삶을 사는 우리 가운데 있는 고요한 중심이었다. 이제 그 중심이 사라졌다.
---「8장 아담의 부활」중에서
아담,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이 세상에서 34년의 인생을 살도록 보냄받은 아담은 하나님께로 돌아갔다. 그의 사명은 완수되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두려움보다 강하고 생명은 죽음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아담의 사랑과 생명은 부패하지 않는다. 그것은 영원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9장 아담의 영」중에서
아담의 삶과 우리 관계는 내게 그렇게 진실하고 영속적인 선물이었다. 우리 관계에 대해 세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그러나 아담의 친구인 나, 헨리는 그 이야기를 글로 쓰기로 결심했다. 나는 그것을 미화하지 않았고, 완화시키거나 좋게 만들지도 않았다. 나는 가능한 한 단순하고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나는 아담의 진리의 증인이다. 나는 먼저 예수님의 이야기에 대해 알지 못했다면 아담의 이야기를 할 수 없었음을 알고 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통해 아담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와 볼 수 있는 눈을 얻은 것이다. 바로 그 이야기에 비추어서, 나는 가능한 한 단순하고 솔직하게 아담의 이야기에 대해 써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결론」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