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공자님이 내용 때문에 2,700수의 시들을 없앴다는 설이 있는데요. 그런데 저는 이 설을 지지하지 않아요. 제 생각에는 중복된 작품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민요니까요. 이런 이유로 편집했을 것 같아요. ‘사서’(四書)나 『열녀전』(列女傳), 『좌전』(左傳) 등에 인용된 시들 가운데 현재 『시경』에 없는 작품들이 있어요. 그것을 일시(逸詩)라고 해요. ‘일’(逸)은 없어졌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없어진 작품들이 있는데, 생각보다 그 양이 많지 않거든요. 그걸 보면 공자님이 내용 때문에 없앴다기보다는 중복된 작품들을 깔끔하게 정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 p.19
이런 것을 ‘단장취의’(斷章取義)라고 합니다. ‘단장취의’에서 ‘의’(義)는 ‘의미’라는 뜻으로 문장에서 일부분을 끊어 내어 의미를 취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시경』 자체를 이해하고 즐기는 것과 이 시를 다른 문헌에서 어떻게 활용했는가 하는 것은 별개로 보셔야 합니다. 이런 맥락을 알고 『시경』을 공부하고 나면, 『대학』이든 『맹자』든 『좌전』이든 『열녀전』이든 거기에 시가 얼마든지 나와도 겁먹지 않을 수 있습니다. ‘흠, 단장취의해서 이렇게 써먹었군!’, 하면서요. 슬기로운 시 활용법이지요.
--- p.26
그러니까 ‘「주남」, 「소남」을 배웠느냐’라고 하는 건 결국 ‘시를 배웠느냐?’라는 말과 같아요. 이런 글을 보면, 공자 시대 때부터 『시경』의 순서가 우리가 읽는 것과 비슷하게 편집되어 있었다는 귀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죠. 공자님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주남」, 「소남」을 배우지 않으면, 그것은 바로 담벼락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 같다고 말하십니다. ‘정’(正)은 부사입니다. ‘정장면’(正牆面)은, 갑갑한 사람과 마주하면 ‘담벼락 마주한 것 같다!’고 하잖아요,바로 그런 뜻입니다. 『시경』을 읽지 않은 사람과는 교유할 수 없다는 말이겠지요.
--- p.40
그런데 왜 바람 ‘풍’ 자를 써서 민간가요를 분류한 걸까요? 『논어』 「안연」(顔淵) 편을 보면,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군주는 ‘바람’이고, 백성들은 ‘풀’이라고 비유한 거지요. ‘군주가 정치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백성들은 영향을 받고 그런 것을 노래로 부른다.’ 이런 뜻이 ‘바람 풍’ 자에 들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를 ‘풍요’(風謠), ‘민요’(民謠)라고도 하는데, 동양에서는 모든 노래가 정치상황과 연결되어 있어요. 나라가 편안하면 백성들의 노래도 편안해요. 나라가 위태해지면 노래도 심란합니다. 망한 나라의 노래는 슬프고 애달파요. 『시경』을 읽다 보면 정말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p.51
〈관저〉로 다시 돌아와 볼까요. 이 작품은 1절은 4구인데, 2절과 3절은 8구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절의 구의 수가 똑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원래 『모시』(毛詩)는 전부 4구로 되어 있고 5장으로 되어 있어요. 원래 4구 5장짜리 시를 주자가 이렇게 3장으로 묶어 놓았어요. 주자는 작품 내용을 맥락에 따라 나눈 것인데요.
번역본마다 차이가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주자의 의도대로 읽겠습니다. 『시경』의 시는 민요니까 심오한 깊은 뜻을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단순하고 소박해요. 『시경』의 기본 정서는 단순소박이지, 복잡하게 꼬는 거 없습니다. 그리고 의성어, 의태어가 많아요. 이런 의성어, 의태어를 어떻게 맛깔나게 살리느냐가 『시경』 해석에 있어 관건이기도 합니다.
--- p.55~56
그다음 구절은 ‘요조숙녀, 군자호구’(窈窕淑女, 君子好逑)지요. 요조숙녀에서 ‘요’와 ‘조’ 모두 얌전하단 뜻입니다. ‘요’는 ‘얌전하다’, ‘조’는 ‘차분하다’라고 많이 해석이 됩니다. 요즘도 쓰는 ‘숙녀’(淑女)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겁니다. 동양문화권에서 요조숙녀의 ‘숙녀’는 착한 여자, 맑은 여자, 참한 아가씨 등으로 통하지요. ‘숙’(淑)은 ‘맑다’라는 뜻이거든요. 여자 이름을 지을 때도 많이 썼지요. 요조숙녀를 해석하실 때는 그냥 글자 그대로 놔두셔도 좋고, ‘얌전하고 차분한 아가씨’라고 하셔도 좋습니다.
--- p.59
‘아마회퇴’(我馬??)에서 ‘회퇴’(??)는 글자가 조금 어렵지요? 하지만 생소한 한자라고 어렵다고 미리 기죽을 필요는 없답니다. 함께 풀어 보도록 하죠. 제가 지금 ‘회’라고 읽었죠. 원래는 ‘살모사 훼’ 자예요. 그런데 『시경』에서는 ‘회퇴’가 한 단어로 쓰여서 ‘고달프다, 지쳤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시경』을 읽다 보면 이런 생소한 단어가 앞으로 무수히 나오는데요. 일단 그러려니 하시고요. 눈에 좀 익혀 두시면 좋습니다.
『시경』의 이런 표현들은 이후 동양 문화권에서 성어(成語)나 독립된 단어가 되어서 그대로 쓰이는 경우가 많거든요. 특정 상황에서 이 단어가 나오면 『시경』 〈권이〉로 연결되면서 그리움이라는 뉘앙스를 갖게 되는 거죠. 이런 단어들이 마치 레고 블록처럼 돌아다닙니다. 당연히 후대의 시들에서도 『시경』의 이런 단어들이 사용되고, 『시경』의 맥락이 그 작품에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후의 시에서 ‘회퇴’라는 단어가 나오면 『시경』 〈권이〉에서 사용되었을 때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지요. 그래서 문학 전공자들은 『시경』을 꼭 읽어야 하는 거고요.
--- p.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