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루스는 가난의 추악한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 굶주리는 연인들은 그녀에게는 늘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굶주리는 연인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의 시선이 방에서 그에게로 오락가락했다. 그녀가 부엌에서 방으로 들어올 때 함께 들어온 증기의 빨래 구정물 냄새는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 p.15
“그래도 자기는 나를 사랑하지?” 그는 물었다.
“사랑해! 너무 사랑해!” 그녀는 소리쳤다.
“그리고 나는 자길 사랑해. 자기의 부모님을 사랑하는 게 아니야. 그들이 어떤 짓을 해도 나는 상처받지 않아.” 그의 목소리는 승리감에 들떠 있었다. “나는 자기의 사랑을 믿기 때문에, 자기 부모님의 적개심이 두렵지 않아. 세상 모든 것이 길을 잃고 헤맬지라도, 사랑만은 그렇지 않아. 가다가 나약해져서 맥없이 머뭇대지 않는 한, 사랑은 잘못 갈 수가 없어.”
--- p.77
“그것들은 내버려 두고, 자네는 아름다움을 그 자체로 사랑하게. 배를 타고 자네의 바다로 돌아가. 그게 내가 자네에게 하는 충고야, 마틴 에덴. 이 병들고 썩은 도시에서 뭘 바라나? 자네는 잡지계의 천한 요구에 맞춰 아름다움을 팔아 보려는 헛수고로 날마다 제 목을 조르고 있어. 전에 자네가 인용한 구절이 뭐였더라? 아, 그래, ‘인간, 최신 하루살이.’ 자네, 최신 하루살이는 명성을 얻어서 뭘 하려는가? 명성은 자네에게 독이 될 거야. 그따위 이유식을 먹고 크기에는 자네가 너무 단순하고, 너무 원초적이고, 너무 합리적이라고 나는 믿네. 자네가 시 한 줄도 잡지에 팔지 않았으면 좋겠어. 자네가 섬겨야 할 단 하나의 주인님은 아름다움이야. 아름다움을 섬기고 대중은 무시해 버려!성공! 헨리의 『유령』을 능가하는 자네의 스티븐슨에 관한 소네트, 『연애시 연작』, 그리고 바다에 관한 시들이 성공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면, 성공이란 게 대체 뭔가? 자네의 기쁨은 글을 써서 성공하는 데 있지 않고, 글을 쓰는 데에 있어. 자네는 그렇게 말하지 못하겠지. 난 알아. 자네도 알아. 아름다움이 자네를 아프게 해. 아름다움은 자네에게 끝나지 않을 고통이고, 치유되지 않을 상처이며, 화염의 칼이야.
--- p. 94
“요점은 그게 아닙니다. 저는 선생님의 진단이 엉터리라고 말하려는 겁니다. 선생님께 제가 사회주의라는 병에 걸려 있지 않다고 말하려는 거라고요. 똑같은 병에게 기력을 빼앗겨 시들시들하는 건 선생님이라고 말하려는 겁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당신의 그 잡종 민주주의와 앙숙이듯이 사회주의와도 앙숙입니다. 당신의 민주주의란 사전적 정의에도 맞지 않는 잡소리로 가장한 사이비 사회주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보수적입니다. 너무나 철저히 보수적이라서, 당신처럼 사회 조직이라는 거짓의 장막 속에 살면서 장막을 꿰뚫을 만한 통찰력을 갖지 못한 사람은 제 입장을 이해할 수가 없을 겁니다. 당신은 강자의 생존과 강자의 지배를 인정하는 척합니다. 나는 실제로 인정합니다. 그게 차이입니다. 내가 좀 더 젊었을 때, 그러니까 몇 달 더 젊었을 때는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보시다시피, 그때의 나는 당신의 연설에 감명받았습니다. 그런데 상인과 무역업자들은 기껏해야 비겁한 지배자들입니다. 그들은 허구한 날 돈벌이라는 여물통에 주둥이를 박고 꿀꿀댑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믿기 힘들겠지만, 귀족주의로 회귀했습니다. 이 방에서 나만이 개인주의자입니다. 나는 국가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강자를, 국가를 그 헛된 도로에서 구해 낼 말을 탄 강자를 기다릴 뿐입니다. 니체가 옳았습니다. 니체가 누구인지 당신에게 설명하느라고 시간을 끌지는 않겠지만, 그가 옳았습니다. 세상은 강자의… 고상할뿐더러 장사와 교환이라는 돼지 여물통에서 허우적대지 않는 강자의 것입니다. 진정한 귀족이, 위대한 금발 짐승이,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자들이, 인생을 긍정하는 자들이 세상을 가집니다. 그들이 당신 같은 사회주의자들을, 사회주의를 두려워하고 자신을 개인주의자라고 여기는 사회주의자들을 먹어 버릴 겁니다. 온순하고 의지가 박약한 당신들의 노예의 도덕은 결코 당신들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오, 당신들은 도통 알아먹을 수 없는 얘기죠. 더 이상 당신들을 괴롭히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만 기억하세요. 오클랜드에는 진정한 개인주의자가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인데, 나, 마틴 에덴이 그중 한 명이라는 것을.”
--- p.139